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기 위해 꼭 필요한 다섯 가지
애초에 베를린에 온 목적이 디자인 취업이 아니였던 나는
아티스트 비자, 즉 프리랜서 비자를 먼저 받았다.
전시도 하고, 일도 하며 베를린에 좀 더 있어볼 요량으로 받았던 나의 첫 비자.
그리고 그 덕분에 프리랜서 일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결국은 회사에 디자이너로 덜컥 취업하여 어느새 5년차 베를리너로 살고 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써 공식적이 나의 첫 프로젝트 A to Z.
1. 안멜둥 (거주지등록)
2. 은행계좌
3. 프리랜서 비자 + 건강보험
4. 세금번호 (Steuernummer)
5. 클라이언트 + 나의 첫 프로젝트
독일 생활의 모든 시작은 "집 구하기"로 부터 시작된다.
베를린의 유명한 사진,
- 일반인 : 무슨 일 났나봐!
- 베를리너 : 아파트 뷰잉있군.
내가 지금 살고있는 아파트에 방문했을 때 약 300명의 사람들이 모였었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돋는 300:1의 경쟁률.
베를린은 특히 집구하기 어려운 걸로 악명 높다.
컨디션, 위치, 가격이 좋은 집들은 대부분 지인들을 통해 빠르게 빠져나가고,
부동산 사이트에 올라오는 집들 중 괜찮은 집들은,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쟁취가 가능하다. (쟁취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래서 보통 베를린 초기 정착시에는 쉐어 아파트 보통 WG라고 불리는 곳에 방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WG는 아파트 하나를 여러명이 쉐어해서 쓰는 형태를 말한다.
여기서 문제점은 꽤 많은 방이나 아파트가 "단기"로 나온다는 것이고,
그런 경우 대부분 거주지등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베를린은 장기 체류의 경우 반드시 집주인에게 받은 서류를 구비하여 "거주지등록"을 해야한다.
이것을 해야 은행 계좌도 열 수 있고, 비자 신청, 보험 등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거주지등록을 한 후에는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또 일을 하기 위해,
은행계좌를 열어야 한다.
나는 2개의 은행계좌를 가지고 있다.
- Berliner Sparkasse : 월급통장 / 집세, 세금 등 공적인 일에 사용한다.
- N26 : 서브 계좌로 생활비를 넣어놓고 평상시에 사용한다.
독일은 계좌유지비도 있고, 나이와 수입, 은행에 따라 혜택도 수수료도 다르기때문에
본인이 직접 꼼꼼히 알아보고 선택해야한다.
내가 슈파카세를 선택한 이유는,
우선 지점이 많아 현금인출이 용이하고 (베를린은 아직도 카드로 결제가 되지 않는 곳이 많다),
또 하나는 다른 은행에 비해 영어 서비스 제공의 폭이 넓다는 부분이다.
하지만 슈파카세의 경우 카드를 사용하면 그 내역이 바로바로 뜨지 않아 평상시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있었고,
결국 계좌유지비가 없고 어플 사용이 편리한 N26에 계좌를 하나더 열어 사용하게 되었다
N26는 비교적 화상통화를 통한 본인 확인 후 쉽게 계좌를 열었고 (요즘은 좀 더 까다로워졌다고 들었지만),
슈파카세의 경우 은행 직원분과 장시간의 상담 + 무수한 서류에 싸인을 마친 후에야 계좌를 열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프리랜서 비자를 받는 법 / 서류 준비는
네이버 검색 10분과 베를린 공식 사이트를 확인하면 누구나 준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략)
처음 프리랜서 비자를 받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통장잔액 / 건강 보험 / 그리고 계약서
나같은 경우는 1인 기준 1년정도 생활 가능한 금액을 넣어둔 통장 잔액 증명을 했다. (한국은행 - 영문 잔액증명서 원본)
건강보험의 경우는 사보험이 아닌 처음부터 공보험을 가지고가서 수월했고 (이 부분 따로 자세히 포스팅 예정)
계약서의 경우는 프리랜서로써 나를 고용하겠다는 클라이언트와의 계약서를 말하는 것인데,
당시에 나는 베를린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어학원을 통해 사귄 몇몇 친구가 다였고.
