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10대와 통하는 스포츠 이야기
덴마크 하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드링킹 요거트와 행복지수 1위. ‘휘게’로 잘 알려진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 걸까? 경제, 정치, 복지 등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덴마크 사람들의 오랜 관습과도 같은 ‘얀테의 법칙’이다.
모세의 10개명과 닮은 얀테의 법칙 중 제1법칙은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이다. 나머지 9개의 법칙도 자신을 스스로 특별하거나 남들보다 우월하게 여기지 말라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너는 특별해!”를 들으며 자란 한국인, 나로서는 즉시 납득이 되지 않았다. 너무 냉소적이잖아! 이런 말로 시작하는 이유는 이번에 소개할 책이 덴마크에 관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얀테의 법칙을 접한 나의 감상이 이번 책을 읽은 감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민혁 삼촌과 윤진 이모가 들려주는 『10대와 통하는 스포츠 이야기』이다. 청소년을 겨냥한 책이지만 스포츠 애호가라면 누구나 흥미를 느낄만한 여러 이야기가 담겨있다. 다만 10대가 선호하는 책의 ‘3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쉽고, 짧고, 재미있다. 왜 한국은 야구를 하고 인도는 크리켓을 하는지, 영국은 왜 네 개의 팀이 월드컵에 출전하는지, 미디어의 발전이 스포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바둑은 스포츠인지 아닌지 등등 내용 자체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2~3페이지 안에 짧고 쉽게 풀어놓았다.
축구가 탄생한 나라인 영국에서는 네 개의 팀이 월드컵 예선에 출전한다는 사실 알고 있어요? …
어떤 사람들은 영국이 네 개의 나라가 합쳐서 이루어진 연방국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말해요. …
어떤 사람들은 영국이 축구를 발명한 종주국이기 때문에 네 개 팀이 출전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고 주장해요.…
이 궁금증의 해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유니폼에 있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월드컵 대회는 엄밀하게 말해서 국가 대항전이 아니에요.…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한 전 세계의 축구 협회들이 모여서 치르는 대결인 거죠.-p.71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쉽고, 짧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가만히 읽다 보면 마음에 서늘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마치 행복한 덴마크에 대해 읽다가,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얀테의 법칙을 접했을 때처럼.
우리나라는 올림픽 강국이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 종합 성적 10위를 차지한 이후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제외하고(12위) 줄곧 10위권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런데, 사실 공식적인 국가별 올림픽 순위는 없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국가별 순위를 정하지 않는다. 올림픽 순위는 누가, 왜 정하는 걸까?
그럼 메달 수를 집계해서 나라별 순위를 따지는 것은 누구일까요?
그건 바로 텔레비전 방송사나 신문사 같은 언론이에요. …
언론사들이 순위를 내는 방식은 우리의 관심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해요.
나라별 순위를 강조하니까. ‘우리나라 선수가 다른 나라 선수를 이기고’,
‘다른 나라보다 높은 금메달 시상대 위에 올라가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우수하다’는 걸 증명하는 데만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어요.
한 명 한 명의 선수들이 오랜 훈련을 통해 보여 주는 아름다운 움직임과 투지,
번뜩이는 기지 등은 제쳐 두고 말이죠. -p.20~21
스포츠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일종의 문화 산물이다. 그 말인즉슨 독립적으로 발생하거나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른 문화가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로 스포츠 역시 당대의 이데올로기와 사회 조건에 따라 진화해왔다. 문화 암흑기였던 중세 1,000년 동안(5~15세기)은 영혼만이 고결하고 육체는 불순했기 때문에 스포츠는 고사하고 활동적인 놀이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후에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과 함께 돈도 생기고 여가도 생기면서 지역 수준의 신체 놀이가 생겨났지만, 지금처럼 국제적인 스포츠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19세기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 역시 과학과 경제 발전이 이룩한 여러 산업 중의 하나이며, 산업 확장의 중심에는 대중매체와 언론이 있었다.
지역에서만 즐기던 스포츠는 라디오를 통해, 텔레비전을 통해,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바다 건너 사람들과 함께 즐기게 되었다. 사람이 모이면 돈이 모이고, 돈이 모이면 의도가 생긴다. 의도는 간혹 본래의 것을 왜곡하기 마련이다. 스포츠라고 자본주의의 세계 정복을 막을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언론과 매체를 통해 접하는 스포츠의 모습은 우리의 ‘돈’을 얻고자 하는 의도로 가득하다. 바로 이런 의도를 가지고 언론사는 국가별 올림픽 순위를 정한다. 국가별 순위는 자칫 경쟁에만 집착하게 하여 다른 올림픽의 가치를 흐리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이만한 자극제도 없다.
사실 우리는 언론이 의도적으로 주도하는 방식에 따라 올림픽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언론에 호도되어 메달과 순위에만 집착한 적은 없을까? 언론이 자극하는 대로 열광하고 비난하다가 정작 진실과는 멀어진 적이 있진 않을까? 지금까지 언론이 자극하는 대로만 올림픽을 즐겨온 건 아닐까?
텔레비전 통해 보는 올림픽은 세계 평화와 화합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되어있지만, 올림픽을 찬란한 척 비추는 조명은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기도 한다. 눈부신 것만 이목을 끌뿐이다.
생명을 함부로 다뤘던 평창 올림픽의 준비 과정은 30년 전 열렸던 1988년 서울 올림픽과
판박이였어요. 그 당시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전 세계에 발전한 한국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그래서 도시를 정비해야 한다며 가난한 동네의 집들을 강제로
철거했어요.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변두리로 쫓겨났는데 그 수가 무려 72만 명에 달했지요.
이들 중에는 부천의 고강동 도로 주변에 임시로 집을 마련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 임시 거처마저 올림픽 성화가 지나가는 길목이라는 이유로 철거됐어요.
