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주 0일, 갑자기 뽀꼬를 만나다.
임신 중기에 갑자기 실신했던 것 외에는 아무 이슈가 없던 '정상산모'였던 나. 다만 주수에 비해 배가 덜 나오고 살도 임신 전 대비 +7kg 정도로 적게 찐 편이었다.(BMI 정상기준) 태아는 36주 기준 2.3kg로 너무 작지 않나 싶었지만 교수님께서는 그냥 '아담한 아이'라고 하셨다. 신촌세브란스는 갈 때마다 초음파를 봐주진 않아서 32주에 보고 36주에 한 달만에 초음파를 봤는데 양수량이 좀 적다고 했다. 교수님 일정에 맞춰서 11월 14일(39주 0일) 선택제왕을 잡아놓았고, 그 전에 혹시나 자연진통이 걸리거나 양수가 터질까봐 나름 몸을 사리고 있었다. 몸을 사렸다기보다 평소보다 컨디션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억지로 요양했다는 쪽이 맞지만.
그리고 10월 31일 아침. 37주 0일. 선택제왕 2주 전. 오랜만에 9시간 넘게 푹 자고 알람 없이 눈을 떴는데 몸이 무거워서 1시간 30분 넘게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다가 심지어 쿠팡이츠까지 침대에서 주문했다. (그렇게 마지막 만찬은 샌드위치가 되었고… 야심차게 예약한 레스토랑 산은 영영 가지 못하게 됐다. 노키즈존이라니 다음 생에나…) 생각해보면 여러 징조(?)가 있었다.
아침에 부른 배를 보며 사진으로 남길까 잠깐 생각했는데 귀찮아서 넘겼었다(역시 캡쳐매도법이 진리). 뭔가 예감이 이상해서 병원 가기 직전에 출산가방을 차에라도 갖다놓을까 싶어 들고 현관 앞까지 갔다가 에이 부정탄다 싶어 다시 갖다두었다. 그리고 원래 당연히 혼자 가려던 37주 검진에 이상하게 혼자 가기가 싫었다. 남편한테 같이 가달라고 부탁해서 남편이 당일 새벽 6시로 출근시간 조정하고 일찍 퇴근해 데리러 왔다.
37주 검진에서는 태동검사를 하고, 초음파로 양수량만 간단히 체크할 거라고 하셨다. (신촌 세브란스는 태동검사, 초음파 다 다른 선생님이 하고 마지막에 교수님 외래를 본다.)
병원에 도착확인을 하고 키, 몸무게, 혈압을 재고 태동검사를 대기하며 초음파 대기도 걸었다. 지난번 태동검사는 한 달 전이었는데 별 이상 없다고 했고 뽀꼬 태동이 심한 편이라 태동검사 걱정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검사가 길어졌고 선생님이 아기가 자는 것 같다며 배를 여러 번 흔들었다. 나는 태동이 느껴지는데 왜 그러시지, 좀 의아했다. 마지막에 검사 마무리하며 “일단 초음파 본다고 하셨으니까…애기 심장 박동이 좀 빠른데…”하며 말끝을 흐리셨다. 그때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초음파실에 거의 한 시간을 넘게 대기했다. 평소에도 대기가 긴 편이었는데 이날은 좀 더 길었다. 알고 보니 어떤 환자 이슈가 있어서 교수님이 초음파실에 온다고 해서 다들 대기 중이었다. 나는 정상 산모여서 그냥 초음파실 선생님이 봐주시는 것 같았다. 내가 초음파실에 들어갈 때 교수님도 옆방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 선생님께 진짜 양수만 보냐고 몸무게도 한번 봐주시면 안돼요, 했더니 교수님 처방대로 해야 해서 안된다고, 일주일 전에 쟀으니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그리곤 심장박동만 들어볼게요, 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갸우뚱하더니 뭔가 정밀하게 오랫동안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과 나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초음파실을 나갔다… 이런 적은 처음인데. 남편과 눈을 마주쳤고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임신기간 내내 초음파실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담당교수님이 갑자기 초음파실에 들어왔다. 옆방에서 바로 넘어온 것 같았다. 초음파실 선생님이랑 교수님 둘이 한참 말 없이 초음파로 이것저것 체크하는데 얼마나 떨리던지. 결국 안 좋은 예감은 현실이 되었고 교수님은 우리에게 외래 기다리지 말고 바로 분만실로 가라고 했다. ‘아기 심박이 너무 빨라서 분만실에서 모니터링을 오래 해야 한다’고. 교수님이 나가자 눈물이 솟았다.
임신 18주쯤에 앰뷸런스 타고 갔었던 분만실에 벙 찐 상태로 걸어 들어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교수님이 직접 초음파를 볼 수 있었던 상황이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다. 초음파 다 보고 외래진료까지 기다렸으면 거의 1시간 이상 지체되었을 텐데 교수님이 초음파 보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수술이 진행되었으니.
