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추워지기 전에 바다를 한 번 보고 싶어서, 얼마 전 부산에 내려갔던 이야기다. 비행기를 탈까, KTX를 탈까 고민하다가, 코로나 무서우니 자동차로 가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400km. 내가 최근 운전을 몇 번 해보긴 했지만, 남편의 소중한 차를 운전하는 것은 아직 허락되지 않았다. 남편 혼자 운전하는 것으로 하고, 우린 멀고 먼 그 길을 떠났다.
부산역 앞에 있는 라마다 앙코르 호텔에 체크인을 하면서, 기차 타고 오면 바로 짐 놓고 편하게 나올 수 있는 숙소까지 잡았으면서 우린 왜 굳이 차를 타고 와서 길 위에서 그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티격태격했다. 장시간 운전으로 피곤해하는 남편을 보며, 그러니까 내가 비행기 타고 오자고 했잖아-라며 결국 한 마디 해버린 것이다. 남편은 체력이 약한 나를 걱정해서 일부러 편하게 이동하려는 마음이었는데, 왜 난 굳이 그런 말을 했을까?
분위기 전환도 할 겸, 저녁 먹기 전 일정으로 계획했던 흰여울 마을을 향해 숙소를 나섰다. 흰여울 마을은 부산 영도구에 있는 문화마을이다. 마을 입구 근처에는 주차 자리가 많지 않지만, 운이 좋으면 나가는 차와 타이밍이 맞아 바로 차를 댈 수도 있었다. 우리는 처음엔 자리가 하나도 없어 멀리 주차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혹시 몰라 다시 돌아와보니 마침 나가는 차가 있었다. 타이밍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걷기 시작한 흰여울 마을의 바닷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날씨도 따땃하니, 조금 전 티격태격했던 마음까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탁 트인 바다와 노을지는 하늘의 조합이란! 둥둥 떠 있는 배들은 저기에 사람이 타고 있을까- 타고 있으면 그들을 배 안에서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하게 만들었다. 산책하는 사람들과 강아지들, 사진 찍기 바쁜 청춘들. 이 넓은 바다를 보며 모두 넉넉한 마음이 되었을 것만 같았다.
경사진 윗 동네에는 컬러풀한 담장들과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이어져있었다. 올라가는 길이 조금 가파랐지만, 요즘 러닝과 등산으로 다져진 내 허벅지라면 거뜬하지- 하며 헉헉대며 올라갔다. '변호인'을 비롯한 여러 영화들의 촬영장소였다는 걸 알고나니 더 색다르게 느껴졌다.
흰여울 마을을 떠나 곱창을 구워먹으며, 그곳이 얼마나 좋았는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함께 이야기 나누는 일상이 참 소중했다. 어디에서 시간을 보냈든지 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기에 더욱 행복했던 게 아닐까? 아마 혼자서 왔다면 아쉬웠을 것이다. 같이 왔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면서 말이다.
그 날의 마지막 코스인 신발원에서의 만두는 먹지 못했다. 인기 맛집이라 벌써 만두가 다 소진된 탓이었다. 군만두를 야식으로 먹으려던 계획은 실패했지만, 뜻밖에도 '창비부산'이라는 멋스러운 장소를 만났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창비(=창작과 비평)'인데, 부산여행 와서 창비를 만날 줄이야! 건물이 예사롭지 않다 싶더니만, 1927년에 지어진 백제병원 건물이라고 한다. 현재 부산시 근대건조물로 지정되어 있다고도 한다. 예스럽고 멋지다.
인생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보다 별로일 때도 있지만, 생각지 못했던 좋은 일들도 많다. 그러니 잘 안 풀렸다고 티격태격 하기 보다는, 예상치 못한 우연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 코로나가 이렇게 길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해외여행은 못 가도, 부산에서 이렇게 좋은 순간을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하루하루 기대하며, 감사하면 그걸로 족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