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경험이 여행 콘텐츠로 바뀌는 순간

by 김지구

회사에서 배운 것들은

언젠가 회사 밖으로 나가면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무실에서 쌓인 습관들은

여행지에서 가장 먼저 꺼내 쓰는 능력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느 순간

여행 콘텐츠가 되는 문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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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관찰’이 이야기가 될 때

회의실에서는

사람의 표정, 멈칫하는 손짓,

목소리의 떨림을 읽어야 했다.

그 감각은 길 위에서 이렇게 변했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닫고 창밖을 보던 사람,

시장에서 망고를 고르며 잠깐 멈춘 표정,

버스 창가에 기대 눈을 감은 여행객.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도

장면 자체가 말했다.

직장에서 분석하던 ‘고객의 마음’은

여행지에서 사람의 순간을 포착하는 눈이 되었다.


‘정리하는 습관’이 기록이 될 때

보고서를 쓰며 배운 건

문장을 예쁘게 꾸미는 법이 아니라

핵심을 잃지 않는 법이었다.

그 덕분에 여행하며 적는 기록도 간결했다.



오늘 좋았던 순간



멈추고 싶었던 거리



다시 걸어보고 싶은 이유



복잡한 감정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이 있을 때, 비로소 여행이 된다.”


일의 언어가 버려진 게 아니라

부드러워진 거였다.


‘기획’이 루트가 될 때

캠페인을 설계하듯

여행 루트도 설계했다.

너무 빽빽하면 숨이 막히고,

너무 느슨하면 기억이 흐른다.

그래서 하루엔 항상



기대하는 장면 하나



우연을 위한 여백 하나



두 칸만 채운다.

그 사이를 흐르는 시간은

그 도시가 만들어 준다.

기획안으로부터 배운 건

밀도와 휴식의 균형이었다.


‘동료와 일하던 감각’이

사람을 연결할 때

회사는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래서 여행지에서도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공용 테이블에서 말을 건네고,

동네 바리스타 이름을 외우고,

로컬 플리마켓에서 추천을 묻는다.

사람을 대하는 법은

직장을 떠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자유로운 형태로 자란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언젠가 두렵게 생각했던 직장 시간들이

사실은 새로운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었다는 걸.

그 경험이

콘텐츠를 ‘꾸미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관점으로 남았다는 걸.

여행은 직장을 벗어난 삶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과해

더 넓어진 삶이었다.


마지막 문장

직장 경험이 여행 콘텐츠로 바뀌는 순간은

퇴사한 날이 아니라,

내가 나를 더 부드럽게 이해하게 된 날부터였다.

업무는 끝났지만

감각은 남았고,

그 감각이 길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배운 건 일이었지만,

여행에서 꺼내 쓰는 건 결국

사람과 마음을 읽는 능력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일과 여행은 끊어진 선이 아니라

천천히 이어진 하나의 길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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