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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 Mar 04. 2024

Ep 1. 물렀거라 딩크족 나가신다!

   요즘 반려견, 반려묘와 함께 지내는 딩크족 부부를 종종 본다. 아이가 없지만 대신 여유로운 소비를 하며 자유롭게 여행 다니고 둘만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부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충분하고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는 탓인지 나이보다 어려 보이니 내가 사서 고생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아이를 낳았나 후회하는 마음이 스쳐갈 때도 있다.


   공무원 부모님을 둔 시골출신이라 저축은 늘 삶의 중요한 과제였다. 결혼을 해 보니 집 장만부터 양가 어른들 용돈에 아이 교육비를 따져보니 내 집 마련까지 갈 길이 멀었다. 근면 성실을 바탕으로 재테크 관련 도서와 인터넷 카페를 들락거리며 어떻게 돈을 빨리 모을 수 있을지 정보를 모았다. 


    통장 쪼개기. 


    저축, 생활, 비상용으로 통장을 나누어 적금으로 목돈을 만들어야 한다. 두 사람의 월급으로 저축하니 대략 10년 정도면 지역의 아파트를 살 수 있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물론 아파트 가격이 10년 뒤에도 같다고 가정했을 경우다. 10년이라니. 게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유치원비, 학원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면 주택 구입은 더 늦어지는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저렴한 전세 아파트를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졌다.


   <딩크족 다이어리>에 나온 것처럼 경제적 이유 외에도 여러 가지를 고려해 봐야 했다. 아이가 없어도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데 아이를 꼭 낳아야 할까. 학업스트레스나 경제적 이유 등으로 처지를 비관하는 청소년들, 어른들의 자살률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아이가 우리 사회에서 지내는 것이 힘들어 괜히 태어났다며 부모인 나를 혹시나 원망하지는 않을까. 혹시 이혼하게 되면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그런 상황이 걱정되어 발목 잡히는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닐까.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다. 결혼식, 해외로 떠나는 신혼여행, 집들이 등 떠들썩하고 화려해 보이는 행사들이 지나간 뒤에는 뉴스에서 보던 복잡한 현실들이 내 삶으로 스며들었다. 결혼은 말 그대로 현실 자체였다. 딩크족 부부가 될까 고민하는 우리 부부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부담스러운 관심과 조언들이 쏟아졌다. 주변 지인들과 가족들이라 날 선 대립을 하기도 어려웠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그러했듯이 시가에서는 새댁의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거의 20년 전이라 지금보다 더 존중받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지인들도 부부의 가족계획에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내놓았고 그것이 관심과 친밀감을 표현하는 수단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상대가 형식적으로 말하는지 진심을 담아 배려하는 말을 하는지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을 내려 구분할 수 있다.


“ 아직 소식 없어? ”

“ 아기는 젊을 때 낳아 키워야지.”

“ 20대는 자식, 30대는 재물이다. 얼른 낳아서 키워라. 둘째도 낳아야지. ”

“ 약 지으러 내려와라. 용한 집이 있다.”

“ 둘은 낳아야지. 지금도 빠른 건 아니야. ”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조언과 지나친 관심에 지쳐갈 때쯤 친한 동료가 툭 던진 말이 기억에 남았다. 

“ 우리 오빠네는 조카 태어나니까 안 싸우더라고요. 애가 태어나면 사이가 좋아지는 것 같던데”

  아이가 있으면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 이러면 고려해 볼 만한가?


    달콤한 신혼이라지만 주변 지인들과 실제 경험과 상담 전문가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신혼 3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싸운다고 한다. 30년 가까이 각자의 방식으로 생활하던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날마다 같이 지내야 하니 서로 맞춰가야 할 게 많다. 그러면 갈등이 생기고  어디에서 타협점을 찾을지, 그런 반복되는 갈등과 타협의 과정을 무사히 견뎌내는 과정 역시  험난하다. 가시밭길을 걷는 느낌이랄까. 그런 과정에서 지쳐가고 있을 때라 조언인 듯 농담인 듯 건네는 이 말이 마음에 남았다. 학교에서 보는 귀여운 아이의 부모가 되고 게다가 좀 더 평온한 가정을 갖게 된다니. 그럼 한 번 해 볼 만하지 않을까.


  엄마.


    맞벌이 부모님이셔서 늘 바빴던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엄마라고 부르면 짜잔 바로 나타나서 따뜻하게 대해주는 엄마가 되야겠다고 어릴 적에 다짐했다. 그렇게 바빠도 도시락을 챙겨주시고 밤새 바느질 숙제를 대신해 주시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 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바쁜 워킹맘의 역할을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남편은 아빠의 역할을 충실히 할까.


    <페인트>를 보면 부모가 돌볼 형편이 안 되어  버려진 아이들을 나라에서 도맡아 키운다. 고등학교 때까지 입양을 가지 못하면 시설 출신 아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어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그전에 양부모를 찾아주려고 노력하는 내용이다. 아이들은 양부모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친부모가 다시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사회에 여러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만약 출산율이 계속 낮다면 소설 속 시설처럼 아이들을 맡아주고 키워주는 국가 차원의 보육 센터가 필요할 수도 있다.


    2022년 기준 출산율이 0.7명인 상황에서 워킹맘으로 생활하고 있으니 꽤 노력하는 국민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부모가 되겠다는 결심을 내비쳤을 때 친한 선배는 다소 객관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아이가 있다고 남편과 사이가 갑자기 좋아지는 건 아니다.”


    이제는 그 말 뜻을 안다. 결혼해서도 연인처럼 남편과 알콩달콩 사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 하지만 부모와 자식은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관계가 된다. 고대부터 내려오는 긴 어머니의 대열에 나도 동참했다는 사실도 가슴 벅찬 일이다. 그럼 소중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 것은 부모가 누구인지 아는 것보다 가치 있다. - 페인트

비출산하는 삶도 존중하고 축복해야 한다. - 딩크족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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