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제왕절개 2~3일차, 뽀꼬와의 첫만남
새벽 5시21분에 가스가 나왔다. 사실 세브란스는 가스 안 나와도 물 마실 수 있고 미음(뉴케어)도 주고 아침밥도 주긴 한다. 밥 대신 죽이긴 하지만 반찬이며 미역국이며 다 나온다. 무통에도 관대하고 NICU에서도 아기 만질 수 있게 해주는 세브란스…전반적으로 관대한 편…
다음날 아침 7시 45분, 토요일인데도 교수님이 잠깐 들렀다. 워커홀릭인 걸까… 뽀꼬 보러 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으려고 최대한 멀쩡하게 앉아 있었다. 8시쯤 풍선삽입술한 거 뺀다고, 아플 거니까 진통제를 미리 준다고 했다. 풍선을 뺐는데 출혈이 많으면 색전술을 해야 한다고. 소변줄은 11시에 뺀다고, 걸을 수 있으면 뽀꼬 보러 가도 된다고 하셨다.
8시에 온다던 전공의는 9시 30분 다 돼서 왔다. 기다리다 지쳐서 남편 입원수속하고 밥먹고 오라고 보냈는데 보내자마자 바로 와서 당황했다. 근데 남편이 무슨 촉이 왔는지 원무과만 갔다가 병실로 다시 와서 다행이었다. 사실 풍선 제거하는데 남편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진짜 개ㅐㅐㅐ아팠기 때문에 내 아픔을 알아줘야 했다.
전공의가 불편할 거다, 아플 거다라고 3번 넘게 말해서 도대체 어떻길래..했는데 진짜 개ㅐㅐㅐ아팠다. 뭘 5개씩이나 넣었냐고 하면서 진짜 후벼파기 시작했는데 이게 다른 사람 수술후기에서 봤던것처럼 거즈가 주루룩 나오는 게 아니고 손바닥만한 풍선을 하나하나씩 꺼내는 거라서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힘들었다. 주먹을 넣어서 자궁까지 후벼파는 느낌…자연분만이 아니라 내진 느낌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런 게 아닐까…? 너무 아프니까 눈물도 안 나고 소리도 안 났다. 몸에 힘이 자꾸 들어가니까 힘빼라고 힘주면 안나온다는데 힘을 어떻게 빼란거지 암만생각해도 난 자연분만 못했다 진짜 뭐가 잘 안되는지 롱포셉을 갖다달라고했고 롱포셉 오고는 뭔가 자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 자분도 안했는데 진짜 너무하네… 다섯개 다 꺼내곤 완전 녹초가 되었다.
마취과 선생님도 한번 다녀갔고 11시에 소변줄 뺐다. 1시간 반 동안 소변을 참고 3시 전에 자연배뇨해야 한다고 했다. 소변량 체크할 수 있게 요강 같은 것도 주셨다. 소변줄 빼고 바로 걷는 연습하고 싶었는데 집에 간 남편이 감감무소식이라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11시 반에 뽀꼬 면회 가고 싶었는데 못 가게 됐다. 집에 갔던 남편이 병원에 11시 반 다 돼서 도착해서 결국 뽀꼬는 혼자 보고 왔다. 남편이 와서 도와줘서 일어나 앉아봤는데 할 만했다. 소변이 마려워서 시간 되자마자 화장실에 갔고 260ml를 쌌다. 풍선삽입술 제거 때문에 추가로 맞은 진통제 효과가 아직 있는 듯 전혀 아프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서 1층으로 갔다. 친구가 뭐 준다고 와서 잠깐 만났다.
낮잠도 자고 걷는 연습도 했다. 6시에 뽀꼬를 보러 가기 위해서 세수도 하고 나름 단장을 했다. 신생아 중환자실은 입원실 바로 아래층이었다. 뽀꼬를 보자마자 눈물이 주르르르 쏟아져서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는데 기분은 끝내줬다. 계속 웃음이 났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데 입으로는 웃고 있었다. NICU 간호사선생님들은 엄청 친절하셨다. 인큐베이터 안에 손을 넣어서 뽀꼬를 만질 수 있게 해주셔서 조금 놀랐다. 내 손길이 서툴어서 그런지 뽀꼬가 엄청 울었다. 우는 것도 귀여웠다. 건강해보여서 오히려 좋았다… 뽀꼬를 보느라 배 아픈 줄도 모르고 30분 동안 서있었다. 그리고 병실로 돌아왔는데 진짜 신기한 게 계속 뽀꼬 동영상을 돌려보고 뽀꼬 생각만 하니까 갑자기 젖이 돌았다. 가슴이 딱딱하게 부풀면서 뭔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밤 11시쯤 마포 출산교실에서 배웠던 기저부 마사지를 대충 해봤는데 갑자기 손에 뭐가 스치듯 묻었다. 오른쪽 유두에서 유즙이 나왔다. 남편이 편의점에서 급조해온 베스킨라빈스 숟가락에 유즙을 짜서 모았더니 숟가락 하나 정도의 양이 나왔다. 간호사실에서 유축기를 대여해준다는 말을 들어서 물어봤는데 데이랑 나이트랑 말이 좀 달랐다. 아니면 내가 유축기를 쓸 필요가 없는 걸 알아서 그냥 알아서 커트한 걸지도 모르지만…일단 나이트 간호사 말로는 메델라 유축기 퍼스널키트는 개별구매 5만원인데 주말이라 의료기기상사가 닫아서 살 수가 없다고 했다. 별 수 없이 손유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데이 간호사 선생님은 신생아실에 있는 새 키트를 우선 쓰고, 의료기기 상사가 문을 열면 키트를 사서 갚으(?)면 된다고 하셨다.
