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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Aug 03. 2024

딸아이와 단둘이 마카오 여행 5

아빠, 다음에 언제 또 길게 쉬어?


"아니면 돈을 모아서 액수가 커지는 쪽을 택할 수도 있어요. 23년 후에는 액수가 커지니까 그때 여행을 갈 수도 있죠."

"하지만 그때가 되면 아이들은 더 이상 10대가 아니죠. 그리고 여행을 떠올릴 때마다 23년 동안 지었을 웃음과 미소도 사라지는 거죠. 마흔두 살에 하는 래프팅, 번지점프는 예순다섯 살에 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_ 존 스트레레키 <다시, 세상 끝의 카페> 149p



* 버스 타기 


낯선 나라에서 딸아이와 단둘이 여행자가 된다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별다른 어려움 없 했을 사소한 것들도 낯선 나라에서는 다 새롭고 긴장이 된다.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부터 해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간단하게라도 의사소통하는 것 등등.



마카오 여행 둘째 날에는 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구글지도가 정류소를 찍으면 거기에 어떤 버스가 서고, 그 버스는 어느 노선을 가는지 생각보다 잘 알려줬다. 무엇보다 버스가 택시보다 훨씬 싸니까!  마카오에선 버스비가 홍콩달러로 6달러. 우리 돈으로 1,100원 정도 한다. 할증도 없어서 1,100원만 내면 꽤 먼 거리도 갈 수 있다.  



버스 타기는 좀 고되지만 짜릿하다. 일단 정류소에서 이게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하고 목적지 영어 이름도 거듭 체크해야 한다.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오면 얼마나 반갑던지.



버스를 탑승하고 나면 그다음엔 내가 내릴 정류장을 거듭 확인한다. 버스 안 전광판에 Nest Stop is "Grand Coloan Resort"라고 뜰 때 놓치지 않고 누르려고 조마조마함을 머금는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는 정류소 도착해 딱 내리는 순간의 짜릿함이 있다.  



그리고 뿌듯함. 내가 뭔가 이 여행지 속에 더 깊숙이 들어갔다는, 현지인처럼 버스를 탔다는 그런 뿌듯함이 분명 있다.

  



* 반달 모양 웃음 눈


마지막 날을 빼곤 아이와 매일 물놀이를 했다. 특히 스튜디오 시티 워터파크에서 원형 튜브에 앉아 서로 마주 보고 슬라이드를 탈 때, 딸아이가 짓던 반달모양 웃음 눈이 기억에 남는다. 즐거운 비명과 환호성을 지르며 급경사로 미끄러져 내려갔던 튜브. 그리고 그 안에 딸아이와 나. 찰칵하고 마음속에 남겨진 모멘트였다.





* 아빠, 다음에 언제 또 길게 쉬어?


벌써 한참 된 것처럼 아스라한 기분이 든다. 휴가 복귀 후 첫 주였던 이번 주. 월요일에는, '아 이 시간쯤에 리조트 도착해서 수영할 준비하고 있었는데.' 화요일에는, '일주일 전 이맘때 카페에서 갓 나온 에그타르트와 커피를 먹었었지' 이렇게 시간을 일주일 전에 마카오에서 뭘 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제 오늘 이 시간은 일주일 전으로 시간 되감기를 해도 집에 와 있을 때다. 그래도 다음 주까지는 여행의 여운이 남아 있어서 요일별로 '이날 마카오에서는 뭘 했었지 참' 하고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인천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때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 다음에 언제 또 이렇게 길게 쉬어?"



이 말이 계속 여운에 남아 딸아이와의 다음 여행을 생각해 보게 된다. 아마도 내년 여름이 되겠지. 내년에도 이렇게 딸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가게 될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낯선 곳으로 이렇게 여행을 많이 가고 싶다. 낯선 곳에선 조금 더 서로를 관찰하게 되고, 의지하게 되니까. 추억의 농도가 아무래도 좀 더 진하니까.



내년 여름휴가까지 까마득하긴 하나, 이번 여행에서 만든 추억을 양식 삼아 1년을 열심히 살아야 겠다. 아이의 울음과 웃음, 고생과 즐거웠던 기억들을 곱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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