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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외계인 Nov 01. 2021

내가 베를린에서 일하는 이유 / 일하기 싫은 이유

결국은 너의 선택이다.

"외국 회사"

말로만 들으면 참 멋지다.

무언가 자유로울 것 같고, 

스트레스 따위는 없을 것 같으며,

만족스러운 워라벨을 가질 것만 같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 내가 지금부터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우리 회사를 기준으로 작성한 글이다.



내가 베를린에서 일하는 이유,


1. 수평적인 회사 관계 

나는 소위 말하는 사회생활을 참 못한다. 좋아하지도 않고... 

우리 집이 다른 집에 비해 워낙 자유분방하다.

대학시절 내가 가장 들은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거실에 계신 친구 아버지가 방에 있던 친구에게 휴대폰으로 전활 걸어

물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는 것.


즉, 나는 설득력이 없는데 윗사람 말이라고 무조건 그 말에 따라야 하는 분위기를

아-주 싫어한다.


물론 회사는 회사이기 때문에 경영진들의 결정을 따라야 하고, 이해가지 않고 답답한 결정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최소한 내 의사를 피력할 수 있고, 무조건 나보다 나이 혹은 직급이 높다고 해서

그 의견에 따르거나 쓸데없는 행동 (회식에서 수저를 놓거나, 상사 개인적인 심부름을 한다거나 등등)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 팀은 팀장이 이탈리아 사람인데 점심시간마다 팀원들을 위해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준다.



2. 다양한 시선, 다양한 경험

다양한 정체성과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에 관심이 많은 나는 각 나라의 문화나 차이점을 배우고

하나의 디자인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을 아주 흥미롭게 생각한다.

우리 팀은 총 4명인데, 4명이 다 국적이 다르다.

물론 세계 어디든 좋은 디자인을 보는 눈은 같지만,

디자인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거나 다른 견해를 이야기할 때 아주 흥미롭다.

특히 유럽 사용자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초창기의 나에겐 각 나라의 고객들이 선호하는 디자인 취향이나

프로모션 전략 및 동향을 배워가는 부분이 아주 재미있었다.


우리 회사 기준,

프랑스 담당 마케터들은 디자인에 아주 예민하다.

글씨의 크기나 모양, 레이아웃, 색상 등 아주 면밀하게 체크하는 편이다.

반면 독일 담당 마케터들은 

내용 전달이 충분히 잘 되고,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이 정확히 눈에 잘 들어오면

디자인에 대해서는 크게 터치하지 않는 편이다.


가끔은 지나치게 디테일하게 디자인에 관여하여 짜증이 나기도 하고,

어쩔 때는 너무 디자인에 관심이 없어 그 가치를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하고.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3. 철저한 선택적 개인주의

한국에서는 "조직 문화"가 강하다.

팀끼리 점심을 먹거나 꼭 누구와 함께 점심을 같이 먹어야 하는 분위기이고,

회식에 꼭 참석해야 하며,

사적인 이야기로 어느 정도 공감대 형성을 해야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곳은 선택적 개인주의가 가능하다.

점심시간을 갖지 않거나 혼자 먹어도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회식 참석 여부는 개인의 선택이다.

사적인 이야기는 먼저 꺼내지 않는 이상 묻지도 않는다.


물론 회사에서 지금의 나는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기 때문에

함께 여행도 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눈다.

하지만 처음 입사했을 때는 나름의 "선"이 있었고,

그 선을 넘으려 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 선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도 없었다.


내 말은 개인주의가 좋다는 말이 아니라,

여기에서는 내가 원하면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개인"이 조직에서 별개의 행동을 하면 튀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강한데,

이곳은 그 사람이 성향이나 선택을 존중하여 주는 편이다.





내가 베를린에서 일하기 싫은 이유,


1. 아..... 이 죽일 놈의 세금 

연봉에 따라 다르지만 독일은 거의 월급의 40% 정도가 세금+보험+연금 등으로 자동 빠져나간다.

독일은 6개의 세금 클래스가 있는데,

미혼 / 부부 / 자녀의 유무 등에 따라 세금을 내는 정도가 다르다.


세금과 보험/연금의 비용이 높기 때문에

회사 지원 시 연봉을 협상할 때 이를 잘 감안하고 희망 연봉을 기재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받는 월급은 내가 생각한 것의 60% 정도 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특히 유럽은 "전세"의 개념이 없고,

집을 구입하지 않는 한 매달 집세를 내야 한다.

거기에 전기료, 인터넷, 난방비, TV 수신료 등등을 납부하고 + 한 달 생활비

가끔은 여행도 하고, 한국도 방문한다고 치면

실질적으로 독일은 돈을 모을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단순히 외국에서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해외취업을 꿈꾼다면, 유럽으로는 오지 마시길...

독일 못지않게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세금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2. 인종차별?

요즘 코로나 때문에 인종차별이 여기저기 꽤나 이슈가 되고 있다.

인종차별 기사들이 한국에서 보도되어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연락을 받을 때마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인종차별은 어디에나 있고,

인종 차별하는 놈들은 꼭 인종차별이 아니어도 

그 누구에게나 시비 걸고 못된 짓 할 놈들"


이라고. 


의도했던 의도치 않던, 유럽이 미국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인종차별적 발언에 무지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본인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고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다.


