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역시 무수한 변수 발생이 기본값이다. 이 진리를 마음속에서 인지하고 있어야 돌발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고 침착할 수 있다.
인천공항 1터미널 도착. 우리은행 어플로 미리 신청한 홍콩달러 환전 금액을 찾고, 공항서점에서 유심칩도 잘 수령했다. 이제 탑승수속. 아이와 함께 캐리어를 올리고 항공권을 받으려 하는데, 직원분이 말한다.
"저기요 선생님, 여권 이름이랑 항공권 예매 이름이랑 틀려서 수정을 좀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예매한 여행사에 연락을 하시거나, 저희 쪽에서 4만원을 내시고 이름 수정을 하셔야 합니다"
What?!! 항공권을 예매한 게 아내였기에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어떻게 된 거야? 내 여권이름이랑 항공권 이름이 틀리대!!"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아내는 전에 분명히 집에서 항공권 예약할 때 내 이름 마지막 글자 스펠링이 OOO인지 물어봤고 내가 맞다고 했다는 거다. 실제 여권에 기재된 스펠링은 ◇◇인데!
그러나 나는 도저히 아내가 그렇게 물어봤던 게 정말이지 기억이 안 난다. 아, 어떻게 항공권 예매에 기본 중에 기본이면서 가장 중요한 걸 틀려버렸나.
그럼에도 나를 대신해서 가격과 시간대가 맞는 항공권과 가성비 있는 숙소를 눈알이 빠지도록 검색해서 예약해 준 아내에게 뭐라 할 수 없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고 또 걸었다. 그래, 이건 내가 체크했어야 했다.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여.
아내와 통화를 마친 후 확인한 사항은 지금이 이른 아침이라 여행사 고객센터와 통화하는 게 어렵다는 것. 또 통화가 된들 항공권 이름 바꾸는 게 시간이 걸리는 거라 마카오 항공사에서 직접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는 것. 아, 이렇게 4만 원이 날아가는구나. 4만원이면 커피가 몇 잔이냐...
그렇게 이름 수정 신청을 하고 현금 4만원을 준비하는데 마카오 항공 직원이 조금 심각한 얼굴로 말한다.
"선생님, 저기, 원래 이런 경우 보통 스펠링 한 글자 정도는 수정이 가능한데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두 글자가 틀려서 이런 경우는 탑승을 못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에????"
순간 머릿속으로 필름이 촤라락 돌아간다. 비행기를 타지도 못하고, 숙소비와 항공권 예약비를 모두 날려, 절규하며 인천공항 구석에서 앉아 있는 모습이. 아니 가족들이랑 회사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말할 건가. '아 저기 항공권 이름이 틀려서 결구 마카오 못 갔어요...'라고 머리를 긁적이며 얘기할 건가? 안 돼, 안 되애!!'
항공사 직원은 일단 더 알아본다고 하고, 방금 카운터로 들어온 직원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이때는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 제발,, 제발 통과가 되게 해 주세요. 제발 떠날 수 있게 해 주세요. 제발.."
동시에 4만원이 아깝다고 생각한 것도 회개했다. '지금 4만원이 문제야!! 여행 자체를 못 가게 될 수도 있는데!!!' 제발 일단 무사히 비행기만 타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는 찰나에 얘기를 마치고 돌아온 직원이 말한다.
"아 네, 되실 것 같아요 선생님! 서류 작성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니 조금 기다려주세요"
오우 정말이지 머릿속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계속 펼쳐지지, 옆에 딸아이는 울상이 되어가지, 그럼에도 겉으로는 침착한 척, 괜찮다고 딸아이 토닥이며 속 타는
마음 감추느라 혼났다.
결국 4만원을 감사한 마음으로 지불한 후 항공권을 받았다. 다음부터는 그래, 항공권 이름은 내가 체크를 하는 거다. 아내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한 후 탑승 수속을 무사히 마쳤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흑흑.
비행기도 못 타고 여행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는 상황에 있다가, 비로소 비행기 좌석에 앉으니 그제야 마음에 안도감이 들고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조식 이슈
마카오에 예약해 둔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 이번에는 조식 이슈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체크인을 하는데 리셉션 직원이 설명해주면서 체크인 종이에 Breakfast not included 를 가리킨다. 엥? 분명히 아내는 이틀 모두 조식이 포함된 거라고 했는데?!
계속되는 변수의 발생이여. 역시 여행은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일이다. 특히 자유여행은 더더욱.
아내는 분명히 조식이 포함되었다고 하면서 아고다에서 영문확인서를 받아 다시 보내주었다. 자, 이제 영어로 확실히 'Breakfast'라고 쓰여 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겠지. 그러나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설명한다.
"손님은 아고다를 통해서 예약했지만 이 아고다는 또 다른 회사를 통해 우리 리조트로 예약을 했다. 우리가 받은 확인서에는 조식포함이 아니다. 아고다든 또 다른 회사든 직접 전화를 줘야 한다."