발전된 한국의 이미지를 망가뜨릴 수 있으니까 외국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살라고 했던 거예요. 결국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땅굴을 파고 들어가 생활해야 했어요. -p.28~29
대회 운영과 흥행 모든 면에서 호평을 받은 지난 평창 올림픽에도 역시 포장지로 갈려버린 희생이 존재했다. 단 3일간의 스키 경기를 위해서 강원도 가리왕산의 60만 그루의 나무가 잘려 나간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논란으로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즐거웠던 축제 뒤에 안타까운 모습을 무시한다면 축제는 점점 엉망이 돼버리고 말 것이다.
지난해(2018년)에는 나무가 잘려 나갔지만 30년 전에는 사람이 잘려 나갔다. 1988 서울 올림픽은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 개선이라는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이 성과를 위해 정부는 서울시 빈민가를 강제로 철거하고 무려 72만 명의 가난한 주민을 거리로 내몰았다. 평화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림픽 종목의 역사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다가도, 올림픽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에 대해 읽게 되면 순간 마음에 서늘함이 느껴진다.
지난해 평창 올림픽의 열기는 곧이어 러시아 월드컵으로 이어졌다. 프랑스가 20년 만에 월드컵을 되찾으면서 다인종으로 구성된 프랑스 국가대표팀, 뢰블레가 또 한 번 주목받았다. 실제로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프랑스 대표팀에 토종 프랑스인은 단 두 명밖에 없었다. 1998 월드컵 때나 유로 2000 때도 그랬듯이 뢰블레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나면 늘 다인종으로 구성된 국가대표팀이 주목받는다. 뢰블레의 승리는 차별 없이 개인을 존중하고 외국인도 사회적 혜택을 똑같이 보장받는 선진화된 프랑스 사회 체제의 승리로 선전된다. 자유, 평등, 박애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선구자적 민주주의의 선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자유, 평등, 박애의 땅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이야기를 한 편 소개한다. 아프리카의 기니라는 나라에서 축구선수를 꿈꾸던 한 소년, 제라드의 이야기다. 16세의 제라드에게 한 에이전트가 찾아왔다. 재능이 있다며 프랑스로 건너가 프로 구단에 입단 테스트를 받아보자는 것이었다. 항공료, 숙식비 등 가난한 가족에게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지만, 제라드의 가족은 무리해서 제라드를 에이전트와 함께 프랑스로 보내게 된다. 어쩌면 지긋한 가난에서 해방될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제라드는 먼 타국에 혼자 버려지고 말았다.
프랑스에 도착한 제라드는 아저씨들을 따라 이 클럽, 저 클럽을 다니며 테스트를 받았어요.
그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 많았지요.
그런데 몇 주가 지나자 아저씨들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어요.
돈도 여권도, 모든 서류도 아저씨들이 가지고 가버렸어요.
결국 제라드는 방값조차 내지 못해 숙소에서도 쫓겨났어요.
제라드는 기니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가족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서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제라드는 불법 체류자가 되었어요. -p.83
유럽 축구의 열기는 전 세계적으로 정말 대단하다. 그 열기만큼 과열된 시장에서 좋은 선수들은 거액의 이적료로 거래되기 때문에, 구단들은 돈이 될 만한 유망주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이 와중에 가난한 사람들의 절박한 마음을 이용해서 사기를 치는 불법 에이전트까지 등장한 것이다. 매년 아프리카의 가난한 아이들은 지단, 캉테, 포그바처럼 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간다. 하지만 모든 유망주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실패한 유망주를 구단은 책임지지 않는다. 사기꾼에게 당한 피해자들도 있지만 어린 청소년을 그저 돈으로 여기는 산업 자체가 만들어낸 피해자도 있지 않을까?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선수를 교육에서 제외하고 운동만 시키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을 교육하는 이유는 고도화된 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여기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 처음으로 각종 스포츠 종목에서 유망주를 발굴하여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공부를 안 해도 되는 혜택(?)을 주기 시작했다. 이들을 국위 선양의 도구로 삼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축구 유망주를 경제적 도구로, 한국에서는 정치적 도구로 사용한 셈이다. 산업의 도구로, 국가의 도구로 이용당하기 싫다면 인생을 걸라는 낭만에 속지 말고 저항하기를.
찬란한 유럽축구 밑바닥에 어두운 면을 마주하니 마음이 차갑지 않은가?
얀테의 법칙을 접했을 때 다소 냉소적이라 느꼈지만, 그 서늘함은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 느낌은 진실을 마주했을 때 이성이 깨어나는 상쾌한 차가움이었다. 그래, 내가 잘난 것이 뭐가 있겠나. 사실 인간은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통제할 수 없는 것 속에서 살아간다. 순전히 나의 힘으로만 얻어낸 성취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우월하다고 뽐낼 것이 하나도 없다.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얀테의 법칙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여기고, 존중하고 배려하도록 안내한다. 조화롭게 사는 법을 가르친다.
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이성이 깨어나는 서늘함을 느낀다. 모두가 동등하다는 진실을 깨달아야 과시하지 않고 조화롭게 살 수 있듯이, 스포츠의 진실을 알아야 우리는 스포츠와 사회를 더욱더 조화롭게 가꾸어 나갈 수 있다.
내 감상이 조금 무겁게 표현된 것 같은데,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정말 쉽고, 짧고, 재미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스포츠 이야기들이 무려 58가지나 담겨있다. 다양한 스포츠 지식을 쌓기에도 좋은 책이다. 다만 서늘한 순간에 생각거리도 많이 얻을 수 있으리라. 어떻게 하면 스포츠와 사회를 더 조화롭게 가꿀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덴마크인만큼 스포츠인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