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4주 증상을 곁들인...
뽀꼬야, 오늘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 초진이었어. 나도 신촌 세브란스에서 태어났는데 너도 여기서 태어나게 됐네. 초음파를 봤는데 역시나 활발하게 잘 놀고 있더라. 그리고는 갑자기 고추를 뿅 보여줬는데 정말 뒤집어지게 놀랐어. 다리 사이에 존재감이 확실하더라? 쪼끄만 게. 자신감 넘쳐서 맘에 들었어. 다른 애들은 16주까지도 잘 안 보여주기도 한다더라고. 물론 니프티 검사 결과로 남자앤 건 알고 있었지만, 그냥 말로 듣는 거랑 직접 눈으로 보는 건 느낌이 좀 달랐어.
이틀 동안의 적응(?)기간을 거쳐서 이제 내가 아들엄마라는 사실에 완벽하게 적응했어. 네가 태어날 때쯤이면 마음의 준비가 완전히 끝나 있을 거야. 아직까지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다니 기특하고 고맙고. 20주 정밀초음파 고비만 넘기면 완전히 마음 놓을 수 있겠지.
아, 최근에 편두통이 좀 심해져서 타이레놀을 좀 자주 먹었는데 이유를 알아냈어. 시끄러운 곳에 있으면 두통이 심해지는 것 같아. 아빠가 이 상관관계를 찾아냈는데, 굳이 임상실험을 해보고 싶지는 않지만…사실 내 로망이 태교로 드럼을 배우는 거였거든. 드럼처럼 시끄러운 악기를 치면 관자놀이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좀 무섭네. 일단 이사할 때까지만 두고 봐야겠어.
벌써 이사가 3주밖에 안 남았어. 나랑 아빠는 2012년에 사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10년 넘게 같이 살았는데, 이번에 이사 가면 5번째 집이야. 이 집에서 너를 낳고 아마 초등학교 갈 때까지 키우겠지? 이렇게 큰 변화는 우리 인생에 처음이라 둘 다 무척 설레고 기대하고 있어. 아빠는 그 동네가 너무 마음에 드는지 매일 벅차오르곤 하는데 옆에서 보고 있으면 좀 웃겨. 그러면서 나도 유모차를 끌고 한강을 걷는 나. 뽀꼬를 데리고 경의선숲길을 뛰는 나. 이런 상상을 하면서 혼자 좋아하고 그래. 똑같지 뭐.
편지 핑계로 14주 증상을 좀 남겨보자면… 하루종일 가슴이 너무너무 아파. 유선이 발달하면서 그렇다는데 좀 심해. 아프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고 쿡쿡 찌르기도 해서 밖에서도 몰래몰래 가슴을 쿵쿵 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 여자 미쳤나봐, 그럴지도. 속옷도 안 맞기 시작해서 새로 사야 하는데 이것보다 빅사이즈는 어디서 사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나이키 엑스라지를 사면 딱 맞을 것 같은데 하필 세일 중이라 다 품절이야ㅠㅠ) 그리고 요새는 대중교통 타기가 좀 무서워. 매일 다니는 출퇴근길은 익숙하니까 괜찮은데, 어제 친구들 만나러 가는데 엄청난 만원버스를 타게 됐거든. 앞으로 만원버스는 그냥 안 탈래.
그래도 너가 좀 봐줘서 운동을 곧잘 한 지 3일 정도 됐네. 가슴이 아파서 러닝은 못해봤지만(몸에 맞는 스포츠브라를 찾으면 바로 할 거야), 매일 짧게라도 요가하면서 몸을 풀어주니까 너무 상쾌해. 특히 임신 전엔 몰랐던 아사나(자세)들의 중요성(?)을 알게 됐어. 첫번째로는 소고양이자세. 원래 무슨 효과가 있는 거야? 했는데 골반하고 등이 우두두둑 하면서 아주 확 풀리더라. 그리고 반비둘기자세도 아프기만 하고 별로였는데 하고나면 골반이 짜~하게 시원해서 좋아. 골반이 잘 풀려야 순산할 수 있대서 다리찢기 연습도 시작했어. 부상 안 당하게 매일 조금씩 해봐야지. 그리고 유튜브 보면서 유산소 운동도 따라해봤는데 아주 오랜만에 심박이 치솟으면서(158!) 땀이 싹 돌더라. 너무 상쾌했어…!! 여기에 반신욕, 세신, 마사지만 할 수 있으면 컨디션 최고일 텐데. 그건 안 된대. 온몸이 근지럽지만 참아볼게.
그리고 입맛이 너무 돌아서 체중이 늘고 있어. 육안으로 보기에도 아랫배가 많이 나왔는데 대부분 내 살이라고 생각하니…입맛이 떨어져야 하는데 전혀 그렇진 않네. 하루에 2,500칼로리씩 먹으니 살이 찔 수밖에. 놀라운 건 체중 변화는 거의 없다는 거야. 찌끔 있던 근육이 죄다 빠지고 살로 바꼈기 때문이지. 하하!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 몸도 좋아. 뭔가 부드럽고 여성스럽고 편안한 느낌이랄까? 편한 속옷만 빨리 찾으면 좋겠다.
아, 아빠는 친구들 만나러 나갔어. 네가 태어나면 같이 놀게 될 윤찬이랑 은선이(맞나) 아빠들이야. 나중에 형들 만나면 말 잘 듣고. 알았지? 오늘은 이만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