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독일 기차에서 일하기, 너무 괜찮았던 숙소) 2023.06.15
작년 여름, 도이치반 (이하 DB)은 에데카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와 함께 저렴한 가격의 기차 바우처를 판매하는 행사를 했었다. 39.99유로에 독일 내 아무 기차나 예약할 수 있는 (1등석 제외) 바우처로, 왕복 80유로가 조금 안되는 셈이다. 장거리 기차 (보통 100유로가 넘는다) 노선 예약이나 혹은, 미리 기차표를 예매하지 않아도 되니 (독일 기차는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그래서 보통 늦어도 1-2달 전에는 기차표를 예매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바우처 사용기간 무려 1년. 언젠간 쓸 일이 있겠지 싶어 작년에 구입해놓고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료와 대화를 하던 도중 우연히 그 바우처를 올해 여름 안에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기억났고, 부랴부랴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서쪽 쾰른이나 뒤셀도르프를 생각했었으나 막상 도시 구경이나 레스토랑 가는 것 외에는 크게 주말 내내 할 것이 많을 것 같지는 않아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곧 아트 바젤 (국제 규모의 가장 큰 아트페어 중 하나)이 열린 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영국 2년, 베를린 7년 가까이 살면서 늘 귀차니즘이 발목을 잡아 가지 않았던 아트 바젤. 바젤은 스위스에 있는 도시이지만 워낙 스위스 물가가 비싸고, 특히 아트 바젤 시즌에는 근처에 숙소 구하기가 힘들어 대부분 근교 독일이나 프랑스 등에 숙소를 잡고 이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독일 내에 바젤과 가까우면서도 가볼 만한 곳이 없나 물색하던 중 문득 프라이부르크를 떠올리게 되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프랑스까지는 갈 마음이 없었는데- 첫째 날 마지막 날 프라이부르크, 둘째 날 아트 바젤을 정하고 나니 셋째 날 일정이 딱히 없었다. 프라이부르크를 굳이 3일이나 둘러보기에는 도시가 그렇게 크지는 않아 어딜 갈까 하다가- 근교 프랑스의 콜마르가 아름답다는 블로그 글이 많이 보여 콜마르를 가기로 결정! 그렇게 4일 동안 무려 3개국을 여행하는 무모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프라이부르크 역까지는 무려 기차로 7시간. 어차피 평일에 휴가를 내지 않고 이동을 할 계획이었기에 기차에서 일을 해보기로 했다. 독일 기차에서는 대부분 와이파이를 제공하는데, 노선에 따라 연결이 빠를 때도, 느릴 때도 있기에 동료들에게 미리 기차에서 일 할 것을 공지하고 목요일의 모든 미팅을 싹- 취소했다. (하하!)
다행히 이메일이나 슬랙, 피그마를 굴릴 정도로 인터넷은 돌아가서 기차 안에서 7시간 따분하지 않게 일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일을 하려고 일반 좌석이 아닌 큰 테이블이 있고 4명이 마주 보는 좌석을 예매했는데, 이날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아니면 같은 회사 소속 사람들인지 주변에 온통 개발자들 (ㅎㅎㅎ) 우리 회사인줄;;; 내가 탔던 기차칸 거의 전체에 모두 노트북 열고 일하는 분위기였다. 움직이는 이동 오피스 느낌 물씬. 덕분에 나도 같이 집중해서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7시간을 달리고 달려 드디어 도착한 프라이부르크! 일을 마무리하고, 휴가 모드로 돌입! 우선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놓기 위해 미리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사실 숙소를 엄청 미리 예약한 게 아니라 호텔 옵션이 그리 많지 않았다. 시내에 있는 호텔들은 혼자 1인실에 머무르기에는 가격이 조금 비쌌고, 에어비앤비는 그닥 선호하지 않아 어딜 갈까 하다가 괜찮은 옵션 발견! 아파트형 호텔인데 작지만 부엌도 있어서 조리가 가능하고 지은지 얼마 안되서 후기 속 사진들이 꽤 깨끗하고 모던해 보였다.
1층에 도착하니 데스크에 직원이 있긴 하나! 체크인은 기계로 하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하하. 체크인 기계로 개인정보 등을 입력하면 기계에서 방 번호가 적힌 영수증과 객실 카드가 나온다. 1층에는 작은 인포데스크와 자판기, 그리고 공용 휴식 라운지가 있고, 밖에도 벤치 등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내가 묵은 객실은 4층. 4층으로 올라가자 복도부터 방까지 디자인이 참 북유럽스럽고 깔끔하다.
