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 어느 월요일.
서른세 살의 4월 어느 월요일 아침, 쫓겨나듯 회사를 떠나게 됐다. 출근하자마자 대표실에서 짧게 얘기를 나눈 후, 개인 짐을 챙겼다. 나를 안타깝게 여기는 동료들에게 안 그래도 퇴사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잘됐다며, 먼저 탈출한다며 괜찮은 척했던 내가 이제 조금은 안쓰럽다.
실제로 괜찮은 것과는 별개로, 말로 괜찮다고 하면 정말로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곤 했었다.
지인이 당일에 약속을 깼을 때. 엄마가 언니한테만 꽁치를 구워주고 나는 다른 반찬을 잘 먹으니 꽁치는 먹지 못하게 했을 때. 삼각김밥을 한입 베어 먹자마자 남자친구가 그전에 있던 일로 호되게 잔소리를 시작했을 때. 회사에서 내 자리가 갑자기 바뀌었을 때. 고3 때 이사 간 집에 내 방이 없어진 것을 이사한 날 알았을 때. 회사에서 동료들이 내 커피만 빼고 사 왔을 때. 친구가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며 여행을 갑자기 취소했을 때.
그렇게 괜찮다고 말하며 산 날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괜찮지 않았지만 나는 정말로 괜찮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듯,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서른세 살의 그 아침을 떠올리면 몇 년이 흘렀음에도 내 기분과 반대로 말하고 있는 나를 알게 된다. 이제 그 아침을 괜찮지 않았다고 결론내기로 한다. 아무튼 그렇게 월요일 아침에 갑작스럽게 실업자가 됐다. 스물넷에 첫 직장을 다닌 이후로 쉬지 않고 돈을 벌었으니, 잠깐 동안은 돈을 안 벌고 살아보고 싶었다.
시간이 많아졌으나 회사 나가서 주어진 일 밖에 할 줄 몰랐던 나는 나를 위해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고작해야 집 주변을 탐문하듯 걷거나, 좀 더 멀리 수색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실업자가 될 운명을 예감하지 못하고, 몇 개월 전에 전재산을 털어서 이사를 왔기 때문에 아직은 집 주변과 사는 곳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다.
집 주변은 대부분 공터였고, 건물들은 대체로 띄엄띄엄 지어져 있었으며, 편의점도 없을 만큼 사람도 드물게 다니던 곳이었다. 이런 곳에 자전거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바다를 볼 수 있는 공원이 있다는 사실은 별로 흥분할 일이 없는 날들에 흥분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의 재미가 되며 그 공원에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며 자주 가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나는 그 시기를 앞으로를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뤄놨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고 있음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기분을 멈추게 하는 시간은 이 공원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 시간이었다. 바다와 철새들. 그냥 그게 위로가 됐다.
바다는 내가 오기 전부터 이곳에 늘 있던 것뿐인데, 나는 내가 사라졌다고 느끼고 나서야 바다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됐다. 가만히 있어도 위안이 되는 이곳에서 평생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 그때쯤부터였다.
고시원을 거쳐 쭉 월셋집에 살아온 나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집이 아니더라도 집 자체를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저 지금처럼 자전거를 타고 올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이 바다가 가까운 곳에서, 바다를 보며 위안받으며 살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였다.
실업자였던 그 시기 내 재정 상황은 꽤 오랫동안 월셋집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렇지만 이 공원에서 바다를 보는 날이 늘어갈수록 떠나고 싶지 않다는 욕구는 강렬해지기 시작하며 나를 다시 돈 벌 수 있게 만들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반드시 이곳에 집을 마련해야겠다는 욕구는 지독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고, 다시 1년이 지났다. 지금 나는 그 바다를 거실에서 보고 있다. 바다는 여전히 거기 있고, 나도 여전히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