비자도 없고 연고도 없는 나에게 디자인 일을 줄 사람은 만무했다.
그래서 디자이너, 큐레이터, 작가로 일하는 친구들에게 가계약서 형식의 추천서를 받아 대신 제출하였다.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서는 거주지등록과 건강보험이 필수이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고 반드시 해야하는 사항들이다.
건강보험의 경우 처음부터 공보험을 프리랜서가 가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비스타, 케어컨셉 등 사보험을 단기로 가입해 그것으로 비자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
추가로 비자를 받기 위해선 외국인청에 가야하는데,
우리가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외국인청은 정말 케바케"
담당자를 어떤 사람을 만나는냐에 따라 똑같은 조건으로 3년짜리 비자를 받기도하고, 누군가는 비자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영어를 못하거나 혹은 못알아 듣는 척을 하는 경우도 꽤 많아 나의 경우는 독일어를 잘하는 한국 지인분이 동행해주셨었다.
그래서 나는 비자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말한다.
"지나칠 정도로 서류를 준비해" 라고...
나 역시 필요하다고 적힌 필수 서류외에 포트폴리오, 이력서 등
부수적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모아 준비해서 가지고 갔었다.
이것은 안멜둥(거주지등록)을 하면 날라오는 ID넘버와 Tax넘버와는 다른 것이다.
Steuernummer는 세금청에 직접가거나 우편으로 양식을 제출해 신청을 해야 나오는 번호이다.
일반 직장인이나 학생은 굳이 신청할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프리랜서 혹은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요구되는 번호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다보면 돈을 받기 위해 클라이언트 혹은 회사에 인보이스를 보내야하는데,
이때 반드시 세금번호를 기재하여야하기 때문에
일을 하고도 세금번호가 없다면, 합법적으로 돈을 받을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세금번호는 신청한다고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몇 주 후 우편으로 날라온다.
일을 바로 시작해야한다면 세금번호를 최대한 빠르게 신청하는 것을 추천.
나 역시 처음 프로젝트를 할 때, 일은 3월에 시작했지만,
세금번호가 제대로 신청되지 않아 다시 신청한 덕분에 발급이 늦어져
4월에 많은 양의 인보이스를 한꺼번에 보내고 돈을 받았던 기억이있다.
위의 네 가지를 다 준비했다고해도 누군가 나에게 일을 주지 않는 다면,
다 부질 없는 것.
베를린은 프리랜서가 많은 만큼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구조가 잘 되어있고,
프로젝트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 말인 즉슨, 경쟁률이 높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뛰어난 실력의 디자이너들,
이미 베를린에서 자리를 잡아 굵직한 클라이언트들을 확보한 디자이너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정말 베를린에 아는 사람 거의 하나없이 온 나로써는
네트워킹과 프로젝트 따기란 참으로 막막했다.
- 네트워킹
Meetup이나 디자인 컨퍼런스 등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류를 위해 노력했다.
꼭 일적인 인맥이 아니여도 나는 실제로 이런 교류를 통해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 프로젝트 따기
인맥을 통해 프로젝트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페이스북 그룹이나 Indeed, LinkedIn을 통해 디자이너를 찾는 프로젝트에 지원하기도 하고
역으로 연락을 받기도 한다.
나의 첫 프로젝트는 Meetup에서 만난 나의 베스트 프렌드로 부터 시작됐다.
Meetup에서 만난 우리가 친해지기에는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공통점도 한 몫했지만,
무엇보다 둘 다 커리어를 변화시키는 과도기에 있었다는 공감대가 우정을 돈독하게 만들었다.
프리랜서 번역가였던 친구는 IT 계열로 분야를 옮기고 싶어했다.
