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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w 1d 뽀꼬에게

by 이어영 earyoung

뽀꼬 안녕! 그저께 초음파는 잘 보고 왔어. 근데 얼굴은 진짜 안 보여주더라 너. 다리는 맨날 쩍 벌리고 있으면서. 선생님이 배를 막 때려도 안 돼서 그냥 포기했어. 나중에 태어나면 보지 뭐. 근데 너 언제 태어날래? 요새 나 좀 힘들다.ㅋㅋ 제일 힘든 건 불면증(?)이야. 밤에 잠드는 건 사실 무리 없는데, 새벽에 꼭 깨서 다시 잠을 못 자. 휴일 아침에 안 깨우면 10시간이고 12시간이고 잘 수 있는데 자꾸 6시간~7시간 자고 깨니까 침대에서 1시간 정도 우울해하다가 일어나곤 해. 예전엔 일찍 눈이 떠지면 개이득! 하면서 바로 러닝하러 나가고 그랬는데. 이제 러닝하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어. 러닝 페이스가 8분대로 떨어지니까 세상에 너무너무 재미가 없는 거야. 불광천에서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이제 할아버지들한테도 추월당하고. 남들이 보기엔 임신부 티도 안 나서 그냥 체력 거지로 볼까봐 혼자 쒸익쒸익 했어. 물론 네가 태어나면 남들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줄 거지만 나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니까…


오늘 아침에는 몇 주만에 토도 했다. 9주에 한번 토하고 이게 얼마만이야. 그래서 공복유산소는 포기하고 바로 샐러드랑 빵 먹어줬어. 지난주(15주차)에 1kg이 쪄서 너무 놀랐거든. 몸무게 관리 해야하는데…쩝. 지금은 배가 너무 불러서 선 채로 너한테 편지를 쓰고 있어. 이번 달에 우리는 무지 바쁠 예정이야.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이사를 나가서→단기임대 오피스텔에서 6주 동안 살면서→이사 갈 집 잔금도 치러야 하거든. 그 외에 회사 일도 이것저것 많아서 정신이 좀 없네. 아빠는 회사에서 핵심인재 선정돼서 1박 2일 연수원 다녀왔어. 나는 완전히 회사싫어 인간인데 네 아빠를 보면 아하 저런 게 타고난 노예근성이구나 알 수 있어. 나야 좋지 뭐. 내가 짤리더라도 아빠는 계속 돈 벌어올 수 있잖아. 나도 다음주에 1박 2일 연수원에 가긴 하는데 핵심인재로 뽑힌 건 아니고 노동조합 대의원대회라서 가는 거야.ㅋㅋ 어떻게 이렇게 다른 인간 둘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는지 신기할 뿐이다. 근데 너도 살다 보면 알겠지만, 똑같은 인간끼리는 같이 못 살아. 둘 다 미쳐버릴걸.


오늘은 외할머니한테 닭죽을 해달라고 통보(?)했어. 사실 나는 본가에서 나와서 따로 산 지가 꽤 오래 돼서, 엄마 집밥 맛을 거의 다 까먹었어. 다른 사람들은 임신하고 친정 집밥이 그렇게 땡긴다는데, 하나도 안 땡기는 거 있지. 내 집밥은 쿠팡이츠랄까… 근데 뭐랄까, 엄마도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서 억지로 먹고 싶은 걸 생각해냈어. 뭔가 케어받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어. 나이가 서른여섯인데 아직도 이러고 있다. 그래도 닭죽 핑계로 오랜만에 목동 집에 들를 수 있어. 이제는 내 집도 아니고, 가서 2시간만 있으면 금방 불편해지지만 그래도 엄마아빠 보는 건 좋으니까.


요즘 마음이 좀 답답한가. 역마살이 도졌나. 그냥 날이 더워져서 수영이 하고 싶어 그런가. 바다 보러 가고 싶어. 사실 산이어도 상관 없어. 자연 속에 둘러싸여 있고 싶은데 여긴 너무 콘크리트 천지네. 이사가 다 끝나면 무지 더운 8월. 주수도 25주를 넘어가는데 그때 바다수영하러 오키나와에 갈 수 있을까? 몇 년 전 8월에 제주도에 가서 며칠 동안 바다수영만 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물을 정말정말정말정말 좋아해. 여름도 정말정말정말정말 좋아하고. 물론 회사에 출근하는 여름은 싫어하고 바닷속이나 수영장에 뛰어드는 여름만 좋아하긴 해. 너도 물을 좋아하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다. 그럼 또 모든 면에서 나와 반대인 아빠가 좀 힘들겠네. 물개 두 마리 데리고 다니느라.ㅎㅎ


오늘은 뭘하지? 요즘 쉬는 날이 좀 많네. 예전엔 주말마다 계획이 빼곡했는데 요즘은 전혀… 하루하루 컨디션이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서 계획을 세울 수 없기도 하고, 이사라는 굵직한 이벤트가 있어서 여러모로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기도 해서 주말 캘린더가 텅 비어있어. 어제는 못 참고 아빠를 깨우는 바람에 아빠가 많이 피곤해했어. 오늘은 최대한 안 깨우고 두려고 노력 중이야. 과연?!

앗.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북한산 계곡에 가서 발을 담그고 책을 읽는 거야. 아빠가 무지 싫어하겠다. (거기 주차장 들어가려면 한 시간 줄 서야 되거든!)


그럼 조만간 또 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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