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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과 과제와 몰입

by 김이안


새벽 2시에 일어나 허겁지겁 과제를 했다. 제출해야 할 독서 리포트와 특강 리포트만 7개. 입술을 깨물며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일단 정해진 시간 안에 제출하는 게 중요하니까. 내용은 둘째 치고, 정해진 양을 채우는데 초점을 맞춰서 의식의 흐름대로 다다다다 한글파일의 빈 화면을 채워갔다.



결국 마감 10분 전에 모든 과제 페이퍼 제출 성공. 월매나 속이 후련하던지. 사실 연휴 후유증이 다른 때보다 더 있었던 이유는 과제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아무리 긴 연휴라고 하지만 빨간날은 빨간날이다. 연휴 전에는 '아 이번 연휴는 기니까 과제도 최대한 해놓고, 책도 읽고, 글도 써야지' 생각해도, 막상 연휴가 되면 빨간날 특유의 '쉬고 뒹굴거리고 놀아야 한다'는 우주적인 기운이 분명 있다.



그러니 과제를 하려 해도, 명절 연휴라는 우주적인 기운이 나를 끌어당겨 책상에서 멀어지게 했다 - 고 자기 합리화를 했으나, 결국 제출일 당일 새벽 나는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과제의 늪을 헤어나고 있었다.



아, 이 후련함. 정신의 쾌변이 이루어졌도다. 눈은 충혈됐고, 잠을 못 자 머리는 헤롱헤롱해도 해냈다는 뿌듯함이 나를 도취시킨다. 잘했다. 잘했어. 해냈다. 해냈어.



자격증 과정. 공부할 것도 많고, 과제도 많고, 여러모로 귀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주 한 주 과제를 해낼 때 느껴지는 뿌듯함이 있다. '좀 더 미리 좀 할 껄'하는 자책과 후회 속에서도 다다다닥 키보드를 두드리며 과제에 열중할 때 몰입으로 인한 모종의 희열이 분명 있다. 그래서 공부할 때 행복하다 라는 말이 있나 보다. 공부도 몰입의 일종이니까.




<고전이답했다> 83-85p




7월까지 계속 과제와 시험의 압박에 짓눌리고 괴로워하겠지만 그래도 공부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 새벽에 책을 뒤적이며 과제를 하고 있는 내 모습. 어쩔 땐 스스로의 모습에 웃음도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것. 공부가 확실히 공부가 정신건강에는 좋다. 그러나 공부는 역시 체력이 중요하다.



또 하나, 몰입해서 뭔가를 작게라도 해낼 때, 그 콩알만 한 뿌듯함과 희열이 정신건강에 참 이롭다. 몰입하고 있는 그 상태 자체가 사람을 살아있게 만든다.




"때때로 너무나도 강렬한 감정에 빠져 나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마치 말을 할 때나 편지를 쓸 때 거침없이 단어들이 줄줄 쏟아져 나오듯이 붓놀림이 이루어지곤 한다"


_ <서양미술사> 547p, 반 고흐의 편지


'Starry Night'(1890) _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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