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로망 중 하나는 새벽 꽃시장이었다. 사실 꽃과 새벽 모두와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멋져 보였던 것 같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 '꽃'을 사러가는 날이 올까?라는 생각이 컸다.
주말 아침, 알람도 없이 5시 30분에 일어났다. 평소 출근할 때 보다도 훨씬 이른 시간이어서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뭘 할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다시 잠들기엔 일찍 일어난 이 기분을 느끼고 싶었고 마침 고속터미널에 갈 일이 있어서 "그럼 꽃시장에 가면 되겠다"라고 낮게 혼잣말을 했다. 생화 시장은 밤부터 오전에만 운영하다 보니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나마 저번에 갔을 땐 조화만 판매하던 시간이었고. 그렇게, 예전의 기억을 되짚으며 손에 집히는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도착한 꽃시장.
신문지를 두른 갖가지 꽃들이 사람들의 어깨에 기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오, 이게 꽃시장의 분위기인가'하며 실감이 났다. 두리번거리며 이동하던 중 눈에 띄던 작고 귀여운 꽃. 안 사면 눈에 아른거릴 거 같아서 얼른 구입했다. 단순히 예뻐서 샀는데, 생각해보니 이름도 모르는 것 아닌가. 계산을 마치고 사장님께 여쭤보니 '마트리 카리아'라는 꽃이었다. 이 꽃이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계란꽃'이란 건 검색 한 번으로 알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이게 뭐야?" 하면 "장. 난. 감." 이런 식으로 사물의 이름을 천천히 말해주던 때가 떠올랐다. 사장님이 마트리 카리아라고 답해주시면 그걸 그대로 따라 말하며 내 사전에 새로운 단어 하나 추가하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마크리 카리아'로 들었다) 뜻밖에도 이 꽃은 꽃말마저 의미 있었다.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 귀엽고 여리여리한 외형과는 멀어 보였지만 그래서 더 와닿았다. 마치 외유내강의 표본이랄까. 그래서 내 하반기 모토로 삼아야지, 생각했다.
새벽 꽃시장은 생각보다 좋았다. 생화가 주는 싱그러움과 새벽에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활기참. 이런 기분 무척이나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