분만실 옆 침대에선 외국인 산모의 진통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태동검사 띠를 배에 두르고 2분이나 있었나. 간호사들이 여기저기 전화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수술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나는 모니터가 안 보여서 뒤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물어보니 아기 심박이 215가 넘어가고 있었다. 빠른 심장 박동 소리가 옆 침대에서 진통 중인 산모의 모니터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우리 뽀꼬 소리였다.
간호사들이 들이닥쳐서 오늘 수술할 거라고, 금식 됐냐고 물어봤다. 방금 초음파실 앞에서 고구마말랭이 까먹은 걸 실토하자 약간 짜증스런 반응이 돌아왔다. 응급이라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데 금식이 안 됐을 경우 부작용으로 흡인성 폐렴이 올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은 이런 저런 동의서에 싸인을 해야 해서 나가고, 나는 아래 제모를 하면서 동시에 팔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실감이 안 나는데 눈물만 났다. 응급이라 항생제 테스트 같은 건 안하는 것 같았다. 제모 끝나고 소변줄을 꼽았다. 불편하긴 했는데 정신이 약간 나가 있어서 아프지 않았다.
오다가다 얼굴만 봤던 정윤지 교수님이 들어와서 뭔가 수술 관련된 설명을 해주셨다. 솔직히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 저 분이 수술하는 건가? 우리 교수님은? 하는 생각만 들었다. 솔직히 정윤지 교수님이 더 짬(?)이 있고 예약하기 어려운 교수님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엔 왠지 우리 교수님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혹시 김서라교수님이 수술 못해주시는 건가요, 하고 물어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서라 교수님이 커튼을 걷고 나타났다. 뛰어왔는지 엄청 헐떡이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괜히 물어봐서 호출당해 뛰어왔나 싶다) 솔직히 그동안 세브란스 다니면서 정상 산모라고 괄시당해 조금 서러웠는데…우리 교수님 완전 극T라서 그런 거지 내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닐 거라고 혼자 마인드컨트롤도 여러 번 했었는데…응급이라고 뛰어온 교수님 얼굴을 보니 뭔가 친정엄마 같고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나보다 어릴지도 모름 주의) 아기 심박이 높은 이유는 모른다, 24주면 모르겠는데 37주니 낳는 게 낫다고 하시면서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수술실에서 보자고 하셨다.
수술 침대로 옮겨 타야 해서 옮겨 탔다. 남편은 아빠한테 전화하고 나는 엄마한테 전화했다. 내가 ”엄마ㅠㅠ“ 하자마자 엄마가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엥 아빠한테 벌써 들은 건가? 싶어서 엄마 왜그래? 들었어? 하자 아니 뭘 들어? 아이고 어떡하니ㅠㅠ하면서 오열을 하는데 좀 웃길 정도였다. 우리 엄마 멘탈 진짜 알아줘야 한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내 목소리만 듣고 울기 시작하다니. 엄마가 우니깐 나도 같이 울었다.
수술방까지는 누운 채로 이동했다. 2년 전에 일산차병원에서 자궁경부원추절제술을 했을 때는 내 발로 걸어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던지라 무서움이 덜했는데. 그나마 남편이 옆에서 같이 뛰어가주어서 남편만 올려다봤다. 수술방 들어가기 직전 남편과 헤어지기 전에 마취과의사가 남편에게 금식 확인을 하는 동시에 간호사가 나한테 금식 확인을 했다. 체감 백만번째 고구마말랭이 얘기를 하자 마취과의사가 흡인성폐렴은 치사율 20퍼센트인데 동의서에 싸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남편도 나도 깜짝 놀랐다. 치사율이 그렇게 높은 줄은 몰랐다. 그래도 싸인을 해야 한다니 했다. 뭔가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방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한 말이 ”너가 고구마말랭이 억지로 먹여서 그렇잖아“였다.
수술방 들어가서는 무슨 인형처럼 굴려졌다. 침대 한번 더 옮기고 양팔 묶이고 오른쪽 팔에서는 혈압을 계속 재고 있었다. 마취과 선생님이 산소라고 들이마시라고 씌워줬는데 좀 대충 씌워줘서 제대로 들어오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실 치사율20퍼센트라는 말에 너무 겁먹었고… 수술방 분위기도 너무 무서웠다. 의료진이 너무 많았다. 눈은 뜨고 있었는데 제대로 본 건 없고 뭐라고 계속 듣긴 했는데 제대로 들은 것도 없다. 기억나는 건 전신마취라 태아에게 영향이 갈 수 있어서 수술 전 준비를 다 하고 최대한 늦게 마취를 한다고 했다. 소독한다고 소독약을 배랑 아래에까지 엄청 세게 박박 바르는데 너무 차가워서 춥고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아까 제모할 때 면도기로 박박 해서 상처가 났는지 제모 부위에 소독약이 닿자 따끔거리고 아팠다. 속으로 이따위 통증을 아프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싫다고 생각했다. 곧 있으면 배를 쨀 텐데…
교수님이 배에다가 표시를 할 거라고 했는데 그 느낌은 거의 안났고.. 모든 준비가 체감 10분 안에 끝났다. 아까 분만실에서부터 계속 소아과 언제 오냐고 찾더니 수술방에서도 소아과만 오면 시작한다고 했다. 곧 소아과 선생님이 왔는지 갑자기 마취합니다 하고는 정신을 잃었다. 그동안은 프로포폴만 맞아봤는데 이건 그냥 차원이 달랐다. 숫자 세는 거 없이 바로 기절, 뭐 들이마시는 느낌도 안 났다.
