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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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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앙다 Jul 20. 2021

여름밤 냄새가 사라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버린 건지, 지구가 아픈 건지.

여름밤에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초여름 한낮의 열기가 한풀 꺾인 저녁, 창문을 열어두면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서 나는 냄새. 이 냄새를 맡으면, 괜스레 추억에 잠기곤 했다. 


학창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친구들과 놀러 다녔던 기억. 마치 열심히 공부하고 온 착한 학생처럼 야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갔던 기억. 그리고 새까만 밤하늘을 보면서 아직 밤공기가 찬데, 일부러 창문을 열어두고 이불에 폭 들어가 잠들던 기억. 


그런데 요즘에는 여름밤이 되어도 이런 냄새가 잘 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그 시절을 추억하는 시간이 줄어든 건지도 모르겠다.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준비하기도 바쁘기 때문인지, 단순히 기분 탓인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여름 특유의 냄새가 나는 이유는 원래 기후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여름엔 땅 가까운 곳의 오존 농도가 높아져, 오존 특유의 비릿한 향이 더 진하게 나는 것이다. 또한, 여름에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식물이나 흙이 내뿜는 물질의 농도가 짙어져 그 냄새도 함께 진해진다. 


낮보다 밤에 냄새가 난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마 시각과 청각이 둔감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집에 들어가 쉬는 고요한 시간, 불이 꺼지고 깜깜해져 낮에 보이던 것들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간, 후각만 예민하게 살아서 그 냄새를 알아차린다. 


그런데 요즘은 낮이고 밤이고, 예전에 경험했던 여름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과거에 내가 경험했던 여름은 초반 장마로 인해 한 주 내내 눅눅한 버스를 타야 하고, 태풍이 몰아치는 사이 한여름 열대야를 반짝 겪고, 늦여름이 되면 밤공기가 금방 서늘해진다. 


반면, 요즘의 여름은 장마라면서 비가 안 온다. 그러다 갑자기 하늘에 구멍 뚫린 듯 비가 정말 정말 많이 쏟아지다 금방 그친다. 그리고 열대야가 생각보다 빨리 오고, 뭔가 낯설다. 이건 내 기분 탓이 아니잖아? 느낌이 아니라 팩트, 말로만 듣던 기후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정말 지구가 아픈 걸까? 




이야기 전개가 뜬금없지만, 지구를 살리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비닐봉지를 모아 재활용한다. 카페에 텀블러를 들고 가고, 씻어서 쓸 수 있는 스테인리스 빨대를 사용해 본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틀고, 한낮에는 조명을 끈다. 생수 페트병을 감싸고 있는 비닐을 분리하고 투명한 페트병만 모아 분리수거한다. 


정말 사소한 일들이다. 이렇게 해서 뭐가 달라질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다. 여름밤 냄새가 정말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아서, 그러다 내 추억도 함께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사실 나이가 들어 버린 것뿐인데, 애꿎은 기후변화 타령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씩 하다 보면, 지구가 좀 회복되겠지? 그때가 되면 내 과거의 추억도 다시 살아나겠지? 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현재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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