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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w 2d 뽀꼬에게

14w 0d에 올리는 늦은 편지

by 이어영 earyoung

레몬만해진 뽀꼬, 안녕? 오늘도 잘 지내고 있지. 레몬 마들렌을 반 가르면서 네가 이만큼 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졌어. 어제 영화관에 갔다가 새벽 3시에 잠든 바람에 피곤하진 않은지. 사실 내가 잘 때 네가 같이 자는지, 내가 깨어있을 때도 너는 자는지, 내가 잘 때 너는 깨어서 노는지. 나는 그런 건 하나도 모르긴 해.



그러고 보면 요즘의 막연하고 불안한 마음은 모두 내가 무지하다, 그런데 얼마나 무지한지조차 모른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아. 막연히, 엄마가 되면 저절로 다 알게 될 거라고 믿었는데. 말이 되냐. 우리 엄마도 삐약삐약 입을 벌리는 우리 남매를 낳아 기르고 나서야 과일껍질을 능숙하게 깎게 되었을 텐데. (네가 이 글을 읽을 때쯤 과연 나는 과일을 깎을 줄 아는 엄마가 되어 있을까? 오늘도 씻지도 않은 참외를 감자칼로 깎아 먹었는데)



세상에 정보가 너무 많아. 베스트셀러라는 육아책은 흉기로 써도 될 만큼 두껍고 무거워. 인터넷에는 수없이 많은 블로그, 맘카페 글이 쏟아지고. 그래서 그냥 ChatGPT한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는 방식을 선호하게 됐어. 이 방식의 문제점은, 궁금증이 생기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거야. ChatGPT가 먼저 나한테 “이 시기쯤 이걸 알아야 하는데, 너는 알고 있니?” 알려주진 않으니까. (그렇게 설정은 할 수 있겠지만…귀찮구나)



그래서 결론은, 엄마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거야. 아직 네가 남자앤지 여자앤지도 몰라. 만나는 사람마다 네 성별을 물어보는데, 솔직히 별로 궁금하지가 않아. 사실 요즘은 별 생각 없이 살아. 배가 아프거나 허리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이런 몸의 변화를 따라가기에 벅찼거든. 그리고 거대한 무기력함. 이런 종류의 번아웃은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겠어. 그냥 멍해있어.



네 탓을 하는 게 아니야. 나는 원래 번아웃을 못 견디는 사람이었어. 번아웃이 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나갈 때까지 그저 기다려야 하는데, 열심히 살지 않으면 도태되는 느낌에(도대체 누구에게?) 미라클모닝을 시작했어. 수면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였더니 원인 모를 두드러기가 온몸을 덮더라고. 하필 설연휴라 제대로 치료도 하지 못하고, 응급실만 계속 갔어. 온전히 몰입하지도, 쉬지도 못하고서 정작 제대로 하는 건 별로 없는 인간이었지. 해묵은 불안에 오래 잠식되어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와중에도 그렇게 미칠 것 같이 불안하진 않아. 고양이 휴일이를 쓰다듬으면서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늘었는데, 고양이 털을 고르면서 평화로운 안온함에 전율했어. 이전에는 단 한 번도 고양이를 쓰다듬는 순간 자체에 집중한 적이 없었다는 게 놀라워. 이렇게 좋은데! 뽀꼬가 태어나기 전에 이렇게 작은 행복한 순간들을 낚아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걸까. 애 낳은 사람들이 말하는 죽을 것 같이 힘든데 미치게 행복해, 라는 느낌을 나도 알게 되는 걸까? (드디어!)



그래도 체력이 많이 떨어진 건 조금 속상해. 예전처럼 5km 정도 뛰면 정말 가뿐하고 개운할 것 같은데, 요가도 찐하게 하고 싶은데, 확실히 예전 같지는 않아. 그래서 편지라도 쓰기로 했어. 매일 일기 쓰는 것도 그만둔 지 한참 됐으니, 일기 겸 편지로. 네가 글을 읽고 이해할 정도로 자랐을 때 보여주고 싶은 마음 반, 그냥 혼자 간직하고 싶은 마음 반이야. 네가 나와 비슷하다면 아마 이 일기를 몰래 찾아내서 읽겠지. 나는 어릴 때 그랬거든.



그럼 내일도 쓸 수 있길 바라며… 아빠가 너무 심심해보여서 놀아주러 가야겠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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