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설계일 때
동대문 인근의 한 적산가옥 재건축 프로젝트였다. 건축주는 들떠 있었다. "오래된 적산가옥의 느낌을 살리면서, 수익성 있는 신축 건물을 짓고 싶습니다."
겉보기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70년 된 건물의 스토리, 서울 도심이라는 입지. 누군가는 "무조건 된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현장을 둘러보고, 도면을 검토한 뒤 건축주에게 "이 프로젝트는 진행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세운 네 가지 기준—구조, 법, 돈, 그리고 이야기—가 모두 충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현장은 구조적으로 두 가지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
첫째, 샴쌍둥이 같은 뼈대였다. 두 필지로 나뉘어 있었지만, 실제 건물은 하나의 뼈대를 공유하고 있었다. 70년 된 낡은 목조 주택은 옆 건물이 지탱해주던 힘이 사라지는 순간 붕괴 위험에 노출된다. 철거부터 난관이었다.
둘째, 이것이 더 결정적이었다. 바로 ‘죽은 공간(Dead Space)’의 발생이다. 이 땅은 두 개의 사선 제한(정북일조, 도로사선)이 동시에 걸리는 위치였다. 건물의 외관이 사선으로 깎여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 문제는 건물을 지탱하고 사람이 오르내릴 ‘코어(계단실+엘리베이터)’였다.
건물의 뼈대인 코어를 배치하려 하니, 사선으로 깎인 외벽과 충돌이 일어났다. 코어를 피해서 방을 만들자니 모양이 찌그러지고, 억지로 반듯하게 만들자니 그 사이사이로 사람이 쓸 수 없는 ‘데드 스페이스’가 필연적으로 발생했다.
2편에서 나는 말했다. 구조는 곧 공간의 질이라고. 사선에 잘리고 코어에 밀려나, 가구 하나 제대로 놓을 수 없는 자투리 공간만 남은 건물. 안전(Safety)도 담보할 수 없고, 공간(Space)으로서의 가치도 잃어버린 구조. 그것이 내가 본 이 프로젝트의 실체였다.
이 프로젝트가 성립하려면 반드시 한 필지로 가야만 했다. 소유주가 다른 상황에서 억지로 필지를 분리하여 신축하는 순간, 법규가 칼을 들이댄다.
앞서 말한 두 개의 사선 제한이 건물을 난도질한다. 법규를 검토해 보니, 제대로 된 층수를 올릴 수 없는 기형적인 형태가 나왔다. 법을 지키면 건물에 데드스페이스가 과해지고, 건물을 살리려면 법을 어겨야 하는 진퇴양난. 법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건물은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
건축주는 "서울시의 한시적 용적률 완화를 받으면 면적을 더 찾을 수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내가 보는 '돈'은 단순한 용적률 숫자가 아니다. '실제로 팔거나 임대할 수 있는 유효 면적'이다.
첫째, 서류상의 면적은 늘어날지 몰라도 '돈을 받을 수 있는 면적'은 없다. 앞서 말한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사선 때문에 층고는 낮아지고 사람이 쓸 수 없는 죽은 공간만 늘어난다.
둘째, 더 치명적인 것은 '주차장'이다. 용적률 완화로 면적이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주차 대수'가 늘어난다.
좁은 땅에 주차 한 대를 억지로 더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건물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1층 상가 면적을 주차장으로 내어줘야 한다.
위층의 저렴한 주택 몇 평을 더 얻자고, 건물의 핵심 수익원인 1층 알짜 공간을 포기하는 꼴이다. 공사비는 철거 난이도 때문에 치솟을 것이 뻔한데, 정작 돈이 되는 면적은 줄어든다? 투자 대비 수익이 마이너스인 구조. 이것은 사업이 아니라 낭비다.
건축주는 꽤 영리하게 나를 설득하려 했다. 그는 건축사들이 무엇에 약한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소장님, 이게 그냥 건물이 아니잖아요. 적산가옥의 역사성을 살리는 프로젝트입니다. 건축사님들이 이런 아이템 정말 좋아하시지 않나요?"
그 말대로다. 건축사에게 '역사성'과 '재생'은 거부하기 힘든 달콤한 미끼다. 70년의 시간을 품은 벽돌, 오래된 목재 트러스... 그것을 살려내어 멋진 공간으로 만드는 상상만으로도 건축사의 가슴은 뛴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현실 앞에서는 허상에 불과했다.
"적산가옥 신구의 조화." 말은 그럴듯하지만, 현장 상황은 냉혹했다. 한쪽이 철거되어 멸실되는 순간, 적산가옥의 역사적 맥락(Context)은 끊어진다. 남는 것은 반쪽짜리 낡은 남의 집과, 그 옆에 덩그러니 선 쌩뚱맞은 새 건물뿐이다.
이것은 도시재생도 아니고, 프리미엄도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간과 맥락을 억지로 붙여놓은 건물에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깃들 수 없다. 건축주가 내민 '역사성'이라는 카드는, 결국 실현될 수 없는 신기루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건축주는 나에게만 의뢰한 것이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 외국 건축사 등 총 5명의 건축 전문가에게 이 난제를 풀어달라고 요청했었다.
건축주는 의욕적이었다. 소위 '스타 건축가'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 프로젝트를 띄우고 싶어 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세계적인 명문인 영국 AA스쿨 출신의 교수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고 한다. 실제로 나는 그 결과물을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도면은... 화려했다. 유명 대학 교수의 이름값에 걸맞은, 아주 실험적이고 학구적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현장을 아는 내 눈에는 그저 '종이 위에 지어진 신기루'로 보일 뿐이었다.
그 도면 안에는 옆집과 한 몸처럼 얽혀있는 오래된 목조 주택을 어떻게 잘라낼 것인지, 철거 과정에서 발생할 붕괴 위험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 땅이 아무것도 없는 빈 대지(Empty Lot)인 것처럼, 현실의 제약을 모두 지운 채 "이렇게 지으면 멋질 것이다"라는 건축적 상상(Concept)만 가득했다.
나는 묻고 싶다. "그 도면이 과연 땅 위에 설 수 있는가?"
종이 위에서 선을 긋는 것은 자유다. 학생이나 교수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선이 현실의 중력을 버티고, 사선 제한의 칼날을 피하고, 건축주에게 수익을 안겨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화려한 포장지로 감싼다고 해서, 그 안에 든 '구조적 폭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다. 나는 가끔 그 땅의 안부가 궁금해지곤 한다.
과연 그 화려한 도면대로 착공이 되었을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건축주는 그 난해한 투시도를 앞세워, 이 땅을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매물’로 포장해 시장에 내놓지 않았을까? 그리고 구조와 법규의 내막을 모르는 누군가가 그 화려한 그림에 현혹되어 그 땅을 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뒷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그 위험한 '폭탄 돌리기'에 내 도장을 찍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건축주는 종종 묻는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요?"
하지만 나는 안 되는 것을 된다고 희망 고문하는 사람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불안하고, 법적으로 불리하며, 수익성은 낮고, 이야기마저 성립하지 않는 프로젝트. 이런 건물을 짓는 것은 건축주에게도, 그리고 이 도시에 흉물을 남기는 나에게도 씻을 수 없는 실수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 프로젝트를 하지 않기로 했다. 건축사는 무조건 짓는 사람이 아니다. 때로는 짓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 가장 책임감 있는 설계가 된다.
이 냉정한 판단 역시, 나의 가장 중요한 설계였다.
이안(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