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ARNEST RABBIT Sep 05. 2022

타인은 날 알지 못한다.

첫 번째 이야기. 타인은 날 알지 못한다.  


타인은 날 알지 못한다. 




"너는 누구인가?"
"나도 나를 모른다..."

"그렇다. 타인은 날 알지 못한다." 




자전적 소설 自傳的 小說   :  문학 자기의 생애나 생활 체험을 소재로 하여 쓴 소설. 

소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작가의 의도대로 꾸며서 기술하며, 삼인칭을 

사용하여도 무방하다는 점에서 자서전과 다르다.자전적 심리치유 소설.  





<자전적 심리치유 소설.>

이 세상은 내가 살아가기에 너무 혼잡하고 복잡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나 실험해 봐야겠다.

인생의 굴레에서 낙하.




예언자. 




미래를 예측하고 꿈을 해석해 나가는 존재.

그는 현실만을 살아가서는 안된다. 

 

현실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가득한 삶. 

믿음에 차이가 없는 피폐하고, 거짓이 난무하는 인생.  


고막을 심하게 울려대는 나팔소리.

그 누구도 듣지 못하고 나에게만 들리는 듯한 기이한 현상.

 

꿈일 수도, 혹은 현실일 수도, 혹은 미래의 일일 수도 있는 듯한 소리의 출처는 알 수 없다.


 


"내가 처음에도 있었고, 끝에도 있을 것이며,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함께 있다."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 




확신을 가지고 '이것은 분명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몇이나 될까?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현존하는 모든 곳에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이가 세상에 있다니. 




"네가 너에게 보여준 모든 것을 낱낱이 기록하여라."
"그리고 내가 지시한 곳에 모든 것을 알리고 보내라."



명령조에서 시작된 하늘의 울림이 그것도 자신에게만 들리는 소리가 이토록 선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믿음을 가지고 모든 내용을 낱낱이 모든 사람에게 알릴 수 있을까? 


"불신지옥." 

"믿음천국."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을 확성기에 대고 말하는 미친 인간들. 

소음도 그런 소음이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넘치는 분이 자신이자, 곧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람을 앗아간 인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불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게 확실하다. 


그 누구도.

부모도 자식도 사랑할 수 없는 세상이니까.

 


-



왜, 이 세상에. 

그리고 고통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과연, 자의라는 것은 그리고 자아라는 것은 어떻게 형성되어 만들어져. 

이토록 잔인하고, 숨을 쉬는 것이 죄로 느껴지는 복잡한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덜렁 남겨진 것일까?


포유류의 개체군에 포함되어 어미라는 양수에서 헤엄치며 세상을 알지 못하게. 

배꼽 사이에 연결된 튜브로 잉여 자양분을 충분히 탐하며 살아갔던 시절이 좋았다. 


물론, 기억하지도 기억나지도 않는 시간이겠지. 


세상의 교육을 통해 써 내려간 추측이니까. 

성교육을 포르노로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쾌락적 욕망이 인간 인간의 기본 욕구가 되어가는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 

너와 나는 다를 뿐이지 모든 것은 옳다고 말하는 사회. 


뱃속에 나와 부모의 편의와 자신들의 시간 확보라는 명목 하에. 유모차와 의자에 앉혀 놓고, 쉴 새 없이 변하는 휘황찬란한 색감과 요란한 소리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나오는 손바닥만 한 물체로 아이들의 뇌를 자극한다. 


다행이다. 

내가 자라났던 시대에는 그런 장치가 없어서. 

만약, 내 삶의 가소성 시기를 그 물체와 함께 보냈다면. 

필히 난 사이코페스보다 더한 인간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현실과 공상을 전혀 구분하지 못한 채 난 이 인류에서 종교적 율법과 사회의 법으로 정의한 법적 테두리에 속하지 못한 인간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현실을 부정하며,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초조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인간이니까. 


-


삶은 그토록 원하지 않는 순간에 원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는 신세계다. 

이 신세계에서 우리는 늘 무릎을 꿇으며,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자에게 내 것을 빼앗긴다. 


빼앗긴다.

단어에서 조차 고통이 느껴진다. 





빼앗기다 (출처 : 네이버 사전)


  


  1.    동사 가진 것을 억지로 남에게 잃게 되다. ‘빼앗다’의 피동사. 

