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그 놈의 디지털 노마드
결론은,
글쎄요. 답이 있다면 저도 알고 싶네요.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런던에서 공부할 때도 그랬고,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 보니 이런저런 상담 요청이나 질문을 많이 받는다.
요즘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은,
"저도 베를린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돼요?"
제일 난감하다.
밑도 끝도 없이, 뚜렷한 목표도 없이 그냥 일하고 싶다고 하면
일이 짜-잔! 하고 나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특히 이미 디자이너로써 한국에서 일을 했던 사람이라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는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잘 알 것 같은데...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상담 아닌 상담을 해준 사람들의 5%도 안되는 사람들 정도만
실제로 해외에 나와 본인이 정말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룬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외로 쉽사리 나오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다.
나는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서"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물리적인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여 부딪히고 알아보고, 관심을 갖는
"끈기와 노력"을 말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도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준비를 하고 베를린으로 출국하기까지
2달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2달 동안 비자를 위해 필요한 정보나, 독일어 코스, 당장 받을 수 있는 내가 필요한 도움이나 혜택 등등
한국에서 수집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인터넷에서 탈탈 털어 출국했다.
물론 운이 좋아 좋은 기회에 우연히 해외로 나와 뜻하지 않게 일을 하는 사람도 많고,
장학금을 받아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된 능력자들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학이나 해외취업 준비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내가 정말 공부하고 싶은 학교의 커리큘럼, 졸업 후 동문들은 어떻게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지-
내가 가고자 하는 나라는 어떤 디자인 스타일을 추구하고, 일을 하려면 어떤 서류들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지 등.
정말 절실하게 유학이나 해외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질문부터 다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 물어본다.
예를 들면,
"베를린에서 프리랜서 비자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가 아니라-
"베를린 프리랜서 비자 신청하려고 하는데 건강보험은 마비스타 ㅁㅁ보험과 케어컨셉 ㅇㅇ보험 중에 뭐가 더 나을까요?"
이런 식이다.
실제로 이런 경우, 이미 본인이 스스로에게 적합한 보험에 대해 충분히 알아본 경우가 대다수이고,
나에게 인터넷 검색 10분만하면 나오는 단순한 "정보"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겪은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묻는 것이다.
베를린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혹은 해외에서 취업하고 싶다는 이들에게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1. "취업은 타이밍이다."
똑같은 능력이 있어도,
내가 원하는 포지션과 나의 경력이 맞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취업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 타이밍이 맞지 않다면 취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어디에 언제 취업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내 이력서와 커버레터, 포트폴리오를 수시로 정비하며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2. 한국이 학연 지연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유럽도 만만치 않다.
무조건 좋은 대학, 같은 동문이라고 채용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어디든 "인맥"은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도 우연히 알게 된 인사담당자가 본인의 회사에는 현재 디자이너 채용 계획이 없지만,
친구가 인사담당자로 있는 회사에 자리가 있다며 내 이력서를 직접 전달해주기도 했었다.
성사가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기회란 사람을 통해서 더 폭이 넓어지는 것은 사실.
베를린에서, 독일 회사에서 일한다고 하면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외국에서 회사 다니니까 좋겠다."
이미 다른 포스팅을 하기도 했지만, 답은 Yes 그리고 No다.
외국회사라고 무조건 휴가 펑펑 내고, 무조건 재택근무를 편하게 하고,
무조건 워라벨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분야, 회사 분위기, 회사 방침에 따라 천차만별.
최근 IT 계 대기업으로 이직을 한 친구 S양은 이전 회사를 다닐 때 보다
평균 5시간을 매주 더 일하고 있다.
물론 프로젝트별로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면
이 기업의 경우 본인이 근무 외 일한 만큼 휴가를 준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은 극도의 압박감과 스트레스, 야근을 불사했다는 것.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워라벨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해외여행이 조금은 더 편해진 세상이 오다 보니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사람이 주변에 많아졌다.
노트북 하나를 들고 세계를 여행하며,
맛있는 커피와 햇살이 쏟아지는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을 꿈꾸는...
하지만 이 디지털 노마드 세상에도 "급"이라는 것이 있다.
"디지털 노마드"를 꿈꾼다는 후배 J에게
"너가 생각하는 디지털 노마드는 무엇인가?"를 물었다.
J는 프리랜서 영상 편집 일을 2-3개 정도 잡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며
해외 이곳저곳 여행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이 후배는 영상 편집을 전공하지 않아 이제 막 기초적인 것들을 배우는 단계였으며,
후배가 말하는 영상 편집 일이란 영상 편집을 직접 하지 못하는 유튜버들의 영상을 편집해주는
단기적인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IT계열에서 일하고 있는 프로그래머 A군은 어쩌다 보니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다.
Remote work가 가능한 미국 회사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베를린으로 옮겨온 A군은
본인의 재량에 따라 근무시간을 정하고,
가끔은 집에서, 가끔은 co-working space에서, 가끔은 카페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노마드"는 J양의 꿈꾸는 삶보다는 A군이 살고 있는 삶이 아닐까 한다.
물론 J양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디지털 노마드"는 조금 다르다.
내 주변에 정말 "멋진" 디지털 노마드들은-
A군처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나 앱 개발자, UX 디자이너 등 "전문적인 분야의 일"을 가지고,
능력과 업무에 걸맞은 정당한 페이를 받으며, 호화롭진 않지만 여유로운 삶을 가지고,
remote work가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과 일하지만 독일에 살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기준이 있다.
그리고 그 삶의 기준은 내가 어디에서 살고, 어느 시대를 살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한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노마드와 해외취업을 꿈꾸는 요즘,
사람과 어울리며 직접 얼굴 보고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 "지금"의 나에게는,
remote work는 그리 매력적인 제안이 아니다.
한국이든, 베를린이든,
종종 재택근무를 할 수 있고, 원할 때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낼 수 있으며,
나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이 기준은 5년 후, 10년 후,
혹은 바로 내일이라도
언젠가는 변화하고,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