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by 수하




p53.

주위를 둘러보다 결국 어떤 공간을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낡음'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반짝이지도 매끄럽지도 않은 시간이 거기 그냥 고이도록 놔둔 집주인의 자신감과 여유가 부러웠다.


p86.

평소에도 여러 번 들은, 눈 깜짝할 사이 폭삭 늙어버린 엄마가 내게 보낸 '고맙다'는 문자를 보자, 이상하게 그 말을 받은 게 아니라 언젠가 내가 상대에게 준 무언가를, 아니 오랜 시간 상대가 내게 주었다 생각한 무언가를 도로 빼앗은 기분이 들었다.


p95.

오늘 하루, 이곳에서만 고맙다는 말을 세 번이나 들었는데 가슴이 왜 이렇게 휑한지 모르겠다고.


p141.

그런데 여보, 우리가 잘살게 되면 우리가 '더' 잘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때도 이웃이 생각날까? 그저 약간의 선의와 교양으로 가끔 어딘가 기부하고, 진보 성향의 잡지를 구독하는 정도로 우리가 좋은 이웃이라 착각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까?


p175.

경험이 많다는 건 '경험을 해석했던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p200.

우리 몸은 어떤 자극이 왔을 때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한다. 받아들이거나 도망치거나, 하지만 이명의 경우 몸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한다 우리는 그 혼란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져야 한다.


p214.

아무리 최선을 다한들 자신은 이 감정을 평생 느낄 거라는 점도, '나만 겪는 일은 아닐 텐데, 누군가는 진작 감내해 온 일일 텐데.' 다들 대체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p316.

앞으로도 저는 여전히 삶이 무언지 모른 채 삶을, 죽음이 무언지 모른 채 죽음을 그릴 테지만, 때로는 그 '모름'의 렌즈로 봐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새로 배워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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