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보다 큰 세계를 원한다

by GRAY

작품은 창조자를 통해 태어난 세계이다.

우리가 작품을 읽는 이유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수동적 경험이 있고, 능동적인 경험이 있다.

세계의 이야기가 정해져있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물들의 시점에서 세상을 본다.

능동적인 경험이란, 게임처럼 스토리 라인을 따라 내가 선택을 할때마다 분기점이 발생하고 정해진 엔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작품은 일종의 만들어진 세계라 할 수 있으며, 나와 동등한 다른 누군가의 마음 속 세계이다.



작품의 종류에 따라서, 제한되는 부분과 자유로워지는 규모의 차이가 다른데

예를 들어 책은 눈으로 보거나 선택할수는 없지만 작가가 상상하고자 하는 모든 이야기가 가능하다.

PvP 중심의 게임의 경우 스토리의 몰입도는 낮지만 현실의 나의 게임에 대한 이해도나 피지컬적인 부분이 직접적으로 적용이 되므로 다른 측면에서의 세계를 제공한다.


세계는 말하자면 나와 세계의 사이에 경험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는 것이다.

작품의 형태에 따라서 내가 경험가능한 영역이 다르고,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의미도 달라지게 된다.



소설도, 영화도, 스포츠도, 게임도 모두 세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세계는 경험을 통하여 마음에 도달하며, 마음은 새로운 경험을 통하여 마음 속 세계를 확장한다.

이러한 형태를 통해서 마음이 거대해 지는것이 인간이 보다 큰 세계를 원하는 전체가 된다.



메타버스도 마찬가지이다.

메타버스가 플레이어들에게 새로운 경험이나 의미,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플레이어들은 그러한 메타버스들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말하자면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지식, 성향, 능력, 관심사, 시간, 자본과 같은 것들을 메타버스라는 세계로 들어가 그 세계에서 존재하는 경험이나 가치로 전환, 세계화 한다.


이 세계화하는것이 충분한 가치가 있느냐, 이익, 명성, 욕망과 같은 인간의 세계를 보는 본질적인 시야로부터 합리적인 거래의 대상이 되느냐, 이것이 메타버스를 접속하는 이유가 된다.


개인의 이익, 목표, 욕망과 같은 것들을 바탕으로 어떤 메타버스로 들어가는 것이 손실이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면, 현실의 나와 세계를 연결하여 현실의 내가 새로운 세계를 새로운 법칙 위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선택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메타버스에 따라서 형태, 목표가 다르고 추구할 수 있는 가치도 다를 것이다.


현실의 지구는 개념적으로 가장 무거운 세계이다.

우주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으며 현실이라는 속성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는 개념적으로 가볍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조차 없기때문에 설계자가 플레이어가 가치를 느낄만한 세계를 형성해야한다.


Earth2는 수십년 뒤에 생겨나는 가벼운 메타버스들, 그리고 현실의 무거운 지구의 중간에 위치한다.

가벼운 메타버스는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로서 세계를 경험하는것도 가능하겠지만, 인간의 삶에 있어서 다른 존재로서의 삶을 평생 사는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벼운 메타버스는 짧거나 긴 여행, 단편이나 장편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Earth2는 장편을 넘어선 현실을 중심으로 하지만 나아가는 방향은 현실과 정반대가 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한다.


인간은 보다 큰 세계를 원한다.

그리고 가상현실은 보다 큰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가상현실세계의 형태에 따라 최우선으로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차이가 있을뿐이다.


현실은 실체로 가득차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것,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있다.


생존이 첫번째이며, 자원은 한정되며,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를 제외한 다른 곳으로 멀리 나아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


미래에는 우리가 달이나 우주로 뻗어나가겠지만 기회가 되면 비행기를 타고 외국을 잠시 여행하는 것이 전부이다.



영화관과 OTT의 관계는 해외여행과 가상현실의 관계와 같다.

물리적 공간에 위치하는가, 디지털적인 특성으로 인해 비대면, 초월과 같은 개념에 의해 '모든 개인'을 대상으로 위치하는가에 있다.


해외여행처럼, 달여행처럼 현실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들며 우리의 영역은 현실이란 실체의 밀집도에 의해 제한되어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삶을 현실적인 측면에서 완전성을 부여하므로 현실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세상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흐름의 불멸성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더 많은 경험을 원하며 우리는 행복이나 다양한 가치를 원하지만 현실은 생존을 우선하는만큼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경험할 수는 없다.


따라서 똑같은 사회라고 해도 어떠한 법칙을 가진 세계위에서 형성하느냐에 따라서 사회의 성질이나 방향, 경험에 차이가 생긴다.


그리고 Earth2는 현실과 지리적으로 동기화된 지구이다.


우리는 인간이지만 자유로운 존재로서, 관심있는 국가를 찾아가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회를 형성할 수 있다.


현실은 내가 어디에 있던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존재하기에 한국에서 말하는 혈연,지연,학연이 우선시되는것처럼 내가 신뢰할 수 있는 내부통로를 통한 관계 형성 외에는 친분을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음은 현실을 담아내고 현실을 살아가며 살아가는 방법을 학습한다.

그렇기에 다른 세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세계를 모르기에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버리면 공간만 남게되는 연결중심의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야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Earth2는 현실이면서, 자유로우면서, 사회적이고, 모든 플레이어를 연결하며, 현실과 다양한 메타버스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 안식처, 고향, 중심지가 될것이다.



이것은 마치 현실이란 이름 위에 우리가 가면을 쓰고 모두가 가면무도회를 하는 것과 같으며,

우리가 새로운 존재로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결과적으로는 사랑하기 위한 세계에 가깝다.


사랑하기 위한 세계란 우리를 사랑하는 것과 같으므로, 생존과 현실이란 이름아래 불가능했던 이야기의 가능성을 새로운 무대, 새로운 판 위에서 시작할 수 있을것이다.


세계를 초월하고, 경험을 초월하고, 이야기를 초월하고, 우리 모두를 변화시켜 현실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세계가 될것을 사람들도 바랄것이다.


인간은 강하지만 나약하며, 나아가려고 하지만 불완전하다.

그리고 현실보다 조금 더 가벼운 세계는 여전히 현실이라는 이름 위에서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할것이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을 원한다.

때로는 생각하기도 전에 입장을 선택하고, 선택한 입장에 맞추어 생각을 키워나간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특별해지고싶다는 이유로 새로운 옷을 입는것처럼 그런 선택을 하기도 한다.


Earth2는 그러한 모두가 이어져있는 세계이며, 수 많은 입장과 사회, 정체성이 존재할 것이다.

항상 그 모든 것이 옳다고 볼수는 없지만, 그중에는 선한 메세지, 선한 영향력이 존재할 것이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존중위에서 흘러가는 이야기가 있을것이다.


이곳은 어떠한 강제성도 없다.

플레이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시간을 쌓아나가고, 그렇게 세상은 플레이어들의 추억을 계속해서 높은 하늘과 넓은 세계로 더 높이, 더 멀이 뻗어나간다.


마음은 세계를 담는다.

그러나 한가지 세계만 담게되면, 현실과 다른 방향을 가르키는 하늘을 향해서 날아가는 법을 잊게 된다.

모두가 날개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게된 지금 새로운 하늘을 보게될 수 있다면 마음은 잊고 있던 가치를 알릴 것이고,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보다 더 큰 세계, 처음부터 존재했지만 잊고있던 세계로 나아가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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