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음의 지옥을 당연하게 여긴다.
인간에게 현실은 전부이다.
그러므로 현실의 성질은 당연한 것이며, 그로 인한 흐름, 흐름 위에 떠밀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진실이 된다.
현실은 생존의 세계이다.
소통하고, 함께하며, 행복이란 것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야생은 우리 곁에 있다.
자연이 지속되는 것은
모든 생명이 '나'로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신으로서 살아가기만 해도 거대한 순환을 이루며 세계가 유지된다.
사회와 세계는, 야생 위에 무수한 개인이 살아가는 세계이기에
지구상에서 문명이라는 축복을 가진 인간에게 불완전하고 누군가의 욕망에 의해서 휘둘러지는 사회는 문명에서 야생의 범주로 인간의 삶을 추락시킨다.
사회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니 사람들의 행복, 미래에 대한 기대가 감소한다.
사회가 보호하지 않는 영역에서 인간은 폭력과 악의에 노출되며, 지옥을 경험한다.
혹은,
현실의 자신이 전부이기 때문에 자신의 약점이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가면을 쓰고 다닌다.
현실은 자신을 지켜야 하며, 숨겨야 하는 공간이다.
평화와 사랑, 행복으로 가득 찬 인생도 있지만,
세상이 완전하지 않은 것이 누군가를 더욱 빛내는 순간에 도달하게 되는 때도 있지만,
변화는 계절이 다가오듯 당연한 흐름이며,
생물이란 존재는 계절이 다가오면 준비를 하기 마련이다.
인류 역사의 첫 번째 분기점이 오고 있다.
미래에 무언가가 다가오든,
사람과 사회, 세계를 어떤 변화와 흐름을 일으키건 간에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다.
현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지만 마음에 가면을 씌우고
인터넷은 완전한 가면을 쓰고 있으니,
진실을 기만하며 상대의 얼굴을 헤치기 위한 손톱만이 수면 위로 오른다.
그로 인해 나도 없고, 상대방도 없으며, 쓰는 것이 아니라 쓰이고 있다.
개인의 개성과 마음은 존재할 수 없는 세계아래 통합되고 집단화되어 휩쓸린다.
시스템이란 세계이지만 동시에 도구이다.
흐름과 실체를 보지 못하고 휩쓸리면, 구조를 지배하는 이들의 손짓 몇 번에 정해진 방향만 바라본다.
우리가 무대 위에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 우리를 되돌아보면 된다.
그것이 메타버스이다.
가면은 결국 도구이며,
쓰기 나름.
적절한 가면이 있으며, 나와 네가 있으며, 시간과 공간이 있으며, 새로운 세계가 있으니
추억을 쌓고 진실을 쌓아, 우리가 보이지 않은 실을 따라 마음이 움직이는 꼭두각시에서 벗어나며
자신의 마음을 넓은 시야로 돌아보고, 현실의 보이지 않던 권리가 빼앗기지 않도록 성장한다.
살아온 환경과, 살아온 이야기, 살아온 세계를 초월하여 새로운 세상에서의 자신을 체험하니
비로소 자신의 인생과 마음에 자신이 새겨지기 시작하더라.
현실이라는 이름이,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것과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모든 것들을 지어내고 있음을 알았다.
내면의 감정, 이성, 생각을 되돌아보며
사람으로서 깨닫고 성장한다.
마음에 거울이 필요하듯, 세계도 거울이 필요하며
현실이 권력자들의 무대라면, 우리들의 광장과 우리들의 무대가 필요하다.
그렇게 우리의 세계가 커질 때, 현실에서도 우리는 거대해질 수 있다.
누군가의 위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위에서 거대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