내가 예약한 객실은 1인용 객실로 작은 부엌과 개인 욕실에 딸려있고 싱글 배드가 있는 방이다. 주방은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알찬 구성! 긴 주말여행으로 4일간 머무르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간단한 요리가 가능하고 작은 냉장고도 있고, 캡슐 커피 머신도 있어서 머무르는 동안 커피나 차 등도 편하게 마셨다. 욕실과 침구도 완전 깔끔깔끔! 정말 역대급으로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와 청결함!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욕실과 침실, 부엌에 있는 용품들이 모두 꽤 괜찮은 브랜드들의 제품이었다는 것. 보통 아파트형 호텔은 말만 호텔이지 여러 사람이 묵는 만큼 식기 등을 싸구려 혹은 저렴한 브랜드 제품으로 배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완전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사용하고 질이 좋은 브랜드 제품들도 채워져있어 머무르는 동안 정말 집에서 머무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주었다.
다행히 숙소 창이 안쪽 뜰을 향하고 있어 밤새 조용하고 창밖 풍경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노을 지는 풍경을 방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참 좋았던...! 물론 나름 호텔인지라 에어컨/히터 시스템도 잘 구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대형마트가 숙소 바로 앞에 있어, 숙소를 떠날 때나 돌아올 때 - 당일 혹은 다음날 먹거나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게 너무나 편리했다.
사실 프라이부르크는 엄청 대도시는 아니기에, 첫날이니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고 도시를 크게 한 바퀴 도는 느낌으로 산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숙소를 나섰는데, 역시 도시가 크지 않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웬만한 장소를 다 둘러보게 되었다.
우선 프라이부르크의 상징 대성당으로 향했는데, 웬걸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마침 당일 대성당 주변으로 행사가 있어서 대성당 안은커녕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던 ㅜㅜ 거기서 일하고 있는 이벤트 스태프분에게 물어보니 콘서트가 있단다. 아쉽지만 대성당 주변을 크게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사람이 많은 복작한 광장을 피해 골목을 따라 발길을 닿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가, 커피 덕후인 나는 미리 봐두었던 카페들 중 한 곳을 우연히 발견!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기 위해 카페 안으로 향했다. 실내 인테리어는 꼭 바 같았는데, 뒤쪽으로 가니 작게 흐르는 수로 옆으로 발코니가 있어 아기자기한 풍경을 보며 음식과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원래 독일에서 아이스커피 잘 안 마시는데, 이 날은 너무 더워서 안 마실 수가 없었...
간단히 배를 채우고 좀 쉬었다가, 다시 도시 여기저기 돌며 구경 또 구경. 마침 친구에게 선물 받은 디지털 토이카메라를 들고나가 중간중간 사진을 찍으며 여유롭게 산책을 즐겼다.
지나가다 발견한 또 다른 장소. 프라이부르크 시청이다. 시청 앞 길바닥에는 다양한 도시 이름과 문양이 있는데, 프라이부르크와 자매를 맺은 도시들인 듯하다. 그리고 그중에는 반가운 도시도 있었다.
프라이부르크는 수원시와 자매결연을 한 도시라 프라이부르크에는 수원시 마크가 있고, 수원시에는 프라이부르크 전망대(가보진 않았음)가 있다고 한다.
지나가다 보니 계단이 있길래 왠지 경치 감상이 가능할 것 같아 잠시 올라가 보았다. 탁 트인 풍경은 아니지만 귀여운 프라이부르크 풍경. 베를린과는 확실히 다르다.
7시간의 기차 여정과 몇 시간 도시 여기저기 돌아보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 앞 마트에 들러 간단히 필요한 음식과 물건을 구입해 숙소로 컴백!
거의 10시에 가까운 시간에 숙소로 왔는데도 밖이 아직 밝다. 숙소 밖으로 보이는 노을 지는 풍경이 제법 멋지다. 하루 종일 땀을 열심히 흘린 덕에 재빨리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경치를 보며 나름 혼자 여행 첫날을 자축했다. 혼술을 그닥 즐기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날이 기분을 내기에 와인만 한 것이 없는 듯하다. (내가 구입한 건 알코올 프리이긴 하지만)
이렇게 프라이부르크에서 첫날밤이 흘러갔다. 내일은 아트 바젤. 또 하루 종일 엄청 걸어야 하니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