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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Oct 16. 2021

'야생화'를 들으며 오늘도 쓴다


요즘 박효신의 <야생화> Inst.  들으며 무언가를 끄적인다. 이 곡을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약간 비장해지기도 하면서) 좀 더 쉽게 글 쓰는 나로 몰입이 된다.



부드러우면서도

마음 깊숙히 들어오는

도입부의 현악음.


찬 바람에 흔들려도

한 걸음 한 걸음

꿋꿋이 앞으로 나가는 듯한

초반부의 드럼 비트.


점점 고조되다 후렴구 바로 직전,

모든 소리가 일시에 잠시 멈췄다가

훅 들어가는 클라이막스.



곡의 흐름에 따라 흩어진 내 생각과 감정의 조각들이 하나 둘 모인다. 그것이 하나의 줄기가 되고 타이핑하는 손을 거쳐 화면의 글자로 나타나는 이 과정.




"글을 써도 고통스럽고 글을 안 써도 고통스럽다. 그러면 쓰는 게 낫다. 뭐라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니까. 슬프지만 일을 하고, 슬프지만 밥을 먹고, 슬프니까 글을 쓴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으면 내일을 살 수 있다. 서툴더라도 자기 말로 고통을 써본다면 일상을 중단시키는 고통이 다스릴만한 고통이 될 수는 있다."


- 은유, <다가오는 말들> 6p




축구(보는 것과 하는 것 모두), 게임(주로 스타크래프트), 악기 연주(플루트, 기타). 전에 내가 즐겨하던 이 세 가지 활동의 공통점은 이것들을 하고 있는 도중,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축구를 하는 동안 바닥을 치고 있던 모의고사 수학 점수를 잠시 잊을 수 있었으며, 게임을 하는 동안 역시 기말고사 성적의 시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대학생 때 열심히 불던 플루트도 마찬가지였다. 3학년이 되어 동아리방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을 때, 마음이 답답할 때면 종종 가서 머리가 어지러울 때까지 불다 왔다.



30대 중반이 되니 축구, 게임, 악기 연주 이 세 가지 모두 예전처럼 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제 시름을 잠시 잊게 하고 종종 음악과 함께 그 행위에 완전히 몰입하게 하는 새로운 활동은 '쓰기'가 되었다.




하얗게 피어난 얼음꽃 하나가

달가운 바람에 얼굴을 내밀어


아무 말 못 했던 이름도 몰랐던

지나간 날들에 눈물이 흘러

그렇게 너는 또 한번 내게 온다


...


잊혀질 만큼만

괜찮을 만큼만

눈물 머금고 기다린 떨림

끝에 다시 나를 피우리라


- 곡 <야생화> 中

- 작사 : 박효신 김지향 / 작곡 : 박효신 정재일




<야생화>의 가사는 ''같다. 아니, 모든 노래 가사는 한 편의 '시'지만 야생화는 그중에서도 의미가 와닿을 듯 그렇지 않을 듯 내게는 난해한 시다.



하얗게 피어난 작은 얼음꽃 같은 야생화. 차가운 바람에 숨어 있다가, 또 한줄기 햇살에 몸을 녹이다가 그렇게 피어난 야생화. 이 야생화는 곧 박효신 본인일테고 또 노래를 듣고 감정을 이입하는 우리 각자이기도 하다.



야생화가 차가운 바람과 시린 추위를 눈물을 머금고 기다 끝에 피어나는 것처럼 나 역시도 언젠가는 그렇게  피어나리라. 이 가사가 내게는 이런 의미와 해석으로 다가온다.



한 편의 글을 쓰는 것도 한 송이의 야생화가 피어나는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특히 한 줄 한 줄 쉽게 써지지 않는, 마음속에 묵은 때를 조금씩 벗겨가며 써가야 하는 글일수록 더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당분간은 <야생화>의 멜로디를 벗삼아 마음 속 떠오르는 문장들을 써내려갈 것 같다. 들을수록 미묘하게 변주되어 마음 이 부분 저 부분을 스치고 지나가는 이 음악이 숨겨놓았던, 아직 꺼내지 못던 이야기들을 조금씩 드러내게  했으면 좋겠다. <야생화>를 들으며 오늘도 이런저런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다.






https://youtu.be/vohxLldakBw

야생화 Instrunmental  Ver. 




https://youtu.be/2ljVGJUxmzI_  야생화 Piano Cover Ver.



https://youtu.be/OxgiiyLp5pk생화 Official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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