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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외계인 Jun 11. 2022

소소한 베를린 일상, 6월

날이 더워졌다. 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구나.

해가 일찍뜨기 시작했다. 남동향 우리집, 새벽 5시 자연 알람이 시작되었구나.

그리고 해가 길어졌다. 퇴근 후에도 산책을 나갈 수 있게 되었구나.


이렇게 소소한 일상들 끝에 문득, 아 여름이구나- 깨달았다.

코로나를 뚫고 한국에 가서 가족들과 친구들과 해피 뉴이어를 외친게 엊그제 같은데- 봄이 지나고, 그 사이에 이직을 하고, 그렇게 적응을 하다보니 벌써 올해의 반이 훌쩍 지나가려 하고 있다.



#이제 재택근무는 끝나지 않는다

새로 이직한 회사는 테크 회사답게 완벽한 자율 및 탄력 근무제를 자랑한다. 회사가 20분거리에 있지만 그 조차도 가고 말고는 나에게 달렸다. 그리고 팀의 반 이상이 베를린에 살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씩 얼굴보자고 하는 전체 회의 겸 팀 이벤트가 아닌 이상 혹은 동료들 얼굴보러 놀러가는게 아닌 이상은 사무실에 갈 일이 없어졌다.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지 이제 한 달 남짓, 지금까지 사무실에 딱 2번 갔다. 첫 날, 노트북 받을 겸 사무실 투어 할 겸 한 번. 그리고 지난 달 말, 전체 회의 때문에 간 것이 전부. 그래도 화면으로만 보던 얼굴들을 직접 만나니 오래 알았던 친구 만나는 거 마냥 반갑기도 하고, 더 유대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무튼 직접 대면하고 대화하는게 좋은 걸보니, 아무리 리모트로도 협업이 가능한 세상이 왔다고는 하지만, 난 아직 아날로그 인간인가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제법 익숙해진 재택근무. 아침에 밥먹고 씻고 커피 한 잔 들고 책상 앞까지 않는데 30분이면 충분하다. 바쁜 와중에도 종종 동료들과 영상통화로 수다를 떤다. 이제 입사한지 한 달 밖에 안됐는데, 이상하게 동료들과 빠르게 친해졌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항상 누구와 편해질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타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마 왠만한 언니들보다 더 수다스러운, 사교성 갑인 우리 팀 프로덕트 매니저 덕이 아닐까 한다. 게이인 이 친구는 늘 어리고 잘 생긴 남자친구 데리고 살기 힘들다고 농을 치곤한다. 실제로 그의 남자친구는 매우 훈남이다. 능력자 인정.


물론 힘든 부분도 있다. 우리 팀에서 만드는 프로덕트는 꽤 복잡한, 심지어 전혀 다른 두 사용자 그룹이 있는 B2B 프로덕트다. 습득해야할 비지니스, 사용자 데이터도 많은데다가 진행중인 모듈에 투입된 관계로 이해를 하며 바로 디자인도 해야하는- 덕분에 그 어느때보다 바쁘고 알찬 5월을 보냈다. 힘들고 바쁘지만, 새로운 도전이기에 마음 한 구석이 열정으로 뜨거워지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



#나는 M1도 새로운데...

회사에서 Macbook M1 pro 14"를 주었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애플실리콘을 드디어 써보는구나! 하고 즐거워했거늘- 솔직히 인텔맥과 다른 체감을 아직 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어도비 프로그램을 썼으면 차이를 더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업무용으로는 피그마와 그 외에 몇 가지 협업툴, 화상 회의를 위한 줌을 사용하는 정도인지라 개인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맥북프로 2019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있다. 아, 한 가지 확실히 다른 부분은 있다. 발열! 인텔맥은 확실히 발열이 엄청나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내가 사용하는 범주내에서는 베터리 소모시간도, 프로그램 돌아가는 속도도, 크게 체감되는 부분이 없다.



