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남동생에 이어 이번에는 막냇동생이 결혼을 했다. 일곱 살 차이 나는 여동생과는 부단히도 많이 싸우고 부딪혔다. 어찌 보면 세대 차이, 어찌 보면 자매 간의 다툼이었으나 여타 자매 전쟁과는 달랐다.
세대 차이, 취향 차이 때문인지 여동생과 옷으로 싸워본 적은 없었다. 아마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뚱뚱하게 살아온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서로의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장녀로서 보는 일곱 살 어린 막내의 결정들은 불구덩이로 자처해서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고, 그런 언니의 잔소리는 아마 자신의 결정을 늘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그렇게 부딪히며 반복하기를 수년. 어느새 동생은 서른이 넘었고 드디어 조금은 서로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불편하지만 티 내지 않는, 때로는 의지가 되는 자매 사이로 최종 결정이 났다.
그런 동생이 결혼을 한다. 내 결혼 때 플래너를 자처하고 도와주었던 동생이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이가 있고, 생활의 처지가 그때와 다르다는 것 등이 이유가 되었다. 적은 돈이지만 축의금 입네 미리 내밀며 그 정성을 대신했다. 나의 최선이었다.
내 결혼식 내내 가방순이를 자처하며 친구들을 맞이해 주었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대신 천방지축 그녀의 조카(a.k.a. 내 아들)가 뛰지 못하도록 수 차례 방어하였다. 비록 마지막에 버진 로드 수비는 뚫리고 말았지만 비교적 영상이 주야장천 나오고 있는 패드와 함께 선방한 것으로 보인다.
언니의 결혼이 진행되는 동안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많은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들어 준 정성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울먹이며 영상 편지를 남겼고, 그것이 동생에게 웃음을 주길 바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소중한 내 가족, 내 동생, 하나뿐인 여자 형제. 이제는 한 가정을 꾸려 나가는 진정한 어른이 되었으니 언니의 잔소리도 정말 멈춰야 하는 때가 온 거겠지. 늘 뒤에서 도움과 조언을 요청하는 너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겠다는 것, 그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언니가 줄 수 있는 결혼 선물이다.
축하해. 내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