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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RNEST RABBIT Jul 13. 2022

열심을 다한다는 것

여덟 번째. 열심을 다한다는 것 


열심을 다한다는 것.




우리의 삶에서 때로는 내가 생각한 노력의 크기가 남들보다 작지 않았던가? 하고 생각하는 현타가 온다. 열심을 정의하는 단어는 사람이 처해진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인데.


그렇다고 내가 한 열심히 이 상대적으로 작거나 커질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시간의 축적이 열심을 정의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육체적 움직임의 힘듦이 노력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예전에 단체 스포츠 프로팀에서 잠깐 선수생활을 한 적이 있다. 늦은 나이 신고선수로 들어간 소중한 기회라 정말 열심을 다했다.





정말이다.



그 누구도 열심을 가지고 나의 태도를 논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는 실력으로 평가받는 아주 냉정하고, 계산적인 곳이다.


같은 실력이면 연봉이 높은 사람이 그리고 나이가 조금 더 어린 사람에게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


나이 많은 사람이 더 좋은 기회를 얻으려면 노오력 만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그에 따른 월등한 실력과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 팀에서 들었던 가장 많은 이야기는 "열심히 노력하는 놈이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놈이 노력한 거야.”라는 말소리였다.



가슴도 아프고, 몸도 아프고, 정신까지 아프지만 난 그 말이 정답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열심을 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열심만으로 자신의 능력치를 인정받으려 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근무태만인 것이다.


열심과 노력은 학교에서 하는 것이고, 사회의 어느 한 집담에 속해.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서 받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능력과 실력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인간만이 노력한 것이다.


‘너무 각박하지 않냐고?’

‘어찌, 인간애는 아예 없는 것처럼 말하냐고?’


어리다는 이유로 아직 세상 물정 모르니 안전하게 쳐놓은 울타리를 뛰쳐나와봐라. 여기저기 이리(狼) 때들이 우들 거리며, 뽀송뽀송한 울타리 밖을 뛰쳐나온 양을 떨 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이리가 어디 있겠는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파보니까, 청춘이구나.

아픔은 있지만, 아직 청춘이지.

아, 청춘이었구나.








세월의 장벽.




나이를 먹어가는 것으로 업무에서 배제되는 것도 서러운데. 아프지만, 청춘도 아닌 것이 이리도 서럽다.


흔히 말하는 낀세대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이가 더 서럽다. 위로는 부장님과 팀장님을 모시며.


아래로는 MZ세대라는 타이틀로 꽁꽁 무장한 신입들의 권리와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위, 아래로 모든 업무는 30~40대가 해내야 하는 회사의 체제 속에 치솟는 물가와 앵갤 지수.


그리고, 소비자 물가에 반영되지 않고 5년째 고정인 월급은 허리띠를 졸라매다 못해, 허리띠까지 뺏기는 삶의 연속이다.




아프다. 많이. 청춘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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