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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 Mar 08. 2024

산에서 만난 사이

당근 모임

   꽃과 나무를 좋아한다. 집 근처 공원을 주로 걷는 편인데 등산이 건강에 좋다는 얘기를 자주 듣다 보니 관심이 생겼다. 게다가 여럿이서 가면 다양한 화젯거리를 즐길 수 있으니까 모임에 나가볼까 고민하던 차에 등산 모임을 알게 되어 오랜만에 앞산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아 산은 황량한 느낌이었지만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담을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 나와 속도가 비슷한 신입이 있어서 맘이 놓였지만 등산로는 가파르게 이어졌다. 다들 모닝커피를 드시고 오셨는지 나는 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오르막길이 이제 끝인가 싶더니 나무 계단이 이어졌다. 산에 궁전이라도 지어놓았는지 바위들을 연결하는 가파른 계단이 많았고 어느 순간 내리막이었다가 다시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몇 명 지나가고 신입들끼리 천천히 가고 있었다. 검은 등산 머리띠를 하신 분이 뒤에서 보조를 맞춰 주셨다. 충분히 빨리 갈 수 있었지만 기다려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맘은 뛰어가서 선두그룹과 속도를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숨이 턱끝까지 차고 정상까지 갈 수는 있을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 먼저 올라가세요. 괜찮아요. "

    " 아니에요. 같이 가려고 왔죠. 혼자 올라가려면 모임에 올 이유가 없어요."

     

     정말 고마웠다. 다시 힘을 내서 올라갔다. 조금 속도가 붙었나 싶었지만 동료 신입이 가방에 패딩점퍼를 걸쳐놓고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식당을 경영하시는 셰프님이 내려오셨다.


    " 가방 들어드릴게요. 주세요."

     " 무거우실 텐데. 감사합니다. "

       

      푸바오를 좋아하는 신입은 환하게 웃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 보였다. 내 마음도 따뜻해져서 정상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중간중간 숨이 너무 차서 아님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을 때는 잠시 쉬기도 했다. 연속해서 쉴 때는 괜히 멀리 보이는 경치가 멋지다며 풍경을 칭찬했다. 그럴 때면 한참 동안 기다려 주는 기존 회원분들의 배려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산에서 처음 만난 사이지만 서로 배려하고 정상에서는 가방에 소복하게 담아 온 초코바와 삶은 계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내려오는 길은 내리막길이라 한결 수월했다. 그래서 보조를 맞춘다는 생각에 급하게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무릎이 아파왔다. 춥다고 운동을 제대로 안 했더니 근육도 많이 약해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사선으로 내려가거나 약간 절룩거리면서 갔다. 나이가 든 탓일까. 하산 후 들른 카페에서 계단을 내려갈 때도 윽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러다가 못 걷는 거 아닐까 하는 과장된 공포감도 몰려왔다. 난 등산을 해서는 안 되는 신체를 가진 걸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마음을 나누고 자연풍경을 감상할 계획에 설레었는데. 공원만 걸어야 하는 운명인가.


       1주일이 지났다. 처음 느껴보는 무릎통증도 다리 근육통도 다 사라졌다. 살았다. 퇴근길에 바로 등산화를 샀다. 진달래 피면 산에 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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