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살인청부업자의 삶

by 현이

인기소설 <절창>을 쓴 구병모 작가가 2018년에 펴낸 <파과>를 읽었다. 65세 여자 살인청부업자 조각의 삶을 보여주며 인생의 의미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조각의 시선과 개성있는 문체로 어린 시절부터 평탄하지 않았던 그녀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파과는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썩어서 먹을 수 없는 과일'을 뜻한다. 소설 <파과>에서는 살인청부업자 조각의 현재 모습을 상징한다. 냉장고에 과일을 넣어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나서 냉장고를 정리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야기 속 장면이 떠오른다. 또한 나이가 들어 살인청부업자가 갖춰야 할 체력과 냉철한 판단력이 흐려지는 과정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각은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친척집에 가서 식모살이를 한다. 그러다가 사촌 언니의 물건에 손을 대서 쫓겨나고 오갈 데 없는 청소년이 된다. 유일하게 식사를 대접했던 류와 조 부부를 만나서 미군들이 드나드는 펍에서 일하다 살인청부업에 발을 들여놓는다. 식모살이를 하면서 학교에 다닐 수도 있었는데 주변 어른들은 그녀에게 학업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부모는 아니지만 피를 나눈 친척인데 아이에게 교육 환경을 제공하지 않았고 그 결과 조각은 주변 환경에 떠밀려 이리저리 치이다가 사람을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된 것이다.


조각이 최소한 초등교육을 받고 삶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면 소설의 결말은 달라졌을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운 뒤에야 조각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가 쉴 수 있는 집이 주는 의미를 알게 된다. 그녀가 했던 살인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린 나이에 앙심을 품고 결국 청부업자가 되어 끝까지 쫓아 온 인물이 있다. 조각은 그 인물과 결투를 마친 뒤 따스한 할머니의 시선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다른 모습으로 만났다면 감싸 안을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조각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가치를 책 마무리에 풀어놓았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된다. 지금은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이다.

어려운 상황을 지날 때는 작은 도움의 손길도 큰 힘이 된다. 삶이 너무나 고단하게 느껴져 죽음을 고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자살을 막을 수 있다는 심리상담사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상실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주변에 있을 경우 힘이 닿는 한에서 기꺼이 돕고 싶다.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간접적으로도 소통하며 구성원 다수가 행복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책을 읽고 온라인으로 깨달음을 나누는 일도 시민의식을 향상하는데 도움이 될 꺼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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