노가다판에서 배운 건축이야기
사람들은 흔히 건축사를 ‘멋진 도면을 그리는 사람’ 쯤으로 생각한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건축사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건축사(Architect)의 어원을 들여다보면 그 본질은 명확해진다. 건축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 ‘Architect’는 고대 그리스어 ‘아키텍톤(Arkhitekton)’에서 유래했다. 우두머리를 뜻하는 ‘Arkhi’와 기술자(목수)를 뜻하는 ‘Tekton’의 합성어. 즉, 건축사의 원래 뜻은 ‘모든 공정을 통솔하는 대목장(Master Builder)’이다.
https://youtu.be/27zOOBPsXNw?si=Mh4vWfXlb6oplQ4d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돌 하나가 놓이는 방식부터 건물이 서는 이치까지 꿰뚫고 있는, 현장의 최고 책임자라는 뜻이다.
나는 이 ‘아키텍톤’의 정의에 꽤 집착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남들처럼 따뜻한 설계 사무소가 아닌, 거친 건설사를 첫 직장으로 택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화려한 선을 긋는 기교보다는, 도면 위의 선 하나가 현장에서 갖는 ‘무게의 의미’를 먼저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CAD 화면 속 0.1mm의 선 하나가, 현장에서는 수천 톤의 콘크리트 벽이 되고 누군가의 고된 노동이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먼저 익혀야 했다.
그렇게 나는 14년간 건설사 소속으로 현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시공을 관리하는 관리자이자, 사무실에서 날아온 도면을 현장에 맞춰 다시 그리는 ‘현장 설계자’였다.
현장에서는 흔히 건설 일을 ‘노가다’라고 자조한다. 표준어로는 막노동, 어원은 일본어 ‘도카타(土方)’에서 왔다고들 하지만, 나는 현장에서 뼈저리게 느낀 나만의 해석이 있다.
No(없다) + 가다(Gada, 틀/형태). 즉, ‘지켜야 할 틀과 기준이 없는 상태’가 바로 노가다였다.
세상에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현장은 없다. 타의든 자의든, 현장은 쉼 없이 수정되고 변한다. 바로 그렇기에 더더욱 단단한 ‘가다(틀)’가 필요하다. 명확한 기준 없이 수정만 거듭되는 현장은 시스템이 붕괴된 곳이자, 사람의 몸을 갈아 넣어야만 겨우 수습되는 고된 노동판, 말 그대로 'No-Gada'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 대부분의 설계자는 '보이는 것'만 그리기 때문이다.
건축 도면에서 기둥이나 보 같은 '구조(Structure)'는 단면에 표현되기에 설계자의 눈에 띈다. 하지만 ‘설비와 전기’는 다르다. 배관이 어디로 지나갈지, 덕트가 얼마나 공간을 차지할지는 건축 도면에 그려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설계 과정에서 쉽게 잊히고 만다.
그래서 도면에는 천정고 2,400mm가 문제없이 확보된 것처럼 적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보이지 않았던 소방 배관과 에어컨 배관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선들의 무게를 무시한 대가로 실제 공간은 1,200mm가 되어버린다.
이처럼 기준(Gada)이 무너진 곳에서 시공자는 땀을 흘리며 억지로 끼워 맞춰야 하고, 입주자는 낮아진 천장을 평생 감당해야 한다.
그 도면은 ‘틀린 도면’이 아니다. ‘현장을 노가다로 만드는 무책임한 도면’이다.
나는 그 혼란 속에서 시공과 설계의 간극을 메우는 일을 해왔다. 그래서 나는 건축을 다시 정의한다.
건축이란, 예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설비와 변수까지 계산하여, 현장이 ‘노가다’가 되지 않도록 설계하는 일이다.
나는 어떤 건물은 짓지 않는다. 구조, 설비, 비용이 충돌하여 결국 현장에서 기준이 무너질 건물이라면, 애초에 짓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설계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노가다'가 아닌 '가다(Gada)'를 짓기 위해,치열하게 판단하는 건축사, 이안(eA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