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4년 만에 맥으로의 컴백
나는 지독한 윈도우 유저다.
마지막으로 맥을 쓴 것은 4년전 프리랜서인 나에게 무려 아이맥을 제공해 주었던 멋진 디자인 에이전시와 일할 때였다.
지금까지 두 곳 정도 온사이트로 프리랜서 프로젝트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개인용, 회사에서 지급받은 업무용- 모두 윈도우. 게다가 거의 처음 아이폰 3gs 나왔을 때 사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휴대폰도 줄곧 안드로이드.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바꿀 때마다 항상 고민은 있었다. 이번에는 한번 넘어가 볼까?
하지만 그럴 때마다 원하는 사양에 맞추면 너무나 높아지는 가격과 이미 윈도우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익숙해져 버린 나는 마음을 바꿔 애플을 포기해버리곤 했다.
그렇다 나에게 애플이란 존재는 늘 디자인이 예쁘지만 비싼 브랜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번에 이직을 하면서 내 애플-프리 라이프에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회사는 윈도우 운영체제가 세상에 없는 듯한 회사이다.
디렉터부터 말단 마케팅 인턴까지 모두 맥북.
입사하기 얼마 전 온보딩 이메일을 받는 날도 의아했다. 보통 베를린, 특히 스타트업에서는 입사 시 어떤 운영체제의 하드웨어를 사용할지 묻는다. 맥 혹은 윈도우즈 그리고 어느 정도 스펙이 필요한 지까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맞추어 주는 분위기.
그런데 이번 회사는 묻지도 않고 바로 집으로 랩탑을 배송시켜준단다.
그리고 도착한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맥북이 나를 반겨주었다.
우선 오랜만에 맥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도 있었으나 사용한 지 너무 가물가물한지라 운영체제 적응하려면 시간 좀 걸리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머리를 스쳤다.
이전에 아예 맥을 사용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닌지라 사용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내 업무상 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은 어도비이고, 걔네들은 윈도우나 맥이나 어차피 같으니.
가장 먼저 직면한 문제는 단축키.
하루에 ctrl+c, v, x, z를 조금 과장해 백번 이상 쓰는 나에게 command 키는 너무 가혹했다. 새끼와 검지로 누르던 단축키들을 엄지와 검지 혹은 약지로 눌러야 하는 그 생경함.
나는 서핑을 하거나 간단히 글을 쓸 때를 제외하고는 노트북에 있는 키보드를 장시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손목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그래서 재택근무 시에는 어차피 개인 키보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키보드 설정을 모두 바꾸어서 사용하고 있다.
4년 만에 맥으로 컴백한 덕분에 요 몇 주 맥 관련 사이트들을 점령하며 그동안 놓쳤던 맥 관련 뉴-스를 따라잡느라 바빴다. 필요한 앱들도 깔고, 세팅도 나에게 맞게 다시 설정하고.
그러다 보니 다시 마음에 애플 바람이 불고 있다.
맥은 정말 편리하고 좋은 운영체제임은 분명하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사용한다면 호환성도 좋고.
무엇보다 이전 디자이너들이 맥을 사용한 이유는 디스플레이가 가장 컸을 것이다. 웹이건 그래픽이건 디자이너에게 '화면' 특히 색 구현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레티나 버전의 디스플레이가 나오면서 다른 브랜드들은 따라오기 힘든 맥북의 독보적인 화면 그리고 색 구현력. 이 때문에 디자인이나 사진, 영상을 하는 사람들은 맥 혹은 맥북을 사수하곤 했었다.
하지만 맥북 혹은 맥 유저들도 결국 모니터를 확장하며 사용하는 제품들은 애플 것이 아니다. LG나 Dell 등 결국 애플의 제품을 사용하지만, 가장 많이 바라보고 사용하는 화면은 결국 다른 브랜드 제품들.
나는 가성비를 따진다면 일반 윈도우 랩탑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특히 2D 작업을 많이 하는 디자이너들은 이번에 출시된 m1 pro나 m1 pro max까지의 사양은 단연 오버 스펙이다.
나는 개인용 랩탑으로 LG 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작업용은 아니다.
하지만 간단한 개인용 디자인이나 작업을 하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누군가 나에게 디자이너는 꼭 맥을 써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운영체제가 아닌 메모리와 cpu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것은 무엇보다 개인의 선택이다. 본인에게 맞는 운영체제, 본인이 더 편리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맞는 것 같다.
내 말은 여유가 된다면, 스펙이 남아돌아도 cto 급 맥을 들인다 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결국은 본인의 주머니 사정과 각자의 선택, 그리고 상황에 따른 선택인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내가 맥 혹은 애플 제품을 꽤 싫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렇진 않다.
안 그래도 유럽은 많은 회사들, 특히 디자인 에이전시나 IT 회사들은 압도적으로 맥 os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번에 랩탑을 바꾼다면 맥북으로 가볼까 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마침 이직하는 타이밍에 회사에서 맥북을 제공해 줘서 불편함 없이 사용 중이기 때문에 당분간 랩탑은 접어두고- 요즘은 아이패드를 구입하려 고려 중이다.
아이패드를 구입하려는 이유는 일러스트 작업 때문이다. 그동안은 펜 태블릿으로 작업을 주로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제한된 작업 공간에서만 작업이 가능했고- 스케치북처럼 여기저기 들고 돌아다니며 작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많은 작가분들이 사용하고 있는 아이패드에 꽂혔다.
그래서 요즘 아이패드를 열심히 분석 중이다. 어떤 기종을 구입할지 (ㅎㅎ 이렇게 돈 쓸 궁리만....)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어쩌다 보니 한국용, 독일용, 영국용- 무려 세 대의 휴대폰이 있었는데.
그나마 영국용은 번호를 해지하면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독일용은 구입한지는 좀 되었지만 아직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는 상황.
하지만 문제는 한국용. 한국 갈 때만 잠깐잠깐 사용하다 보니 오래된 갤럭시 기종에, 코로나 덕에 거진 2년을 한국을 못 갔더니 배터리가.... 가셨다.
오랜만에 한국용 휴대폰 좀 켜보려고 충전했더니. 충전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반나절만에 배터리가...
그래서 저사양의 휴대폰을 구입하려고 알아보고 있었는데, 요즘 맥 관련된 정보를 많이 찾아보고 심지어 아이패드까지 구입하려고 알아보다 보니 휴대폰도 자연스럽게 아이폰을 알아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
다들 이렇게 점점 애플에 빠지고, 그러다가 호환성에 반하고, 그러다가 운영체제에 정들고, 그렇게 입덕하는 건가 보다.
맥으로 다시 돌아온 지 3주쯤 되었다.
아직은 윈도우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내 머리와 손이 맥을 받아들이는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현재까지는 아주 만족스럽다.
아마 곧 구입할 아이패드와 아이폰까지 함께 사용한다면 애플이라는 브랜드의 진가를 조금 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