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토박이에서 런던너로, 다시 베를리너로...
졸업식을 1년 후에나 하는 별난 학교 덕에-
런던을 떠나며 나는 졸업식에 꼭 참석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다지며
리턴 티켓으로 항공권을 예매했었다.
(내가 공부한 런던의 석사 코스는 요상하게도 졸업식을 1년 후에나 하는 덕에,
많은 학생들이 졸업식에 참석을 하지 못한다.)
그때만 해도 베를린으로 이사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런던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지낸 지 9개월,
서울에서 작가로서 한 번의 개인 전시를 갖고 문득 나는 유럽에 돌아가고 싶어 졌다.
유일하게 런던 외에 그나마 '아는 도시' 베를린.
4일 여행한 것이 경험의 전부였고,
독일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었지만-
독일의 수도임에도 영어만 하면 어렵지 않게 지낼 수 있는 말과
아티스트들 사이에 '핫'하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무작정 이사를 결심했다.
일단 살아보자!
졸업식을 마치고 런던에서 3주,
아쉬운 나의 도시 런던을 눈물로 떠나며
무더운 한 여름의 베를린에 그렇게 장난처럼 입성했다.
어느덧, 2년 차 베를리너-
2년 사이에 3번의 이사를 했고,
2명뿐이던 지인은 무한대로 늘어났고,
한량으로 살던 삶은 직장인의 삶으로 바뀌었다.
2년 전 내가 생각했던 2년 후의 나는,
아마도 서울에서 결혼을 하고,
소소하게 프리랜서로 일하며,
열심히 작가로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이었었다.
2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
베를린 한 구석에서 싱글라이프를 즐기며,
작품 활동을 하며 전시를 하고,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소위 해외취업을 한 30대의 여자 사람이다.
한국 땅을 떠나 처음으로 해외에서 공부를 해보겠다고
영국으로 무작정 떠나던 날,
나는 깨달았다.
인생은 내가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상상을 해도
절대 그 방향만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 후로 나는 인생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렇다고 '막' 산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한다.
어떤 이는 돈을 벌기 위해 해외로 나오고,
어떤 이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해외로 나온다.
한국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뒤로 하고
내가 유럽으로 온 이유는 참 단순하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2년 동안 나는 베를린에서 행복했고,
2년 후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