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지 않아야 할 건물도 있다
사람들은 건축사가 ‘무엇을 만드는 사람’인지 묻는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사람은 어떤 건물을 포기할 수 있는가?”
건축은 선택의 연속이다. 하고 싶은 것은 많고, 예산과 법규는 늘 우리를 옥죄어 온다. 그 혼란스러운 과정에서 건축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될 것'을 명확히 가려내는 일이다.
나는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오면 네 가지 기준을 먼저 살핀다. 돈, 법, 구조, 그리고 이야기.
이 네 가지가 균형을 잃으면, 나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그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찾아온 건축주의 소중한 자산을 지키는, 나의 첫 번째 설계단계이기 때문이다.
건축주들은 흔히 조심스럽게 묻는다. "평당 얼마에 지을 수 있나요?" 싸게 짓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보는 ‘돈’의 기준은 최저가 공사비가 아니다. 내 돈을 투자했을 때, 결과적으로 흥할 것인가 망할 것인가에 대한 ‘수익성’이다.
건물은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거대한 자산이다. 아무리 싸게 지었어도, 단열이 안 되어 관리비가 폭탄처럼 나오거나 임대가 나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한 투자다. 반대로 제 값을 주고 제대로 지어서,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오르는 건물은 성공한 투자다.
수익 구조가 계산되지 않은 건물은 지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오래 유지될 수는 없다. 운영이 불가능한 건물은 결국 건축주를 가난하게 만드는 ‘콘크리트 짐’이 될 뿐이다.
간혹 절박한 마음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다. "준공 나고 나서 확장하면 안 되나요?", "주차장 용도를 살짝 바꾸면 안 되나요?"
법규 검토는 설계의 가장 기초적인 골격이다. 정북일조, 피난, 주차, 용적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자 안전장치다. 물론 내가 거절해도, 누군가는 그 불법을 합법인 척 둔갑시켜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하지 않는다. 위법 건축물이 되는 순간, 그 건물은 ‘팔 수 없는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매매는 불가능해지고, 매년 날아오는 이행강제금은 월세 수익을 갉아먹는다.
법을 비틀어 만든 건물은 완공되는 순간부터 ‘하자’가 된다. 당장은 이익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선택은 평생 건축주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된다.
나에게 구조는 단순히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뼈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사람이 쾌적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의 질’을 의미한다.
도면 위에서는 30평이라 적혀 있어도, 기둥이 엉뚱한 곳에 박혀 있거나 설비 배관이 천장을 짓누르면 실제로는 가구 하나 제대로 놓을 수 없는 죽은 공간이 된다.
공간(空間). 빌 공(空) 자에 사이 간(間) 자를 쓴다. 건축은 단순히 무언가를 비워내는 것(空)이 아니다. 사람과 사물이 숨 쉬고 움직일 수 있는 ‘사이(間)’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그런데 구조와 설비가 이 소중한 ‘사이’를 침범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곳은 물리적으로는 비어 있을지 몰라도, 기능적으로는 꽉 막힌 곳이다. ‘간(間)’이 사라진 곳에 삶이 머물 수는 없다.
동선이 꼬이고 머리가 닿을 듯 낮은 천장 아래서 행복할 사람은 없다. 구조와 설비를 고려하지 않고 그려진 예쁜 평면은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불편한 공간은 사람을 내쫓는다.
사람이 머물지 않는 건물에 생명력은 없다.
마지막은 이야기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본능적으로 ‘꽉 찬’ 건물을 원한다. 법이 허용하는 건폐율과 용적률을 단 1%의 오차도 없이 한계치까지 채우길 바란다.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이 곧 이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묻고 싶다. 틈 없이 꽉 들어찬 콘크리트 박스 안에서, 과연 삶이 풍요로울 수 있을까?
대지는 저마다의 기억을 품고 있다. 오랫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다져진 땅의 기억과, 그 위에 삶을 꾸릴 건축주의 이야기가 만나야 비로소 생명력이 피어난다. 그런데 이 생명력은 빽빽한 ‘채움’ 속에서는 질식해 버리고 만다.
이야기가 있는 건물이 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비움의 미학’이 필요하다. 바람이 지나갈 길을 터주고, 햇살이 머물 마당을 남겨두는 것. 당장은 면적을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그 비워진 공간이 주는 여유와 조화가 결국 건물의 가치를 몇 배로 높여준다.
이야기가 없는 건물은 영혼이 없는 몸과 같다. 꽉 채운 욕심만 있고 숨 쉴 틈이 없는 건물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금세 잊힌다. 명소(名所)는 면적이 아니라, 이야기가 만든다.
돈, 법, 구조, 그리고 이야기. 이 네 가지의 균형이 깨지면, 나는 그 건물을 짓지 않는 길을 먼저 고민한다.
설령 지금 당장은 "융통성 없다", "면적을 다 못 찾아먹는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상관없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것이다. 짓지 않아야 할 건물을 멈춰 세운 그 판단이, 건축주를 위한 가장 큰 설계였음을.
나는 무조건 짓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멈춰야 할 때를 아는 건축사, 이안(eA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