아무튼 모유가 돌자 자궁수축이 같이 되는지 훗배앓이 같은 통증이 좀 왔다. 수술부위가 아니고 윗배 쪽에 다른 느낌의 통증이었다. 오전에 소변줄 제거한 부위도 홧홧하고 요도 안쪽으로 깊게 방광염 걸렸을 때처럼 찌릿찌릿 아픈 통증도 있었다. 풍선 제거하면서 질에 상처가 났는지 거기도 아프고 쓰라렸다. 전반적으로 새로운 통증이 많아진 2일차 밤이었다.
2일차 밤 12시가 넘어서 옆 침대에 입원환자가 들어왔다. 엄청 씩씩하게 걸어들어와서 자분 산모인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퇴원해서 조리원에 갔다가 혈압이 높아서 다시 입원한 케이스였다. 오자마자 남편이랑 배고프다고 뭘 부스럭부스럭 까먹고(밤 12시에!) 2시간마다 혈압을 재야 해서 간호사들이 자꾸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 결정적으로 남편 되시는 분이 코를 진짜 경이로울 정도로 골아서 최악의 이웃이었다. 첫날도 30분밖에 못 잔 터라 새벽 4시까지는 기절하듯 잘 수 있었는데, 남편분 코골이 소리에 깬 이후로는 그냥 자는 걸 포기하고 일기나 썼다. 그래도 우리 남편이 피곤했는지 그에 못지 않은 코골이 소리를 내주어서 그래 차라리 니가 이겨라, 응원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열심히 일기를 쓰다가 아침밥이 와서 조금 먹고 혼자 뚜벅뚜벅 걸어서 양치도 하고 세수도 했다. 일요일인데 10시쯤 교수님이 와서 깜짝 놀랐다. 당직이라고 했다. 담당 교수님이 당직이라니 운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일기에 교수님 칭찬을 한참 쓰고 있던 중이라 나도 모르게 엄청 반가운 표정을 했다. 수술이 너무 잘 된 것 같다고 하나도 안 아프다고 했더니 무통 때문이라고 또 T처럼 말씀하셨다. 혹시 입원을 좀 더 할 수 있는지, 뽀꼬랑 같이 퇴원하고 싶다고 여쭤보자 하루 정도는 가능한데 어차피 뽀꼬는 나보다 늦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직 소아과 선생님을 못 만나서 뽀꼬 상태를 몰라서…하루라도 늦게 퇴원하는 걸로 말씀드렸다.
교수님하고 얘기하는데 갑자기 간호사실에서 콜이 와서 1인실 갈 거냐고 물어보셨다. 당연하죠!!!! 4인실에서 2박 1인실에서 2박이라니 그나마 운이 좋았다.
뽀꼬 보기 전에 2,000걸음 정도 걷기 연습을 하고 11시 반에 뽀꼬 면회를 갔다. 어제처럼 눈물이 앞을 가리지 않았고 뽀꼬도 어제처럼 막 울지 않았다. 계속 자다가 잠깐 깨서 바르르 하다가 또 재채기를 하다가 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너무 신기하고 귀여운 꼬물이 생명체… 오늘은 그나마 정신이 좀 있어서 옆에 있는 다른 아기들도 몰래 훔쳐보고 그랬다. 다른 아기들은 26주에 0.79kg로 태어나서 지금 38주고 막 그랬다… 여기서 우리 뽀꼬는 마치 나이롱 환자 같았다. (제발 실제로도 그렇기를) 간호사선생님이 브리핑해주셨는데 뽀꼬 상태는 어제와 똑같이 괜찮고, 공갈젖꼭지도 물려봤는데 잘 빤다고 하셨다!!! 또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 오늘도 뽀꼬를 살짝살짝 만져봤다.
뽀꼬 보고 오자 1인실로 옮길 수 있다고 했다!! 신이 나서 옮겼다. 진짜 사람 사는 것 같았다. 4인실은 캡슐호텔보다 못하다. 그중에서도 창문 없는 꼬리칸이어서 더했다. 하루 만원인데 우리는 오천원만 내도 될 것 같다고 남편이 그랬다. 1인실 옮긴 기념으로 맥도날드도 시켰다. 병원 밥은 맛 없는 건 아닌데 간장 베이스로 비슷한 반찬과 미역국만 계~~~~속 나와서 진짜 너무 질렸다. 맥스파이시 상하이버거를 먹자 막힌 속이 뚫리는 것 같았다. 남편은 아기 옷 빨래도 해야 하고 또 가져올 것들도 있어서 집에 보내고 낮잠을 잤다.
남편이 와서 저녁 먹고 7시 반 면회로 뽀꼬를 보러 갔다. 모유를 갖다줘도 된다고 해서 뽀꼬 이름표를 엄청 많이 받아왔다. 일단 되는 데까지 손유축을 하기로 하고, 방에 돌아와서 10시쯤 처음으로 손유축한 모유를 모유저장팩에 담고 얼렸다. 진짜 조금 나왔지만 나오긴 나왔다. 그리고 남편이랑 뽀꼬 태어난 날 못 봤던 야구 우승 하이라이트를 보고 드라마도 한 편 보고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