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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 Mar 06. 2024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초등 3학년 때 첫 영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부터 유아 영어 그림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치며 갈고닦은 자신의 영어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다. 


   앗. 집에 영어공책을 두고 왔다.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은 상황에서 유치원 때 배운 영어 실력을 뽐내기는 곤란하다. 10명 정도 애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줄공책 학습지를 받아간다. 공책 대신 받아가는 학습지 위쪽에 name이라는 영어 낱말이 쓰여있다.


  "선생님!  학습지 가져가서 네임(name) 옆에 자기 이름 써요?"


   평소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하던 아이라 하루 깜빡한 것일 수도 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선생님의 대답을 못 들었는지 다시 한번 물어본다. 


  "네임 옆에 이름 써요?"


  선생님의 대답을 잘 들으려 고개를 돌리고 눈빛을 반짝인다. 그 눈빛에 담긴 마음은 어떤 것일까.  

네임의 뜻을 선생님에게 설명하고 싶은 것일까.  영어도 잘하는 아이라고 선생님께 긍정적인 인상을 남기고 싶은 것일까.  아님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았다는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말일까. 


  어쩌면 그 세 가지 마음이 다 섞인 것일 수도 있다.

  

   어른이 되면 이직 첫날 깔끔한 외모로 출근하고 싶어 미리 미용실에 다녀온다.  회식 자리가 있으면 평소 꺼내지 않던 무거운 가죽가방을 꺼내어 들고 불편한 구두를 신고 또각거리며 출근하지 않는가.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라는 든든한 친구도 있다.  항상 연락이 된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이처럼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가꾸는 것은 자기만족일 수 도 있고 상대를 배려한 것일 수도 있다. 


   모두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한 발짝 나아가려는 그 마음이 기특하지 않은가. 

준비물을 잘 챙겨 온 날 그 아이는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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