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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베를린 일상, 7월

by 지구외계인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정말 하는 일 없이 바빴다.

뭘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벌써 2025년의 반이 넘어가고, 연말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물론 올해 초에는 한국도 다녀오고, 긴 여행도 하고, 매년 하는 행사도 진행하는 듯-

정말 빡세게 몇 주 뭐 하나 끝내고, 한 이주 쉬고, 다시 다른 거 시작하고-

이런 패턴이 반복된 지난 몇 달간이었다.


순식간에 여름에 들어선 나의 25년도는 벌써 7월을 넘기고 있고, 그렇게 하반기를 맞이하고 있다.

정말 순식간에-




SE-e4ebc969-0cee-45e7-a1ed-3c8289ca82cf.png?type=w773 오랜만에 친구들과 즐겁게 한 잔하고, 베를린 밤공기를 마시며 걸었던 어느 날.





#베를린의 올해 여름은 매우 이상하다


어쩌면 매년 점점 더 이상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년에도 유독 비교적 선선하고 비가 많이 왔던 6-7월, 그리도 뒤늦게 9월에 너무 더웠던 것을 기억하는데...

올해 비하면 그건 정말 장난이었나 보다.


7월 말인 지금까지 30도를 웃돌았던 날은 정말 손에 꼽는 것 같고, 35도 이상 되었던 날은 하루, 이틀 정도 밖에 안 되었던 것 같다. 지난주만 해도 주말에는 정말 미친 듯이 더웠는데, 월요일부터 비가 오더니 오늘은 최고온도가 23도...

7월이면 한참 그릴도 하고, 피크닉도 하고, 그래야 하는 날씨인데- 올해는 춥고, 습하고, 마치 베를린의 겨울을 떠올리게 할 법한 날씨들이었다.

물론 나는 너무 더운 날씨보다는 개인적으로 선선한 날씨를 선호한다. 그래도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꿉꿉한 여름이라니.. 여름이 건기인 베를린에서는 충분히 이상하게 느껴질만한 여름이다.


보통 유럽은 여름에 매우 건조하다. 그 말인즉슨, 아무리 해가 쨍쨍해도 보통 그늘에 가면 선선하고, 오전에 비가 막 쏟아지더라도, 오후에 해가나고 바람이 불면 젖은 옷가지들이 정말 금세 말라버린다. 그것이 내가 보고 경험한 유럽의 여름인데, 정말 습도가 높은 날들의 연속.

물론 습도도 높고, 비도 많이 오고, 게다가 덥기까지 한 한국의 여름과는 비교가 안되겠지만, 유럽에 산 지 10년 차를 넘긴 나에게 유럽의 여름은 점점 다르게 변하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여름이 유일하게 공원에서 그릴하고, 맥주도 마시고, 자연과 하늘은 만끽하는 계절인데- 5월의 며칠은 그렇게 무덥더니, 7월에는 가을 같은 날씨가 이어지는 참 이상한 여름이다.




#늘 참으로 어려운 인간관계


요즘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특히 베를린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히며 살다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드는것 같다.


먼저, 나는 생각보다 주변 사람에게 혹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창가 너머로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관찰하고, 간혹 스케치도 하고- 그런 건 좋아하지만, 의외로 내 주변인에 대해 그들이 말하기 원하지 않는 이상 크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굳이 캐묻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내가 말하기를 꺼리는 표시를 해도 굳이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게 정말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선선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베를린에 살다 보니,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찐친이 된 경우들도 있지만, 서로 필요에 의해서만 만나는 관계들도 생기고, 반대로 사실 성향은 그리 비슷하지 않은데 베를린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만나지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해외에 오래 살다 보니 계속 이어지는 인연들도 있지만, 굳이 싸우거나 껄끄러운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끊어지는 인연들도 생기고, 자연스레 베를린이라는 곳을 떠나며 멀어지는 인연들도 생긴다.

그러면서 인간관계라는 게 때로는 참 허무하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맺은 모든 관계들에 염증을 느낀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되려 이런 생각이 들며 진정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친구들에 대해 고마움이 생겼으니...

단지, 참으로 친하고 매일 보던 관계가- 시간이 지나고, 사는 터전이 멀어지고, 사는 모양새가 달라짐에 따라 자연스레 멀어지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슬프고, 소중한 추억들이 남았지만 허무하기도 하다.


어렸을 때는 무얼 하나 하더라도 꼭 누구와 함께하고, 우르르 몰려다녔던걸 참 좋아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혼자 사색하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여행하는 시간들이 참 편하고 좋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익명성의 소중함


해외에 살면서 나에게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익명성'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밖에 나가도 내가 누군지 모르고, 관심도 없으니-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혼자 산책하고, 길게 생각하고- 이런 부분들이 편하고 심지어 안정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베를린이라는 곳에서 오래 살고, 직장 생활도 하다 보니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러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들이 생긴다. 물론 아는 누군가를 만나는 건 너무 반갑고, 그것 자체가 싫지는 않다.

다만, 정말 어느 날은 그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 나만의 산책을 하고 싶은 날이 있는데, 그런 날에 방해 아닌 방해를 받는 순간들이 점점 생기다 보니 쉽지가 않다.

그래서 베를린 밖으로 당일치고, 혹은 산책하러 조금 더 먼 동네로 가는 일이 점점 생기는 것 같다.


그냥 아침에 눈이 일찍 떠졌을 때 훌쩍- 급 기차 타고 1-2시간 거리로 날아가 잘 모르는 동네, 잘 모르는 장소를 산책하고 둘러보고, 생각하고, 멍 때리고- 그게 내가 나에게 주는 익명의 시간- 미타임인것 같다.


+


나는 유명인이 아닌데도 이 정도인데, 연예인들... 정말 갑갑해서 어떻게 사나 싶다.

(쓸데없는 남 걱정 ㅎ)







한국 다녀오면서 올해도 벌서 이만큼 갔구나- 이랬는데, 7월 말이라니.

다음 주면 벌써 8월, 그렇게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고, 크리스마스가 오겠지-

시간이란 게 참 빨리 가라고 할 때는 느리게 가고, 느리게 가라고 할 때는 빨리 가고-

청개구리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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