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꼬 안녕. 오늘은 뭔가 우울한 날이었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편지(일기?)라도 쓴다. 잠을 못 자서 그럴까? 해가 일찍 뜨기 시작해서 휴일이가 새벽 5시부터 깨워. 이렇게 7시간을 못 잔 날은 회사에서 좀 힘들어. 딱히 격렬하게 한 일도 없는데 퇴근할 때쯤 되면 녹초가 된다. 정확히는 오후 2시 30분쯤부터 기운이 쭉 빠지기 시작해. 이런 날은 빨리 자야 하는데 오늘은 또 네 아빠 저녁약속이 있어서 글렀네. 술 냄새 풍기면서 오면 잠이 들었다가도 깬단 말이야.
오늘 요가 3개월권 재결제를 했어. 회사일 때문에 못 가게 되는 날이 많기도 하고 몸 컨디션도 어떨지 몰라서 망설였는데 그래도 요가를 하는 편이 정신건강에도 그냥 건강에도 좋은 것 같아. 아주 시원하게 온몸을 쭉쭉 풀고 왔는데 내일은 근육통이 있겠지. 사실 오래된 로망(로망이 많기도 하다) 중에 또 하나는 배가 나와서도 요가를 하는 임신부가 되는 거였어. 우리 요가원에 출산 일주일 전까지 수련을 한 도반님이 있는데 엄청 존경스러웠어. 출산도 순조롭게 잘할 것 같고.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꾸준히 요가를 해서 나중에는 아이와 함께 요가를 하는 것도 로망이었어. 이건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러닝을 했는데 그 후유증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도대체 힘을 어디에 주고 뛴 건지, 처음엔 골반이 말썽이다가 이제는 가자미근? 아킬레스건 쪽이 엄청 땡기네. 배도 안 나왔으면서 어기적거리면서 걷게 돼서 민망하다. 오늘 요가 선생님이 벌써 걸음걸이가 변했다며 웃었는데 임신 때문이 아니라 아마 러닝 때문일 거야.
회사 다닌 지도 벌써 10년이 됐어. 오랜만에 번아웃이 왔는지, 회사 일에 통 흥미가 안 생기네. 물론 돈 벌러 다니면서 흥미 타령하는 게 좀 웃기긴 한데.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야. 나름 적성에 맞는 일을 만족하며 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번아웃은 직장인의 숙명 같은 건가봐. 당장 6월에 생길 막대한 대출금을 생각하니 또 막막해지네. 이제는 정말로 회사를 ‘못’ 그만두는 몸이 되어버린 거지. 먼 훗날 이 결정이 과연 어떤 결과가 될지 궁금하네.
취업준비생일 때는 취업만 하면 다 해결될 것 같았지. 그런데 10년 해보니까, 회사생활이 제일 어려워. 학교는 끝이 있거든. 언젠가는 졸업을 해야지. 졸업을 못하면 수료라도. 영영 남아있을 순 없어. 그런데 회사는? 아무 생각 없이 다니다 보면 10년 동안 똑같은 사람들과 함께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거야. 물론 나는 중간에 이직을 한 번 했지만, 이직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어. 이 끝없는 회사생활의 끝이 과연 어디쯤일까, 어떻게 끝날까. 너를 잘 키우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앞으로 10년이고 20년이고 더 다닐 수 있을까. 오늘따라 걱정이 좀 되네. 뭐, 죽으라는 법은 없겠지만.
요즘처럼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너무 뒤쳐지는 거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해. 요즘은 먹고 자고 넷플릭스만 보는 것 같거든. 밀리의 서재로 전자책도 읽지만 그냥 건성이고. 원래 나는 되게 바쁘게 사는 사람이었는데. 그동안 뭘 하느라 그렇게 바빴는지조차 기억이 잘 안 나네. 헛 바쁨이었던 걸까.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 이런 날은 하이볼 한잔 말아먹고 그냥 자야 되는데. 술을 못 먹네.
사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술, 목욕탕, 마사지, 독서 이렇게 4가지로 한정되어 있었던 것 같아. 임신하고 그 중 3가지를 못하게 되니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뭔가 건전한(?) 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으면 좋겠는데. 아직 술만한 걸 못 찾았다. 사실 나는 혼술도 좋아해. 좋아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멀리하긴 하지만. 너를 낳고 나면 좀더 어른스러운 스트레스 해소법을 가지게 될까? 글쎄다.. 나는 아직도 내가 스물다섯살 같아. 솔직히 서른여섯이란 것도 안 믿겨. 맨날 실수로 서른다섯이라고 해. 그거나 그거나. 그치? 아직 0개월인 뽀꼬야. 너는 너무 작아서 손바닥만하니까 이런 내 마음 모를 거야. 언제 내 마음 알 만큼 클까!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진다, 지금으로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