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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w 5d 뽀꼬에게

뽀고는 ㅇ..ㅏ...ㄷ...

by 이어영 earyoung

뽀꼬야 안녕. 오늘은 네 검사결과를 듣고 왔어. 사실 병원에 가기 전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아들이래서 너무 놀랐어. 아빠가 오랫동안 실험을 해서 첫째는 딸일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 아빠 대학원이랑 회사 통틀어서 아마 네가 유일한 아들일 거야(자연임신 기준). 올해 회사에서 일을 잘해서 핵심인재라는 상을 받았다고 아빠가 자랑을 했는데, 흠. 정말 실험을 열심히 한 게 맞는지 살짝 의문이 들어.


사실 너는 처음부터 아들이었고 단 한 순간도 딸인 적이 없었는데 내가 이제 알게 된 것뿐이지. 정말 신기한 건 할아버지가 꾼 태몽이 금으로 된 밤 7개를 줍는 거였는데 그게 전형적인 아들 꿈이라고 하는 것과…우리 회사에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아들시톨’ 미신이야. 나랑 같은 팀이었던 A가 둘째를 계획하면서 이노시톨이라는 영양제를 샀는데 뜯기도 전에 아이가 생겼어. 그래서 B에게 그걸 넘겼는데 역시나 뜯기도 전에 아이가 생겼지. 그래서 ‘용한 물건’이라며 C에게 넘겼는데 C도 아이가 생겼어. 그리고 이후 나에게 넘어왔어. 나도 그걸 뜯지 않고 소중히 간직했고 곧 네가 생긴 거야. 근데 놀라운 게 뭔지 알아? 이 이노시톨을 가지고 있던 모두가 아들을 낳았어! 이제 곧 다른 사람에게 이노시톨을 물려줘야 하는데 주면서 꼭 ‘아들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줘야겠어.


아빠가 네 성별을 듣고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너 남혐하는데 어떡하냐고! 니 아빠가 이렇게 무지하다. 나는 페미니스트일 뿐이야. 물론 시끄럽고 무례한 남자애들을 싫어하고 걔네한테 나는 냄새도 안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혐오하진 않아. 좋아하는 남자가 많지 않다고 남자를 혐오한다고 하는 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다만 사춘기가 된 뽀꼬가 나한테 꼴페미년이라고 하는 상상을 해보니 아찔해지네. 어떻게 하면 너를 일베충이 아닌 남자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부모가 키우는 대로 아이가 키워진다는 양육가설을 믿지 않기로 했는데,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도 어쩔 수 없나봐.


뭐, 네가 이걸 읽을 때쯤 되면 우리 모두 알게 되겠지. 어떻게 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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