그렇게  M1에 적응을 해가고 있을 무렵, 애플이 M2를 발표했다. M1에 탐색도 아직 마치지 못했는데 벌써 다음 버전이라니... 새로운 기기들은 쏟아져나오는 덕에 한기기를 1년만 넘게 써도 금새 구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나는 새로 출시되는 기기나 소식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얼리어답터는 아닌지라 꼭 최신 기기를 써야한다는 주의는 아니다. 애플로 넘어온 것도 이전 직장에서 무조건 맥북을 지급하는 바람에 정말 오랜만에 애플 생태계로 넘어온 것이라... 랩탑은 애플, 태블릿과 휴대폰은 갤럭시를 사용하고 있는 변종 상태. 하지만 이 변종 상태가 나는 꽤나 좋다. 어차피 랩탑은 주로 업무를 볼때 사용하고, 휴대폰과 갤탭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다보니 공과 사가 기기로도 구별되는 느낌이랄까?


지금이 포스팅도 갤탭에 회사에서 받은 애플 매직 키보드를 연결해서 쓰고 있다. (이것도 변종) 

코로나로 인해 영문 키보드 버전으로 랩탑을 주문하면 배송이 너무 늦어져 영문키보드가 아닌 독일 키보드로 랩탑을 주문할 수 밖에 없었다며- 미안하다고 담당자가 당장 배송 받을 수 있는 매직키보드 영문을 함께 주문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집에서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한글 키보드를 사용하고 있어서, 매직키보드를 어찌 할까하다가 갤탭에 연결해 덱스모드로 변환해 미니 랩탑처럼 사용하고 있다. 태블릿 사용하면서 유일하게 불편했던 부분이 타이핑이어서 블루투스 키보드를 하나 구입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회사에서 받은 키보드를 알차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 갤탭이 좀 사이즈가 작은 탓에, 매직키보드와 가로 길이가 딱 맞지 않아서 밖에 들고 다닐때 좀 번거로운게 아쉽긴하지만- (ㅎㅎ)



#베를린,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다

그냥 그런 평범한 하루였다. 날이 더워 아티스티를 벌컥 벌컥 마시며 이메일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냥 그런 평범한 아침. 회의 하나를 마치고 숨을 돌리고 있는데 이웃에 사는 친구에게 메세지가 날라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큰 사고가 났다고. 차량이 도로로 돌진해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던 사람들을 치고, 다치게하고, 숨을 거두게 만들었다고. 함께 보내준 기사를 보니 현장 상황은 참혹하지 그지 없었다. 사진 속 내가 아는 평범한 쇼핑 거리, 자주 들리는 상점들이 하루 아침에 사람들이 다치고, 유리창에 통째로 나가 차량이 매장 안에 푹- 쳐박혀있는 처참한 광경으로 변해있었다.


베를린으로 이사를 온해 첫 겨울. 여기저기 열리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에 정신이 팔려, 친구들과 여기저기 베를린 곳곳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 방문 일정을 짜기에 여념이없었다. 그 날도 그저 평범한 날중 하루 였다. 친구들과 베를린의 유명한 크리스마스 마켓 중 한 곳에 다같이 놀러를 가기로 계획을 했다가 일정이 틀어지는 바람에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던, 기대했던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지 못하게 되서 약간의 실망감에 젖어있었던 그냥 그런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 우리가 가지 못했던 그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트럭 테러가 일어났다. 갑자기 크리스마스로 돌진한 트럭덕에 행복과 즐거움이 넘쳐나던 그 곳은 순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슬픈 장소로 물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멀지 않은 장소에서 비슷한 사고가 나고 말았다. 범인이 아직 치료를 받고 있는 관계로 이것이 지난 2016년때처럼 테러인지, 아니면 정말 그저 개인이 저지른 사고인지 알수는 없지만. 중요한 사실은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이 말도 안되는 사고 덕에 정말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은 그들을 사랑하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만들었다.


내일은 약속되어있지 않기에 하루하루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있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잊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사고,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죽음, 일상에 갑작스런 변화를 맞는 누군가의 희생덕에- 다시금 이 사실을 깨닫고, 기억하고, 마음을 다 잡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나는 또 이 소중한 시간들을 멍청하게 흘려보낼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가슴아픈 희생으로 되새겨진 이 사실을 기억하며, 당분간은 하루하루 그 누군가의 몫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보내려고 노력할 것 같다.




_


해가 이제 슬슬 지려고하는 베를린의 늦은 밤, 적당히 선선한 공기, 그리고 금요일.

재택근무를 마치고,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잠옷차림으로 쇼파에 기대누워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지금 소소한 내 일상의 생각들을 기록하는 이 시간이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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