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생각>
나는 매일 아침 출근 전 오 분씩 책을 읽는다. 일종의 준비동작이랄까.
나는 꽤 자주 전날 밤잠을 설치고 찌뿌둥하게 일어나, 단 오 분의 여유도 없이 타이트하게 출근 준비를 마치기 일쑤였다. 그게 당연했다. 나는 원체 야행성인 사람이고, 그래서 뭘 하려고 해도 아침보다는 모두가 잠든 밤에 하는 것이 더 편했으니까. 물론 책도 밤에 더 잘 읽히고 글도 밤에 더 잘 써졌다. 그런데 아침 오분 독서에 푹 빠진 것이다.
첫 시작은 단순했는데, 그 당시 읽고 있던 책이 너무 재밌어서였다. 아침에 유독 일찍 눈이 떠졌고 그래서 출근까지 시간이 오분 정도 남았고, 그럼 어제 읽다 만 책이나 읽자 해서 책상에 앉았다. 문단도 아닌 몇 문장을 읽은 뒤에 짧은 시간을 아쉬워하며 출근을 했더랬다. 그리곤 아침 청소를 하는 내내 그 문장들을 떠올렸다. 무인도에 표류 중 다 찢겨나가 몇 문장 남지 않은 책 페이지를 발견해, 그것만 계속 읽는 그런 기분이랄까. 그 문장들을 곱씹다 보면 청소가 더 빨리 끝나는 것 같기도 했다. 첫 느낌이 좋았던 덕분에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몇 문장씩 읽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루틴이 되었다.
원래는 소설을 읽었는데 아무래도 몇 문장만으로는 너무 감칠맛이 나서, 아침에는 주로 시를 읽는다. 시의 문장은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시 한 편을 다 읽고 출근할 수도 있다. 다음 문장을 기대하고 추측하기보다는 그 문장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오늘 아침에도 시를 읽었다. 이규리 시인의 ‘명랑’이라는 시였고, 내가 읽은 부분은 다음과 같다.
“취한 사람들은 한쪽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 저녁에 취기들이 모여 모처럼 명랑했다
조금 후에 제가 저를 부인해도
그 명랑을 사고 싶어
시대는 자유한가 우울은 가고 있는가
일행이 조금씩 더 기울어지고 있을 때
자신을 남쪽에 산다고 소개한 사람이 일어나
내 슬픔을 사겠다고 했다”
시를 읽고 나도 어쩐지 술에 취한 듯 몽롱한 기분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와 함께 술을 마시고 속 이야기를 털어놓던 옛 모임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때 했던 말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의 나를 보면 알아볼 수 있을까? 나는 그때로부터 무엇이 변했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청소가 끝이 났다. 깨끗해진 매장만큼 내 속도 정리가 된 것 같았다. 내 안에 어지러이 널려있던 감정들, 저기 구석에 먼지처럼 방치되어 있던 기억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닦아내는 과정. 단 오분이지만 효과가 막강하다. 내일 아침엔 또 어떤 시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출근이 기대되는 것이 아니라 시가 기대된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