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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Sep 28. 2023

조카들아, 삼촌도 자랐단다

명절 때마다 느끼는 작은 씁쓸함의 원인 

곧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 오랜만에 조카들을 보게 될 터, 이 아이들이 이번엔 또 얼마나 자라 있을까. 동생의 첫째 아이와 나의 아이는 동갑이다. 그래서 명절에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신나게 잘 논다. 동생의 아이와 내 아이가 어울려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감회가 새롭다. 십년 전만하더라도 이 세상에 분명 없던 아이들이었는데. 나와 동생이 어느덧 커서 각자 결혼을 하고, 이렇게 자녀가 태어나고, 해마다 이 아이들이 해마다 쑥쑥 자라는 모습이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뭔가 모를 약간의 씁쓸함이 마음속에서 올라온다. 이 씁쓸함의 원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렇게 정리가 됐다. 아이들은 해마다 싱그럽게 자라나 있는데 나는 왠지 정체되어 있는 느낌. 물론 사람은 이십대 중반이 지나면 신체적으로 성장이 끝나기에 그 다음부터는 얼굴이라든지 키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때부터는 이제 중력의 힘을 못이겨 피부가 조금씩 처지고 주름이 점점 늙어갈 뿐이다.     



성경의 고린도후서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고린도후서 4:16) 



이말인즉슨 우리의 겉모습은 시간이 갈수록 늙어가지만 우리 안의 영혼은 늙지 않고 오히려 날이 갈수록 새로워진다는 뜻인데, 뭔가 위로를 주는 말씀이긴 하나 날로 새로워진다는 의미가 좀 모호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워지는 게 뭐가 있을까?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시간이 지나면 물리적인 것들은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열정, 희망, 사랑 같은 것들도 그 농도가 옅어지고 변화하기 마련이다. 어떤 식으로든 말이다.



그래도 나의 마음가짐 만큼은 원한다면 매번 새롭게 먹을 수 있으니 그렇게 이해해야 할까? 어찌되었던 내 겉모습은 늙어갈지라도 내 속모습, 내 영혼은 싱싱하게 새로울 수 있다니 이 문장을 붙잡고 씁쓸함을 좀 떨쳐 내야지. 




최근에 아주 오랜만에 축구경기 전후반 90분을 풀타임으로 시청했다. 손흥민이 주장으로 있는 토트넘과 북런던 라이벌 팀이라 불리는 아스널의 경기였다. 토트넘은 아스널의 시종일관 강한 압박에 고전했고, 그러다 결국 실책으로 먼저 실점했다. 아스널의 기세가 커서 아무리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는 토트넘이라도 이번 경기는 어렵겠다고 여기는 찰나, 손흥민이 수비수 세 명에 견제 속에서도 간결한 방향 전환 슈팅으로 이내 동점을 만들었다. 아, 이 주장의 품격! 이 탁월한 감각! 후반전, 다시 토트넘이 실점을 하고 경기가 급격히 아스널 쪽으로 기우는 찰나, 3분도 채 안되어 다시 손흥민의 동점골이 터진다. 두 번째 동점골 장면을 보며 다시 또 감탄과 동시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거의 모든 운동이 힘을 뺄 때 더 좋은 퍼포먼스가 나온다. 손흥민은 첫 번째 슈팅도, 두 번째 슈팅도 간결하게 힘을 빼고 패스하듯 가볍게 슈팅했다. 축구에 있어서 최고 수준의 능력을 가진 선수들의 움직임과 감독들의 지략대결로 어제 경기는 한편의 명작 영화와 같았다. 거기에 주장인 손흥민이 두 골까지 넣었으니! 유난히 피곤한 일요일 저녁이었지만 역시 이런 명경기는 보고 나면 오히려 피로가 풀린다. 



축구선수는 시즌마다 골과 어시스트 등 각종 지표가 있어서 시즌마다 자신의 성장을 데이터로 알 수 있다. 예전에는 골과 어시스트만 봤다면 이제는 키패스나 탈압박, 활동량 같은 다양한 지표들로 분석하기에 더 세밀하게 알 수 있다. 



게임 역시 ‘성장’이 게임을 재밌게 하는 주된 요소다. 한 때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각종 게임에 빠져 있을 때 내 기지와 병력이 늘어나고, 전적이 올라가고, 레벨이 올라가는 이 ‘성장하는 맛’이 게임에 계속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이미 육체적으로는 성장이 끝난 내가 앞으로 이 성장한다는 느낌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일단 객관적인 지표가 있긴하다. 내가 맡은 부서의 실적이 늘어나는 것. 그러면 내가 잘 하고 있구나, 주위에서도 다 인정하겠지. 아니면 승진을 하고 월급이 오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눈에 띄는 확실한 지표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실적이 줄고, 승진에서 계속 미끄러지면? 그러면 나는 퇴보하고 있다는 건가?



뭔가 다른 성장의 지표를 찾아본다. 그래서 고심 끝 찾은 것. 결국 책이다. 그래도 어떤 책을 읽고 난 후에 1밀리미터라도, 아주 미세하게라도 생각이나 관점에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번 명절 때는 작년 추석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한번 정리해보고 내 나름의 한줄평 요약과 깨달음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변화하는 게 어떻게 보면 참 의미있는 성장이고 성숙이니까. 어떤 숫자나 데이터로 내 성장을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작년 추석 이후부터 읽은 책들을 정리해볼테다. 



이번에 다시 훌쩍 자라 있을 조카들을 보게 되면 떠올리리라. 내가 그동안 읽은 책의 목록과 한줄평 깨달음들을. 그러면 ‘너희들만 자란 게 아니야. 나도 자랐단다’라고 겉모습 뿐 아니라 속으로도 미소 지으며 얘기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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