실제로 친구는 단기 온라인 코스를 듣기는 했지만, 경력과 전공이 전혀 다른 상태에서
운좋게 베를린의 한 디지털 에이전시에 IT 프로젝트 매니저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이 친구가 취직을 하게 되었을 때
"너가 프로젝트 매니저로 내가 디자이너로 같이 일하면 진짜 웃기겠다"
농담을 주고 받곤 했었는데 실제로 실현이 될 줄은 정말 상상 조차 하지 못했던...
그도 그럴 것이,
이 친구가 취직한 에이전시는 순도 100%의 독일 회사 였기 때문.
당연히 공용어는 독어였고, 외국인이라고는 독일에서 산지 15년이 되어간다는 호주 디자이너 1명 밖에 없는
정말 독일독일한 회사였다.
덕분에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독일어 무식자였던 나는 기대는 커녕 상상도 해보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문자 :
우리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급하게 필요한데,
모바일이랑 웹페이지 디자인인데 개발자는 따로 있어서 코딩은 안해도 되고
디자인만 하면 되는데 데드라인이 좀 촉박해. 관심있어?
나는 친구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을 적어 이력서와 함께 보내주었고,
다음 날 대표로 부터 면접을 보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친구가 전해주었다.
얼떨결에 면접.
다행히 대표가 내가 독어 무식자라는 것을 알고도 면접을 보고 싶어한다기에
긴장반, 기대반으로 친구 회사에 입성했다.
영어가 유창한 대표 덕분에 일단 한시름 놓았고,
간단한 질의응답이 오고 갔다. 주로 이전의 프로젝트나 경력에 대해.
한 10분정도 면접봤나?
갑자기 대표 왈 : (내 친구를 부르며) 그럼 프로젝트 설명해 볼까?
면접인줄 알고 갔던 그 날,
나는 2시간 동안 프로젝트 프리젠테이션을 들었고
다음날부터 바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나의 첫 프로젝트는 B2B 웹/모바일 사이트를 디자인하는 것이었고,
배너, 뉴스레터 등 추후에 필요한 디자인적 요소들의 템플릿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이미 디자인 에이전시가 어느 정도 디자인 해놓은 웹사이트의 마무리를 하는 것이었는데,
클라이언트 프리젠테이션이 3일 후라 그 전에 끝내야 한다는 것.
3일을 하얗게 불태웠고-
결과적으로는 클라이언트가 내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해서
원래 3일이었던 프리랜서 계약은 3달로 연장되었고,
기존의 다른 디자인 에이전시가 작업한 웹/모바일 사이트를
처음부터 내 스타일대로 다시 디자인 했다.
친구랑 함께 일해서 무엇보다 즐거웠고,
대표도 디자이너 출신이라 대화와 조율이 아주 수월했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당시 나는 시간당 페이를 얼마나 불러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는데,
친구가 이전에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디자인 에이전시가 얼마 받았는지를 귀뜸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대표에게 e-commerce에 특화된 내 경력을 잘 어필해주었고, 첫 페이 제시도 대신 해주었다.
나중에 듣기론 내가 그 회사에서 디자이너로써는 3 손가락 안에 들게 높은 페이를 받았다고 한다.
역시 친구는 잘두고 봐야한다.
그 후 나의 대부분 프리랜서 프로젝트들은 아직도 지인들을 통해 들어온다.
Meetup을 통해 만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이전부터 알았던 지인과 클라이언트들.
회사에 취업을 하면서 부터는 내가 발벗고 나서서 프리랜서 일까지 찾을 여력도 안됐지만,
결국 일은 사람을 통해서 들어오게 되는 것 같다.
예전 대학원 다닐 때 교수님께 늘 하셨던 말씀이 있었다.
"디자인하는 애들끼리만 어울려 다니지 말 것"
같은 분야 사람들끼리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결국 "일"이라는 것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로 부터 들어오기 때문이다.
너무 디자인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리지말고,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경험도 쌓고 인맥도 쌓으라는 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