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고백

절망의 끝에서

by 수하

약이든 술이든 잠이든, 그저 버텨 주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약을 끊겠다니.


그는 위태로운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형부는 나만 알고 있으라며, 그가 임신을 준비하려 병원에 다닌다고 말했다. 이렇게라도 해야 숨이 쉬어질 것 같다고 했다고, 본인은 그가 원한다면 그대로 따르겠다고 덧붙였다.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내가 걱정할까 봐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묵묵히 듣다가 한마디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냥, 두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으면 좋겠어요.”


처음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어떤 결정이든, 결과가 어떻든, 그가 원한다면 그대로 하길 바랐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긴 했지만, 살아보겠다는 의지였다. 그가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을 어디에서든 찾길 바랐다. 안정제를 끊어야 한다는 말은 걱정스러웠지만, 지금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삶이 무너지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앞으로의 삶에 있어 다른 사람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았으면 했다.


만약 그가 내 언니가 아니었다면, 내 가족의 일이 아니었다면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상실의 아픔을 대신하려는 마음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라고 훈수라도 뒀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을 잃은 사람에게는 그 어떤 조언도 필요하지 않다는 걸 나는 알게 되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대체 아이(replacement child)’ 현상이라 부른다고 한다. 단순히 잃은 아이를 대신할 존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품음으로써 다시 살아가려는 인간의 본능이 작동하는 것이다. 잃은 아이를 여전히 마음에 품은 채 또 다른 생명을 맞이하며 삶을 이어가려는 시도다.


절망의 끝에서 그가 다시 한번 ‘생명’을 떠올렸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를 견딜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 있기에,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이기에 가능한 위대한 회복의 의지라고 이해했다. 마음 깊이 나는, 그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길 빌었다. 동시에, 미래에 대한 또 다른 불안이 나를 짓눌렀다. 어차피 살아가는 일이, 우리 가족은 늘 불안할 것이다.


그렇게 어두운 봄을 보내고 한여름이었다. 내 아이와 둘째 조카를 데리고 간 물놀이장에서, 그는 오늘도 복동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보며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오긴 했지만, 즐거움 하나 없는 한여름의 우리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그와 단둘이 차에 남겨졌을 때, 그는 운전대를 잡은 채 앞만 보다가 결국 오열하며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내가 먼저 말했다.


“나한테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아도 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다만 건강을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결과가 어떻든 삶의 여정 속에 머물러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우리는 괴롭지만, 또 다른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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