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진심일까
"선생님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6교시를 마치고 기다렸다는 듯이 신발을 갈아 신고 아이들은 집으로 학원으로 향했다. 좀 있으려니 우리 반 부회장 승찬이와 친한 친구 우영이가 교실로 들어서며 상담을 요청했다.
다른 친구 도훈이의 자리로 가더니 요즘 도훈이가 자주 메모를 하던 공책을 서랍에서 꺼냈다.
"이것 좀 보세요."
우영이가 펴 놓은 공책 페이지를 보니 빨간 글씨로 같은 낱말이 반복적으로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늘 적극적으로 수업활동에 참여하고 친구들을 먼저 도와주는 도훈이는 주변 정돈이 잘 안 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무랄 데 없는 학생이었다. 적어도 담임교사인 내가 보기에 자살을 생각할만한 어려움이나 큰 고민은 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이렇게 죽고 싶다는 빨간 글자가 빼곡한 공책을 보니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선생님이 내일 도훈이랑 얘기해 볼게. 친구가 걱정이 돼서 이렇게 바로 선생님께 말해줘서 고맙다. 내일 도훈이랑 같이 어떤 고민이 있는지 얘기해 보자"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이들을 안심시켜 집으로 보냈다. 먼저 도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왜 안 받는 걸까. 전화받을 의욕이 없는 건가. 자꾸 불안감이 쌓여갔다.
뭐부터 하면 좋을까. 그래 혹시 집에 고민거리가 있는지 알아보자.
"도훈이 어머니~~ 통화 가능하신가요? 도훈이가 요즘 고민이 있나요? 수첩에 죽고 싶다는 말을 잔뜩 써서 혹시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도훈이 어머니는 집에 별일은 없었고 많이 걱정이 되시는 눈치였다. 그래서 도훈이와 저녁에 얘기 많이 나눠달라고 부탁드렸다.
조금 있으려니 도훈이와 승원이가 교실로 들어왔다. 승원이의 배드민턴채를 가지러 다시 온 거였다. 승원이가 복도에 있는 사이 도훈이와 상담을 했다.
"도훈아. 요즘 학교생활하면서 힘든 점이 있니? 승찬이와 우영이가 선생님한테 와서 도훈이 걱정 많이 하더라. 도훈이가 죽고 싶다는 낱말을 잔뜩 써 놓았다고. 방금 엄마와도 통화했는데 엄마도 깜짝 놀라셨어."
"죄송해요. 계단 청소 하는데 친구들이 명령하듯이 말해서 기분이 나빴어요. 다른 고민은 없어요."
"그럼 내일 계단청소 담당 친구들이랑 같이 얘기해 보자. 고민 있으면 선생님이나 부모님과 먼저 얘기하기로 하자. 약속할 수 있겠니?"
도훈이가 승원이와 배드민턴 방과 후 수업에 함께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도훈이 어머니께도 연락드려서 친구와 오해가 생겨서 서운한 마음에 쓴 것이고 내일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안심시켜 드렸다.
자살.
초등 5학년과는 거리가 먼 일이라 생각했는데 바쁜 학원 일정에 쉴 틈이 없다 보니 작은 다툼에도 의기소침해지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도훈이는 주변 친구. 가족. 선생님의 따뜻한 맘을 느끼고 나서는 다시 한번 학교생활을 열심히 해 보고 싶어졌다. 맘을 나누는 대화는 통하기 마련이다. 사춘기 아이에게도 사랑을 담아 대화를 나눠보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