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있을 때 나는
늘 PPT 속 문장으로 세상을 정리했다.
배경 → 목표 → 시장 → 인사이트 → 실행 → 기대효과.
슬라이드 한 장마다 논리가 있었고,
근거 없는 감정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나는 똑같이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 대상이 조직이 아니라 나가 되었을 뿐이다.
사내 보고는 설득이었다
사내 보고의 목적은 명확했다.
누군가를 움직이기 위해,
예산과 시간을 얻기 위해,
팀을 한 방향으로 모으기 위해.
그래서 문장은 단단했고,
표와 그래프는 날카로웠다.
그때의 나는
증명하는 사람이었다.
여행 브리핑은 발견이었다
이제 나는 아침마다 조용히 노트를 펼친다.
오늘 머물 공간은 어디인가
어떤 리듬으로 움직일 것인가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감정은 무엇인가
무엇을 보려고 하지 말고,
무엇을 느끼려고 할 것인지
여행 브리핑은
누군가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결론도 달라진다.
“여기 가면 좋아요”가 아니라
“여기서 나는 이렇게 느꼈어요.”
성과 대신 감정,
목표 대신 호흡,
영향력 대신 존재감.
논리에서 감각으로
회사에서는
정리 → 실행 → 검증이었다.
여행에서는
관찰 → 머무름 → 여운이다.
하나의 장면을 보며
의미를 찾기보다
그 순간에 머무는 것이 중요해졌다.
슬라이드 대신 창밖,
성과 대신 햇빛,
지표 대신 내 걸음의 속도.
보고는 멈췄지만
기록은 더 깊어졌다.
보고가 나를 증명했다면
브리핑은 나를 만든다
회사에서 보고는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전략적으로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도구였다.
하지만 여행에서의 브리핑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
빠르게 판단하던 사람에게
천천히 느끼는 법을 가르쳐주고,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던 사람에게
스스로 하루를 설계하는 자유를 준다.
사내 보고가
“나는 잘하고 있다”였다면,
여행 브리핑은
“나는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이다.
마지막 문장
사내 보고에서 여행 브리핑으로,
이 변화는 직업의 이동이 아니라
사유 방식의 변화였다.
성과를 쌓는 대신
느낌을 쌓기 시작했고,
속도를 관리하던 마음이
이제는 감정을 관리할 줄 아는 마음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표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매일 나에게 묻는다.
오늘 나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끼고,
어떤 내가 되고 싶었는가.
그 질문의 답이 쌓일수록
세상은 슬라이드보다 더 입체적인 장소가 되었고
내 삶은 브리핑보다 더 생생한 이야기로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