10월 31일 17시 40분. 수술 시작했다는 문자 오고 6분만에 뽀꼬가 나왔다고 한다. 초음파실 들어간 게 16시 30분 넘어서였으니까 정말 1시간만에 진행된 응급 수술이었다. 회복실에서 깨어났는데 배가 트럭에 깔린 것처럼 너무 아팠다. 간호사 선생님한테 너무 아프다는 말만 계속 했다. 내가 여기 왜 있는지 잠깐 까먹고 있다가 갑자기 뽀꼬가 떠올라서 애기는요? 하니 소아과진료를 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마취 풀리면 엄청 춥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추운 건 추운 거고 너무 아프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이거 이렇게 계속 아프면 어떻게 버티지…
그때 김서라 교수님이 와서 애기는요? 하니 어우 우렁차게 울었다고 하셨다. 근데 중환자실에 갔다고… 소아과에서 얘기해줄 거라고 했다. 그래도 울었다고 하니 조금 안심이 됐다. 나중에 들은 거지만 출혈이 600ml 정도로 심했다고 한다. 자궁수축이 안 돼서 지혈하려고 안에 풍선삽입술을 했고 주사로 자궁수축제도 계속 들어간다고.
입원실 준비될 때까지 체감 오조오억년을 기다렸다. 아까 수술 직전에 흉부외과 병동에서 전화가 와서 1인실이 어쩌고 했었는데 커뮤니케이션에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병실이 없다고 해서 계속 기다렸다. 수술 침대에서 병실 침대로 옮겨지는데 아플 거라고 엄청 겁을 줬다. 근데 별로 안 아팠다. 그냥 가만히 있을 때도 계속 그 정도로 아팠는데… 암만 생각해도 진통제가 잘 안 들었던 것 같다. 이때쯤 아 나는 진통 못 견뎠겠다 자연분만 못했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병동 문앞에 도착하자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동생이랑 통화하는 것 같았다. 아빠를 부르니까 엄마도 어디선가 나타났는데 또 통곡을 하고 있었다…나중에 퇴원할 때 교수님이 엄마 괜찮으시냐고 물어볼 정도로 병동이 떠나가라 통곡을 했다. 둘이 입원실 들어오면 안 되는데 따라 들어와서 한 2분 정도 같이 있었다. 남편은 어딨냐고 했는데 뭐 설명듣고 있다고 했다.
입원실 들어와서 남편 기다리는데 하도 안와서 답답증이 났다. 남편이 와서 뽀꼬 사진이랑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놀랍게도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뭔가 인큐베이터에 들어있고 이런 저런 기기도 붙이고 있는데 이게 괜찮은 건가, 작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통통해서 다행이다, 등의 생각을 했다. 입체초음파 때도 3시간 30분 동안 결국 얼굴을 안 보여줘서 너무 궁금했는데 누굴 닮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실감이 잘 안 나고 그냥 남의 아기를 보는 것 같았다.
출산가방을 아예 안 가지고 와서 남편이 집에 다녀온다고 나갔다. 근데 내 핸드폰도 가지고 가버려서 남편이 없는 1시간 넘게 눈부신 형광등을 보고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했다. 와…억겁의 시간이었다. 나중엔 너무 짜증나서 벽을 주먹으로 쳤다.
남편이 집에 갔다오니 9시가 다 됐다. 그때서야 뽀꼬가 신생아중환자실에 갔다는 것, 일단 심장은 괜찮은데 얼마나 오랫동안 빈맥 상태였는지(산소를 못받았는지) 알 수 없어서 주말 지나고 월요일에 뇌 mri를 찍어야 한다는 것, 또 신장도 안 좋을 수 있는데 이건 주말 동안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교수님이 와서 여쭤보니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태반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아기가 영양분을 못받아서 주수보다 작았던거라고… 태어날 때 무게는 2.52kg이었다고 한다.
사진이랑 영상을 다시 찬찬히 보니 발가락이 완전 남편이랑 똑같았다. 팔다리도 남편처럼 길었다. 코도 완전 남편 판박이였다. 손은 완전 내 손이랑 똑같았다. 배에서 다 못 키우고 낳았지만 키 크고 길쭉한 남편을 닮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오전에 소변줄 제거하고 걸을 수 있으면 11시 반에 뽀꼬 면회를 갈 수 있다고 했다. 뽀꼬 면회 가는 시간만 기다리면서 밤새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남편들의 코골이 4중창을 뜬 눈으로 견뎠다. 원래 제왕절개 첫날은 호르몬 때문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