  2.    동사 일이나 시간, 자격 따위를 억지로 잃게 되다. ‘빼앗다’의 피동사. 

  3.    동사 합법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격이나 권리를 잃게 되다. ‘빼앗다’의 피동사.  



가진 것, 자격, 권리 등을 타인에 혹은 어쩌지 못한 환경에 의해 잃게 되는 것. 

무엇인가를 잃는다는 것은 참으로 아프다. 


잡기를 하는 시기. 

아이의 손에 검지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그것을 움켜쥐고 웬만해선 놓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태어나와 이 세상을 살아가며, 계속해서 움켜쥐려 한다. 


돈, 지위, 권력, 사랑, 믿음 까지도. 

하지만 인간이 죽을 때는 그 손으로 산 사람 손 한 번 움켜쥐어 달라고 안달해도 잡아주지 않는다. 


그게 생(生)의 순리다. 




움켜쥐며, 살려했다. 
놓아주며, 떠난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행복한 일과 힘든 일을 겪게 된다.

고난의 크기는 모두 다를 지라도 자신이 느끼는 고난의 강도는 같다.


나에게 1이 남에게는 10이 될 수도 남의 1이 반대로 나에게 10이 될 수 있다. 


내가 힘든 것이 다른 이에게는 전혀 힘들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이의 힘듦이 나에게 전혀 힘들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다른 이의 힘듦을 내 가치관으로 가늠하는 것이다.


행복의 총량도, 지랄의 총량도. 

모든 이에게 적당한 때에 적당하게 일어난다.


인간이 해야 하는 것은 마주하는 것이다. 


패배라 생각하면, 그것을 인정하면 된다. 

그것이 넘을 수 있는 하나의 장애물이라 생각하면 넘어서면 된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자신 만의 잣대로 그것을 넘을 수 있는 것이다.

패배로 인정해야 한다.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타인은 당사자의 삶을 재단하려, 혹은 재단해서도 안된다.

그것이 자신의 자식이라도 마음대로 오려가며 자신이 보기에 좋았다고 흡족해서는 안된다. 


단지, 그 모든 선택에 있어 결과로만 그것을 받아들이며 해석해야 한다.

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한 발을 또 내딛을 수밖에.


태풍은 지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 태풍 아래 있는 사람은 그것을 버텨낸 것이다. 


고속도로의 나무들을 본다.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그들은 생명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참으로 많은 풍파를 겪으며, 그들은 그들이 알지 못했던 힘이 자생했을 것이다. 

인간의 삶도 그래야 한다. 움트는 것에 보살핌과 비료로 삶을 쉬이 크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을 버텨내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한 번은 병원 진료를 위해 한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이 고등학생인데. 

설문지 숙제가 있다며, 아들은 멀쩡하게 앉아 있고 자신이 설문지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나는 물었다. 


"이것을 제가 꼭 해야 하는 겁니까?"

"네에 그럼요 해주시면 좋죠!"


"아쉽네요, 저기 앉아 있는 어머님의 아들이 설문지를 들이밀었으면 했을 텐데."

"고등학생 그것도 예체능 예술인인데도 자신의 숙제를 어미가 해주십니까."

"어머님의 아들을 그렇게 키우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우리 집 아들이니 제가 알아서 키울게요!"

"별꼴이야 정말, 안 해주면 안 해줬지 무슨 훈수를 둬."

"지는 머가 잘났다고!"


잘난것이 없다. 

정답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난 이제 것 커오며, 내 희귀병과, 내 숙제, 내 우울함과 가난함을

남이 대신 해결해 주십사 하는 마음을 가진 적은 없다.


집에 밥이 없으면, 굶는 선택을 했고. 

집에 밥이 많은 면, 나누는 선택을 했다. 


근데, 다 큰 성인의 숙제를 그것도 문제의 해결이 아닌. 

단순한 설문지 부탁 하나도 본인의 힘으로 하지 못하는 아들이 과연 세상에 순응할 수 있을까? 


나는 모르겠다. 

그것이 가능할지.  





서로를 위하지만 가끔은 거리를 둡니다. 망상(妄想)의 망루(望樓)에 오늘도 작은 촛불을 켜둡니다. 



작가의 이전글 열심을 다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