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난다는 결정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다가왔다.
회의실 문을 나오는 소리도 없었고,
누군가가 박수로 배웅해주지도 않았다.
그저 어느 날 아침,
노트북을 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찾아왔고
그 침묵 속에서 비로소 나는
내 마음의 볼륨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야,
나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천천히 배웠다.
1. 바쁜 것이 곧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회사 안에서 나의 하루는
‘해야 할 일’로 빼곡했다.
메신저 알림이 켜져 있어야 유능한 사람 같았고,
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어야
지금도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
고요도 삶이다.
심지어 더 깊은 삶이다.
침묵 속에서야
내 생각이 어디로 향하는 사람인지
처음 제대로 보였다.
2. 성취보다 회복이 더 큰 용기일 때가 있다
쉬고 있는데 죄책감이 들었다.
정지된 듯한 순간들이 두려웠다.
그런데 어느 날,
일하며 소진된 몸과 감정이
조금씩 돌아오는 걸 느꼈다.
그때 깨달았다.
회복도 일이다.
회복을 선택하는 건 약함이 아니라 기술이다.
3. 나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회사 안에선
직무가 곧 정체성이었다.
“나는 무슨 팀, 무슨 역할입니다.”
하지만 회사 밖에서는
내가 먼저였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여행자가 되기도 하고,
그냥 산책하는 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그 시간들이 말해줬다.
직업은 나를 설명하는 방식이지,
나의 전부가 아니었다.
4. 관계는 넓은데 깊지 않았음을
회사를 나왔다고 연락이 줄어들었다면
그 관계는 역할 위에 선 것이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정말로 안부를 물어왔다.
내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때서야 알았다.
나를 직함이 아닌 사람으로 바라본 이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깊어지는 관계가 있다는 것.
5.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부드러워졌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지금의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의 불안은
‘비교’에서 오고,
회사를 떠난 뒤의 불안은
‘탐색’에서 왔다.
전자가 나를 조였다면
후자는 나를 움직였다.
불안이 사라진 게 아니라
불안과 함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문장
회사를 떠난 건
세상을 등진 게 아니라
내 세계를 다시 짓는 선택이었다.
일 없이도 하루가 의미 있고,
성과 없이도 존재가 빛나며,
속도가 느려져도 방향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나는 회사에서 배운 걸 잃지 않았고,
회사 밖에서 배운 걸 채웠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떠남은 끝이 아니라
다른 길이 시작되는 문이라는 걸.
문을 나선 뒤에야,
비로소 내가 가고 싶은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