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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Aug 29. 2023

너와 나의 안전거리.

<곰씨의 의자> 나는 곰씨, 너는 토끼 가족?

나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어린 시절 내 방은 그리 크지 않았다. 책상과 책꽂이, 침대, 장롱을 넣으면 방이 거의 꽉 찼다. 

그러나 그 방은 나에게 안식처로 충분했다. 

나는 부모님이 선물해 주신 컴포넌트로 클래식 음악을 틀고 책을 읽었다. 마음이 힘들거나 우울한 날에는 방문에 기대어 커다란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혼자 문을 닫고 방에서 음악을 들어도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적이 없다. (나의 공간을 인정해 주신 두 분께 항상 감사하다.)


나의 성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였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지만 혼자 집에 있는 것도 좋았다. 

여행을 가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몇 년 전 평창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모두가 잠든 아침, 나는 혼자 리조트 산책에 나섰다. 

하늘을 보고 공기를 마시고 나무와 꽃을 보는 그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나를 마주한, 그 고요함을 잊을 수 없다. 그 이후 가족과의 시간이 훨씬 더 즐거웠음은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나의 성향을 바꾸고 싶을 때도 있다.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끼는 건 아닐까.' '쉽게 다가오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살아보니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더라. 

그리고 내가 나를 인정할 때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음을, 이제는 조금 알겠다. 





내가 좋아하는 노인경 작가의 그림책에서 나와 비슷한 주인공을 만났다. 

그림책 <곰씨의 의자>, 주인공은 곰씨이다. 

꽃을 사랑하는 곰씨는 자신의 기다란 벤치에서 시집을 읽는다. 

벤치에서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다. 곰씨가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순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배낭을 멘 낯선 토끼가 곰씨의 곁을 지나가고, 곰씨는 토끼에서 앉아서 쉬기를 권한다. 

다음에는 슬퍼 보이는 토끼가 지나가고, 곰씨는 이번에도 쉬었다 가기를 권한다. 

그렇게 곰씨의 의자에서 만난 모험과 토끼와 무용가 토끼는 가족이 된다. 

그리고 토끼 부부의 아이들이 태어나는데... 태어나고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이제 곰씨의 의자는 토끼의 가족들로 가득하다. 

토끼들은 매일 곰씨를 찾아오지만 곰씨는 전혀 즐겁지가 않다. 

자신의 벤치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쓰던 곰씨는 결국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토끼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저는 여러분이 좋아요. 하지만 그동안 저는 마음이 힘들었어요. 

물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소중해요.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요. 

저는 조용히 책을 읽고, 명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앞으로 제 코가 빨개지면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니 다른 시간에 찾아와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제 꽃을 소중히 다뤄주세요."


그 이후 곰씨와 토끼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

토끼 가족은 곰씨를 위해 거리를 지켜준다. 곰씨의 마음을 헤아린 것이다. 

분명 곰씨는 토끼 가족을 사랑했고 그들과의 만남을 즐거워했다. 

하지만 곰씨는 때때로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치 나처럼 말이다. 




<곰씨의 의자> 

저자 노인경

출판 문학동네

발행 201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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