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햄찌

내 사랑 햄스터

by 현이

10강) 계절의 날씨로 분위기 있는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엄마가 택배상자 위에 신문을 펼쳐두고 호두를 까고 계셨다. 추석이 다가오니 할아버지가 수확하신 호두를 한 자루 보내주셨다. 엄마가 혼자 까기에는 적지 않은 양이다. 고무망치로 하나하나 신중히 깨뜨리며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 계셨지만 엄마의 얼굴에는 녹색망에 가득 담긴 호두만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 엄마, 나도 해 볼래.”

“ 손 다치지 않게 조심할 수 있겠어?”

“ 물론이지. 엄마 이것 봐요. 나 호두 알맹이 이렇게 크게 꺼냈어.”

“ 우리 지민이 다 컸네. 많이 까면 통에 가득 담아보자. 그리고 오븐에 살짝 굽는 거야.”


잠시 쉬고 나니 엄마가 다시 밝은 어조로 말을 건넸다. 지민이는 엄마의 명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덩달아 기분 좋아졌다.

“ 나 이제 다 컸으니까 햄스터 키워야겠다.”

“ 햄스터를 키운다고? 엄마는 햄스터 못 만지는데? 지민이가 먹이 주고 청소하고 다 할 수 있어?”

엄마는 아직도 햄스터를 키우는 일을 두려워하셨다. 햄스터는 엄마가 거리낌 없이 잡는 모기나 파리보다는 크지만 사람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생물이다. 엄마는 왜 햄스터를 멀리하고 싶어 하시는 걸까.


“ 오늘 도마뱀 분양해 줬는데 나는 안 가져왔어요. 엄마가 도마뱀은 안 된다고 했으니까.”

“ 잘했어. 집에 도마뱀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엄마는 제대로 잠을 못 잘 것 같아. 혹시 케이지 밖으로 탈출이라도 해 봐. 그걸 어디 가서 잡니. 온 집안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고. 상상하기도 싫어.”


지민이는 마치 눈앞에 도마뱀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거절의 표시를 하는 엄마를 보면서 오늘 생명과학부 수업에서 본 크레스티드 게코 도마뱀을 떠올렸다. 노란 아기 도마뱀인데 이름이 레몬이었다. 선생님은 게코 도마뱀을 키우려면 케이지를 준비해서 웜존/ 쿨존으로 나눠서 각각 온도계를 설치해서 온도를 관리해야 한다고 하셨다. 도마뱀은 배로 체열을 흡수하기 때문에 바닥난방이 필수다. 32도 정도의 웜존에서는 소화촉진, 면역활성화 반응이 일어나지만 24도의 쿨존을 반대쪽 편에 설치해 줘야 체열조절, 스트레스완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 수명은 최대 20년 정도로 햄스터보다 10배는 더 길지만 성장하게 되면 커진 몸집에 맞게 움직이는 밀웜이나 귀뚜라미를 핀셋을 활용해 건네면서 먹이에 신경을 써 줘야 한다. 조용하게 키울 수 있고 노란 줄무늬가 근사했지만 동물원이 아닌 집에서 보고 싶은 동물은 아니다.


“ 다음 주에는 햄스터를 분양하기로 했어요. 햄스터 키워도 되죠? 내가 먹이도 주고 목욕도 시켜 줄 수 있어요.”

“ 햄스터도 물에서 목욕하는 거야?”

“ 아니죠. 고양이는 그루밍 잘하면 한 달에 한 번만 물에 들어가서 목욕하는데 햄스터는 깨끗한 모래에 들어가서 몸의 털을 청소하는 게 목욕이에요. ”

“ 우리 지민이, 벌써 햄스터 키울 준비가 다 됐구나. 수의사가 온 줄 알았네. 엄마는 이제 걱정은 넣어둘게. 그럼 지민이가 책임지고 잘 키워 봐.”

“ 엄마, 고마워요.”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엄마라서 너무나 감사했다. 엄마에게 다가가 팔을 둘렀다. 엄마는 지민이를 따뜻하게 꼭 안아주었다.


“ 처음에 필요한 케이지나 쳇바퀴, 먹이, 톱밥은 엄마가 사 주지만 리모델링 물품이나 간식은 지민이가 용돈으로 사야 한다.”

“ 알았어요. 하지만 엄마가 사 주면 감사하게 받을게요.”

“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오븐의 알람이 울렸다. 엄마가 손잡이를 열고 주방장갑 낀 손으로 오븐 쟁반을 당기자 김이 모락 나는 호두가 눈에 들어왔다.

햄스터도 갓 구운 호두를 좋아할까. 쌀쌀해진 날씨에 햄스터를 분양하게 됐으니 보드라운 털이 있는 우리 집 햄찌의 생일은 10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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