나의 경우는 나만의 룰이 있다.

- 의도치 않은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농담으로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의 수위 : 웃으며 한 번은 넘어간다.

- 의도치 않은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농담으로 넘어갈 수 있는 수위가 아니거나 반복 : 인종차별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고, 그것이 얼마나 무식한 짓인지 교육시킨다.

- 의도적으로 한 발언이나 농담으로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의 수위 : 웃으며 나도 농담으로 한 방 먹인다. (꼭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 의도적으로 한 발언이면서 동시에 기분 나쁠 정도의 수위 : 이건 싸우자는 이야기이다.


보통 길거리를 지나갈 때 철없는 10대들이 하는 "니하오" 따위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말도 했을 때 통하는 사람이 있고,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회사 동료나 친구 등, 소위 알만한 사람이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을 때,

나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이고, 본인은 생각 없이 한 말이지만 상대방은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다는 것을

교육하고 알려준다.


인종 차별이 꼭 아시안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스페인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동료 왈,

"너 그거 알아? 나도 이 회사 입사하고 나중에 들은 건데, 나 뽑기 전에 대표가 나에 대해

'그 후보자는 경력은 아주 마음에 드는데 스페인 사람이라...'이라고 말했던 거?"


WHAT?????

대표가 이 친구 면접 직후 팀장에게 그렇게 말을 했단다.

스페인 사람들에 대해 근면 성실하지 못하고 노는 것 좋아한다는 선입견이 있어

그렇게 말했다는 것.

이 친구도 입사 한참 후에 그 얘기를 들은지라 뭐라고 하지는 못했지만,

입사 전에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입사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한 회사의 대표가 아무리 생각 없이 말했다고 하더라도

저런 선입견을 거리낌 없이 팀장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고,

인종차별적 발언에 무지하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라고.


대표가 평소에 나나 다른 직원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하는 편이라

더욱 놀라웠던 이야기였다.



3. 언어

이건 나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현재 독일어 무식자인 관계로 영어로 일을 하고 있다.

영어가 내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1차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디자인은 말로 설명을 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언어의 중요성이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현재 나는 보통 4개 국어로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영어, 독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기본적인 언어 지식이 없는 경우에서 디자인을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종종 있다.


예를 들면 한국어로 디자인을 하면, 종종 동시에 교정을 보는 경우가 있다.

틀린 오탈자를 고친다던지, 문구를 좀 더 매끄럽게 내가 다듬어 역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고..

하지만 영어를 제외한 나머지 세 언어는 이야기가 다르다.

생전 처음 보는 언어로 디자인을 하는 것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업무상 불편한 점이 꽤 많다.


보통 우리 회사는 카피 초안을 영어가 아닌 독어나 프랑스어로 잡는 경우가 많아서

2년 정도 지난 지금은 그래도 회사에서 많이 작업하는 기본적인 단어는 많이 익숙해져서 좀 낫지만,

처음에는 기본적인 단어도 몰라 구글 번역기를 항상 켜고 있을 정도였다.


나의 경우는 이미 영국에서 생활을 조금 하고 온 터라, 의사소통에 대해 부담은 다소 적은 편이었는데,

가끔 한국에서 바로 베를린으로 직장을 잡아 오시는 분들이나

독일어로만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회사를 다니시는 분들이 직장 내에서 의사소통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를 보았다.


대부분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업무도 업무지만 가장 큰 부분은 동료들과의 의사소통.

업무는 이메일 읽기나 쓰기의 경우는 번역기나 온라인 사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회의나 업무상 커뮤니케이션 부분은 녹취를 해서 다시 꼼꼼히 듣거나 회의록을 별도로 쓰는 등

각자 자신만의 방법을 구축하여 돌파하는 분들이 많은데, 동료들과의 의사소통은 급이 다르다는 것.

보통 업무를 이야기할 때에는 속어보다는 전문적 용어나 

정확히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다 보니 어렵지 않은데,

커피 브레이크나 동료들 간의 일상적인 대화는 말하는 속도나 쓰는 용어들이 다르기 때문에

애를 먹는 부분이 많다고 한다.


나의 경우, 처음에 애먹였던 것은 다름 아닌 발음.

우리 회사의 경우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인도, 브라질, 러시아, 폴란드 등

20개국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

그 말인즉슨,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다 본인 나라식으로 영어 발음을 하는 것이다.

영어 + 이탈리아 억양

영어 + 독일 억양


물론 걔 중에 발음이 아주 좋은 동료들도 있지만, 

특히 프랑스식 억양이 강한 몇몇 마케터들의 발음을 처음에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물론 발음의 경우 각 나라마다 일정한 패턴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적응이 가능하지만, 

처음 몇 주는 최대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발음을 알아듣는데

온 신경을 쏟았던 기억이...



 

날이 좋았던 봄날, 동네 산책 중




어쩌면 베를린에서 일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베를린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를

훌쩍 뛰어넘을지도 모르겠다.

일하는 것은 어쨌건 현실이고, 

외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써 일하는 현실은

단언컨대 결코 녹록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이곳이 조금은 스스로에게 더 행복하다고 느껴지기에

베를린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사설이 제법 길었지만,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


흔한 말이지만,

누구도 당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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