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여행지의 풍경이 된다

by 김지구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도시의 건물보다 먼저 기억나는 건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아침 시장에서 귤을 정리하던 손,

카페에서 우유를 데우던 바리스타의 집중한 눈빛,

노을 아래 강가를 산책하던 노부부의 나란한 발걸음.


그들은 관광지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그 도시를 대표하는 풍경이었다.


장소보다 사람이 먼저 남는 이유


지도에는 거리가 찍히지만

기억에는 사람이 남는다.


그날의 햇살보다

햇살을 맞으며 책을 읽던 소년의 표정이 더 선명하고,


유명한 광장보다

그 광장 벤치에 앉아 빵을 나눠 먹던 연인의 웃음이 오래 남는다.


도시는 건축물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풍경이 된다


우리가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은

내 삶에서 단 한번만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 짧음 때문에

오히려 더 선명하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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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뿐인 장면,

다시는 이어지지 않을 대화,

짧은 눈맞춤 속 어색한 미소.


그 순간들이

도시의 공기를 설명하지 않아도

그곳의 결을 보여준다.


우리는 서로의 풍경을 만든다


여행지에서는

나 또한 누군가의 풍경이 된다.


카메라 목에 걸고 천천히 걷는 낯선 외국인,

모르는 언어를 조용히 따라 적는 손,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는 눈빛.


누군가에게 나는

이 도시를 스쳐간 한 장면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 생각이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든다.


풍경이 말을 건네는 순간


가끔은 인사 한 마디 없이

서로를 지나치기만 해도 충분하다.


말 없는 호흡 속에

이 도시가 어떻게 숨 쉬고 있는지 느껴진다.


사람이 풍경이 되는 여행은

배우는 여행이다.

누구도 교과서처럼 설명하지 않지만

매 장면이 살아 있는 안내서가 된다.


마지막 문장


도시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대개 건물이 아니라

사람의 온도를 만났을 때이다.


여행지에서 내가 잊지 못하는 풍경은

언제나 누군가의 하루였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장면들이

언젠가 나에게 말해준다.


세상은 넓고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누가 어떻게 살아가느냐로 완성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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