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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Jun 26. 2023

너 T야?


팀원들과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너 T야?'라고 묻는 게 요즘 화제란 얘기를 들었다. 여기서 ‘T’는 MBTI 성격유형 분류 중에 ‘사고형(Thinking)’을 뜻한다. 반대는 ‘F’로 ‘감정형(Feeling)’이다. 쉽게 말해 T유형의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고 F유형의 사람들은 어떤 사실보다는 ‘사람의 감정’을 먼저 생각한다고 할 수 있다.



‘너 T야?’라고 묻는 말에 담긴 속뜻은 ‘너 왜 내 말에 공감 못해줘?’이다. 지금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공감을 원하는데 상대방은 내가 말한 ‘상황’을 분석하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할 때 F유형의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끼는 거다.



책 <당신이 옳다>에서 저자 정혜신은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만 안 해도 훌륭한 공감이라 말한다. 돌아보면 나도 어렵사리 속상하고 힘든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상황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내 감정을 헤아려주고 ‘그랬구나’라는 공감에서 위로를 얻었다. 어두운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것 같은 따스함을 느꼈다. 이 한 줄기 빛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침몰하며 붕괴되는 내면을 멈춰 세웠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주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까지 생각했겠어. 니가 어떤 결정을 하든 네 결정을 응원해.”



언제 분노를 터트릴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상사와 같이 일했을 때, 마음이 병들었다. 결국 몸에도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반복되는 분노 세례를 당한 후 손이 떨렸고 마음 속 어떤 끈이 틱 하고 끊어짐을 느꼈다. 이러다간 ‘공황장애’ 같은 증상이 올 수도 있겠단 생각에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사직서를 내기 바로 전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더는 못 버티겠다고. 1년 남은 인턴을 마치는 것보다 일단 여기서 멈춰야겠다고’ 말했다. 잠잠히 내 말을 들은 뒤 친구가 건넸던 체중을 실은 공감의 말. 아직도 이 말 한마디가 마음에 쏘옥 박혀 잊히지 않고 또렷이 기억나는 걸 보면, 이 말 덕분에 마음을 지켜내고 지금의 내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너 T야?’라는 물음은 내게 공감해 달라는 요청이지만, 한편으론 ‘왜 내게 공감 못해줘?’라는 공격성을 지닌 물음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을 너는 T다, F다로 선 긋듯이 나눌 순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사고형이 더 강한 거고, 어떤 사람은 감정형이 더 두드러질 뿐이다. 사고형 생각과 감정형 생각 모두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마음을 털어놓을 땐 대부분 해결책보다는 감정에 대한 공감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공감’이 어렵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충조평판’없이 공감해주는 게 어렵듯 다른 사람도 그렇다. 공감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설령 어렵게 내 마음을 꺼내놓았을 때 원하는 공감을 얻지 못해도 ‘너 T야?’라는 말로 상대를 몰아세우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가끔씩 속으로 외칠 때가 있긴 하다. ‘으이구 이 TTT!!’ 물론 속으로만. 선긋기가 아니라, 공감 못해주는 그 사람을 탓하기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의 성향이다’라고 인정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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