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와 단둘이 마카오 여행 2
이런 출발은 너무 아찔하잖아
짐싸는 게 왜이리 귀찮을까
주말에 휴가 전 하고가야 할 업무를 끝내야 했던 나는 결국 밤 10시부터 본격적으로 짐을 싸기 시작한다. 여행을 떠나는 건 좋으나, 짐 싸는 건 왜이리 귀찮던지. 그래도 당장 내일 새벽 4시 25분에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야하니, 이제는 더 미룰 수가 없다.
대략 옷 넣고, 치약 칫솔 챙기고, 멀티어댑터 챙기고, 마카오 여행 책 챙기고, 금방 끝내고 11시반에는 자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챙길 게 두루마리 휴지 풀리듯 계속 생겨난다.
'아 맞다, 수영복이랑 아쿠아 슈즈!' '아 맞다, 유심 수령 미리 신청해야지.' '아 맞다, 여행자 보험!' '기내용 목베게!' '아 맞다 모자랑 우산!'
여행만큼은 미리 너무 계획 세우지 말고, 체크리스트 그런 거 만들지 말고 약간 되는대로 가자는 주의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 임박해서 준비했나 싶기도. 목,금,토 3일간 계속 5시간 정도 밖에 못 자서 몸은 피곤하고, 당장 내일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집을 나서야 한다 생각하니 여행이고 뭐고 왜이리 귀찮던지!
짐 챙기기 마지노선은 밤 12시까지로 정했다. 아, 모르겠다. 여기서 더 못 챙기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이런 출발은 너무 아찔하잖아
눈을 떠보니 4시 15분. 오 마이 갓!! 4시 25분 공항버스 탑승인데 4시 15분?!! 혼비백산하며 아내와 아이를 깨우고 캐리어와 가방을 챙긴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며 빠르게 머리를 굴린다. '아무리 공항버스 정류소가 집에서 버스 두 정거장 거리로 가까이에 있다지만, 아내가 차로 후다닥 태워줘도 늦을 수 있다.' '다음 버스를 예약해야 하나? 다 차 있으면 어떡하지?' '일단 가자, 일단 빨리 나가야 해'
아내는 둘째를 들쳐매고 차키를 챙기고, 나는 첫째의 캐리어를 들고 후다닥 엘리베이터 탑승.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고 가족 모두가 후다닥 차로 뛰어간다.
공항버스 정류소 도착 시간 4시 24분! 정말 10분만에 왔다. 가족 모두가 구급대월 출동 하듯이 나의 절박한 외침에 곧바로 짐만 들고 뛰어 나왔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한 무리의 중년 남성들이 큼지막한 골프채 가방 몇개를 버스 짐칸에 실어 넣고 있어준 덕분에 공항버스 출발이 좀 지연되기도 했다. 아이와 버스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여행의 시작을 실감한다.
그런데 이런 시작은 너무 아찔하잖아. 공항 버스를 놓치면 어쩔뻔 했나. 둘째가 어려서 아내가 인청공항까지 장거리 운전으로 태워줄 수도 없고. 그래도 무사히 버스를 탔으니 그저 감사 또 감사다.
버스 자리에 앉아 아이와 함께 아내와 둘째에게 손을 흔든다. 웃음이 나온다. 진짜 10분만에 탔다. 공항버스를.
"하이야, 진짜 아슬아슬했다 그치? 이제 공항까지 쭉 가는 거니까 좀 더 자두자"
목베게를 목에 두르고 버스 의자를 뒤로 젖히니 기분좋게 눈이 감긴다. 어찌어찌 미뤄지고 밀려서 마음에 짐 같았던 여행 짐 챙기기와 준비가 끝나고, 버스도 무사히 탔고. 이제 여행이 진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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