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
p38.
나는 어디에 서서 어떤 풍경을 보고 있는가. 내가 서 있는 땅은 기울어져 있는가 아니면 평평한가. 기울어져 있다면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이 풍경 전체를 보려면 세상에서 한 발짝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이 세계가 어떻게 기울어져 있는지 알기 위해 나와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사람과 대화해보아야 한다.
p42.
호모카테고리쿠스, 인간은 범주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범주로 구분하는 습관이 있다.
p53.
이런 연구들을 보면, 집단의 경계가 생각보다 공고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집단을 가르는 경계는 상황에 따라 만들어지고 또 움직인다.
p74.
구조적 차별은 이렇게 차별을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미 차별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어서 충분히 예측 가능할 때, 누군가 의도하지 않아도 각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차별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생긴다. 차별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불이익을 얻는 사람 역시 질서 정연하게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불평등한 구조의 일부가 되어간다.
p79.
그래서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없는가?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성찰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지적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 시야가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를 발견할 기회이다. 그 성찰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회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차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p108.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정의로운 것인지 판단하는 유용한 방법으로 존 롤스가 말하는 "무지의 장막"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가난한지 부자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능력이나 재능이 어느 수준인지 등 어떤 조건에 처해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가정하고 사회질서를 정할 때, 개인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모두에게 정의로운 규칙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p109.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만 하면 공정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이 된다. (중략)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도리어 누군가를 불리하게 만드는 간접차별의 예들이다.
p113.
능력은 한 가지가 아니며 그 사람의 전부도 아니다.
p133.
한 가지 교훈은 분명하다. 때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상처를 주는 잔인한 의미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p188.
이미 우리의 삶은 상당히 획일적인 형태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불평등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고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불편함을 견딜 것인가? 이 선택은 단순히 개인의 수고로움이나 불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가치와 지향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정말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p199.
차별금지법에 대해 누군가는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에 제정이 어렵다고 말한다. 이때의 사회적 합의는 적어도 다수결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다수결 제도의 한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인 차별을 다수결로 해결하려는 것이 의미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p204.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공존의 조건으로서 평등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고정된 '옳은' 삶을 규정하지 않는 이 해체의 시대가 버겁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는 인류가 지속적으로 갈구하는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왕족이나 귀족이라는 소수가 누리던 자유를 민중이라는 다수가, 그리고 다음 단계로 사회 바깥에 놓여 있던 모두가 향유하게 될 때까지 세상은 아직 더 변해야 한다.
p205.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p209.
어떤 집단의 경계 밖으로 내쳐지는 일은 두려운 일이고, 그 경계 안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많은 걸 희생한다. 이 책에서 나는 이 어울림의 공포와 싸우는 한 가지 방안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소속되기 위해 '완벽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거나 그런 사람인 척 가장하는 대신, 모두가 있는 그대로 어울리는 사람으로 환영받는 세상을 상상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최소한 내가 배척당할까 봐 두려워 다른 누군가를 비웃고 놀리고 짓밟는 일이 없도록, 넉넉하게 모두를 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