또 오랜만에 영어로 이런 내용들 이해하고, 또 얘기하려 하니 스트레스가.. 1시 반에 리조트에 도착을 했는데 이 문제로 아내랑 연락을 주고받고 또 아고다 측 얘기를 기다리다가 결국 받은 답변. 일단 이 문제도 처리되는데 2-3일이 소요되니 일단 체크인을 하고 나중에 조식 영수증을 첨부해 달라는 것.
결국 일단 리셉션 직원에게 조식은 따로 신청하고 체크인을 하겠다 해서 3시 넘어 방으로 들어왔다. 이거 뭐 하나하나 쉽게 가는 게 없다.
분명 조식 포함인데 흑흑
브로콜리 너마저
오늘의 변수 피날레. 기내식을 깨작깨작 먹을 때부터 예상된 수순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에 공항에서 샌드위치 하나 먹고, 점심으로 기내식 깨작깨작 먹고, 숙소 와서 리조트 수영장에서 1시간 반 물놀이 하고. 그래, 그러면 에너지가 딸리겠지. 급격하게 피곤하면서 투정이 늘겠지.
일단 저녁을 먹으러 마카오 시내 쪽으로 가야 했기에 수영장을 나온 후 서둘러 샤워를 하고 셔틀버스를 탔다. 무료 셔틀버스의 목적지는 시내 쪽 그랜드 리스보아 호텔. 여기서 내려서 또 고난이 시작된다. 일단 호텔 안 지하주차장에 내렸으니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대체 어디로 나가야 하는 건지. 이 호텔은 왜 이리 큰지.
분명 1층으로 가서 한참을 걸었는데 밖에 나가는 출구가 없다. 알고 보니 마카오에서 일층은 Ground의 'G'이고 숫자 1은 우리나라로 2층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 리스보아 호텔도 번화가 쪽이 아닌 번화가의 살짝 바깥쪽이 외곽 쪽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났겠다, 물놀이까지 했겠다, 먹은 거라고 샌드위치 하나에 기내식이 전부였던 나와 아이는 이미 피곤해있었다. 그런데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아 구글맵을 보며 열심히 걷다가 한 쇼핑센터 푸드코트에 도착했다.
메뉴를 고르려 하는데, 아이가 투정을 부린다. "아무것도 먹고 싶은 게 없어. 나 밥 안 먹으면 안 돼?"
What?!! 이 말에 나는 꼭지가 돌아버린다. 일단 뭘 먹고 기운을 차려야 내일 또 물놀이도 하고 어디 돌아다닐 수 있는 건데 이게 무슨 말이가 방구가. 아내가 왜 딸아이 밥먹이는 것 때문에 종종 깊은 빡침의 표정을 지었는지 순간 이해가 갔다.
아이가 또 얘기한다. "아빠 나 한식 먹고 싶어. 여기 음식 냄새들이 다 이상하고 느끼해"
나는 더욱 표정이 굳어지고, 너 지금 저녁 제대로 안 먹으면 내일 물놀이고 뭐고 없다고 얘기하면서 나와 아이의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이어서 또 깨작깨작 저녁을 먹는 아이의 모습에 나는 또 혈압 상승.
확실히 음식들이 좀 느끼하긴 했다. 그래서 리조트에 돌아가기 전에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을 들려서 상큼한 사과나 과일들을 좀 사가고 싶었다.
그런데, 저녁 먹고 소화가 슬슬 되면서 졸음이 몰려오는 와중에 마카오의 습한 공기 속에서 걸으면서 땀은 삐질삐질 나는데, 도무지 편의점이나 마켓이 보이지가 않는다.
중심부인 코타이 쪽까지 걸어 와서 삐까 뻔쩍한 원팰리스호텔, 베네시안 호텔, 런더너 쇼핑몰 쪽까지 걷고 또 걸었는데 왜 이 큰 번화가에서 마켓이 안 보이느냔 말이다. 아이는 계속 투덜인다. 아빠 대체 언제까지 걷는 거야. 나 이제 못 걸어. 아빠 왜 이렇게 헤매는 거야.
야, 누구는 헤매고 싶어서 헤매냐!! - 라고 속으로 분을 삼키고 다시 구글맵을 번갈아 보며 편의점이나 마켓 같은 데를 찾아보지만 결국 1시간여를 걷고 걸어도 못 찾고 리조트로 돌아왔다.
"아빠 나 비행기 타고 한국 가고 싶어. 엄마 보고 싶어. 너무 힘들어. 엉엉엉~"
딸아이와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자 마카오에 왔건만 첫날부터 아이는 울음을 터트린다. 아, 이것도 예상치 못한.. 이렇게 말하기도 지쳤다.아무리 무수한 변수 발생이 여행의 기본값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돌발 상황이 계속 발생할 줄이야.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가며 이렇게 마카오까지 왔지만 아이가 우는 걸 보니 정말 괜히 왔나 싶기도.
고생 고생하며 한 여행이 나중에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말이라도 붙잡아야 하는 걸까. 그러기엔 첫날 맞닥트린 사건 하나하나의 임팩트와 에너지 및 감정 소모량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